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 2500년을 건너온 인생 수업
노무라 소이치다로 지음, 류휘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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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일본의 우울증 치료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노무라 소이치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저자는 의학적 접근이 통하지 않던 환자들에게 노자의 말을 들려줬더니 증상이 호전되는 일이 반복해 일어났다고 한다. 아예 노자의 가르침을 우울증 치료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며 긴급 '처방'하듯이 엮은 글들, 노자의 《도덕경》을 바탕으로 노자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많은 불안의 상황들과 엮어냈다. 


마음이 불안하다, 우울하다는 말도 여러 가지 갈래가 있다. 타인과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스스로가 너무 무가치하게 느껴지거나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거나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거나 등등. 우울증 치료 의사답게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어려운 상황들을 35가지 주제로 나뉘어 맞는 상황에 적절한 노자의 말들을 처방해 준다. 가볍고 부담 없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볼 수 있는 책, 느슨하고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노자의 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하고 널찍한 책이다. 


인생의 전성기에는 공자, 인생의 침체기에는 노자


'인생의 오르막길에는 공자, 내리막길에는 노장'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공자는 공자의 가르침, 노장은 노자 철학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공자는 예의를 중시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리도록 가르치고 노자는 느슨하게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는가라고 넌지시 물어서라고 한다.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 '저지 프리 judge free' 사고방식, 판단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사고방식을 말하는데 이는 노자의 무위라는 개념의 가르침과 닿아 있다. 노자의 가르침은 어떠한 존재든 그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하니 자꾸 억지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인다. 다이아몬드가 안되어도 돌멩이가 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말,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라는 언어들. 


​너무 몰입하고 힘주지 말고 조금은 느슨하게, 이 정도면 괜찮다는 '무위'의 가르침, 인생의 내리막길에는 노자를 보고 다시 올라가는 전성기가 오면 인생을 탄탄히 다지는 공자를 공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굳건히 행하는 자는 뜻있는 자이다


노자의 느슨한 가르침 중에서 무력한 혹은 무가치한,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는 상태의 있는 자들에게 하는 위로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분명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대한 만큼 성과가 없을 때 또는 스스로가 뒤처지는 것만 같을 때가 필연적으로 있다. 남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나는 그저 그 자리에만 머무는 것 같은 인생,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순간이다. 그저 바다의 부초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시간들. 

노자는 노력하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00 사고'라는 비유를 든다. 여기서는 '시계 사고'를 해보자고 제시하는데 그 예시가 적절하다. 

시계는 그 그저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 움직이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인 시계, 노력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이 되고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다. 

사람마다 결과를 내는 타이밍, 시차가 다르다는 말은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그러나 시계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구나, 시차가 존재하면서도 시계의 바늘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조금 늦은 시계가 있을지언정 시계 자체로 이미 목적은 달성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노자 철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안내하는 '실용 인문서'로 어려운 동양 철학서를 우울증 정신과 의사가 각 상황에 맞게 고민을 분류해서 제시한다.

쉽고 가볍고 노자의 동양철학을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나 충고는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좋지 아니한가라는 느슨한 힌트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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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그릇 - 나를 비우고 뜻을 채우는 52주간의 마음공부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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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른다움’을 쌓아 올리는 데 필요한 ‘마음 그릇’의 정수를 담아낸다. 마음 그릇은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 감정, 태도를 길러내는 것으로, 선조들이 남긴 모든 고전의 핵심은 바로 이 ‘마음을 다루는 공부’에 있다. 이러한 어른들의 마음공부를 함께 동참하며 마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빚어내 세상을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문장들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이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 p. 22


《맹자》에는 사람을 본성적으로 선한다는 성선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근거로 네 가지 선한 마음(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제시한다. 이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맹자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잘 가꾸며 지켜나갈 때 어른스러운 덕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짜 어른'이란 무엇일까, 품격 있고 우러러볼 만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쉬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나이만 먹었지,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 또한 귀양 생활을 시작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고난을 '여가'로 생각했다고 한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어서 나타나는 태도가 아니라 마음공부를 꾸준히 한 사람의 넉넉한 그릇임을 엿볼 수 있는 태도다. 

어른은 자신의 품에 맞게 마음 그릇을 빚어내어 성숙한 방식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님을, 타인을 향해 너그럽고,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며, 역경 앞에서도 의연하게 웃을 줄 아는 '진짜 어른'. 일상의 크고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내 품에 맞는 단단하고 넉넉한 '어른의 그릇'을 빚어가고 싶다.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선조들이 남긴 마음공부의 문장들을 나침반 삼아,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맹자에는 '대인', 큰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큰 사람,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된 사람이 아니라 나이에 합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크고 작은 것의 중요성을 잘 선택하는 사람, 올바른 도리를 기반으로 선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야말로 '대인', 어른인 것이다. 눈앞의 얄팍한 이익이나 순간의 감정(작은 것)에 매몰되지 않고, 올바른 도리와 선한 본성(크고 귀한 부분)을 지켜내는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인의 길인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내 안의 '순수한 어린아이'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 본다. 당장의 작은 것에 급급한 삶, 나이에 합당하지 못하게 부끄러운 행동에 겉돌고,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소인의 삶을 이제껏 걷지 않았나. 


어른의 품격이란 태생적으로 주어지거나 지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성실함, 그리고 매 순간 깨어있는 생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정돈하는 치열함에서 비롯된다. "평안한 후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후에 얻을 수 있다"라는 《대학》의 구절처럼, 분주하게 휩쓸리는 일상 속에서도 멈추어 머물며 나의 말과 행동을 깊이 사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진정한 어른이란 어느 날 고정된 형태로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돈하는 치열한 과정이다. 맹자가 말한 잃어버린 선한 마음을 끊임없이 되찾고, 다산이 강조한 부지런함과 사유로 텅 빈 일상을 단단하게 채워나갈 때 어른다움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닌, 나이에 합당한 품격을 갖춘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내 품에 맞는 넉넉한 마음 그릇을 정성껏 닦아내는 묵묵한 연습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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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러닝 - 평생 러너를 위한 Zone 2 러닝의 모든 것
이재진(해피러너 올레) 지음 / 청림Life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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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00세 러닝》은 이 존2 러닝의 과학적 근거, 원리, 실전 방법, 루틴화, 동기부여에 관한 책이다. 13년간 슬로 러닝을 한 저자는 존2 러닝을 지속할 수 있는 힘과 실전적인 방법, 호흡법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알려준다. 달리기 초보자도 보면서 천천히 따라 할 수 있는 참고서이자 평생 가능한 달리기의 안내서다. 

슬로 러닝, 존2 러닝은 느리게 달림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강하고 오래가는 몸을 만드는 '에너지 시스템 재설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숨이 차지 않고 꾸준하게 달리는 우리의 몸에서는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주 연료로 사용하고, 심장은 효율적인 박동을 유지하며, 면역 시스템은 과잉 반응 대신 균형 잡힌 방어를 학습한다고 한다. 
빠르게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때때로 오는 공황과 불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느린 달리기는 강도가 낮고 반복적인 리듬을 형성하기 때문에 뇌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상태로 만들고 의식적인 잡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상태, 뇌가 스스로 정리정돈하고 반추하며 자책하는 생각을 살짝 밀어내 버리는 상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체력 증진을 넘어 명상과도 같은 행위였다. 저자는 고통을 참아내는 달리기의 방식이 아닌 속도를 낮추고 루틴화된 장소에서의 달리기를 '움직이는 명상실'이라고 표현한다. 속도를 줄인 부담 없는 달리기는 오히려 생활 속의 쉼표가 된다. 
오랜 시간 심리 상담에서는 운동을 하는 것이 우울과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해왔으나 격한 운동은 금방 지치게 한다. 그러나 슬로 러닝은 오히려 속도를 낮춤으로써 뇌를 멍 때리게 하고 심박수를 천천히 조절함으로써 생활 속 쉼을 선물한다. 움직이는 명상실, 느리게 달릴수록 마음이 정돈되고 고요해진다. 

저자는 거듭 설명한다. 슬로 러닝은 그저 강도를 낮춘 달리기의 방식을 넘어 회복력을 다시 설계하는 전략이다. 속도, 유지보다 '흐름'을 중시 여기고 몸의 균형을 알아차리며 오늘의 리듬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오랜 시간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비결이다. 
또한 '나는 달리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데, 이는 반복된 행동을 통해 내면의 신념을 만들고 자아를 재건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와 연결된 시간, 나는 달리는 사람, 나의 속도와 나만의 리듬으로는 말들은 자기 암시를 넘어 뇌의 행동 회로를 자극하고 집중력과 감정 상태를 조율하게 된다. 

​저자는 야외에서 달리기를 하므로 아주 현실적인 날씨에 관련된 조치, 신발 고르는 방법, 3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대에 맞는 동기부여 방법, 통증 해석, 호흡법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 혹은 나처럼 매일 운동하기 싫다를 입에 달면서 또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사람에게 왜 달릴 수밖에 없는지, 왜 오늘도 달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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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10주년 기념 개정판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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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혐오사회》 10주년을 기념하여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10년 전 공공연한 혐오와 증오범죄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가 얼마나 혐오라는 집단적 광기에 단단히 잡혀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뿌리 깊게 단단히 자리 잡은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나'라는 존재는 이것에 공모되지 않을 수 있을까? 집단적 광기와 분위기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현대사회에 퍼져버린 냉소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에 대해 《혐오사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혐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선을 넘어왔다. 인류가 시작된 이후로 지속되고 있는 혐오, 특히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알고리즘은 더욱 혐오를 조장 및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모두가 이제는 손쉽게 분노하고 혐오할 준비가 되어 있다. '~충'이라는 말도 너무나 손쉽게 쓰이며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주홍 글씨가 선명히 새겨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혐오의 시스템이 과연 개개인의 편견과 피해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는 명확하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혐오와 증오는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며 이 범주를 나누는 사회에서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혐오와 증오에 대한 시선을 알고자 할 때는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오가 날뛸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혐오가 번성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전 정당화와 사후 동의의 과정들이 분명히 있었고 자연스럽게 솟아난 감정이 아니라 만들어진 감정이라는 것이다. 왜, 어느 방향으로, 누구를 표적으로 삼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장벽과 장해물을 제거하는지에 대한 작동 방식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여기서 혐오사회의 새로운 유형을 저자는 말한다. 비참여자들, 방관자들, 관심 없는 척하지만 혐오로 인해 자제력을 잃고 분노와 증오로 날뛰는 사람들을 마치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자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는 이미 '참여하고 있는 비참여자들', 이들 또한 사회적으로 양산된 관객. 그것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부정한 일에 내 이름을 보태지 않겠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는 그 용기조차 내지 않는 냉소적인 방관자, 적극적으로 분노를 분출하는 사람을 넘어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꼬집는다. 


어떤 존재에게 가능성을 단 하나의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 혐오의 시작이 된다. 난민, 무슬림, 성소수자, 장애인에게는 고정된 방식과 시선이 존재한다. 그렇게 틀 안에 가둬버림으로써 개인은 집단과, 집단은 그 속성들과 하나로 결합한다. 축소된 사고는 점점 혐오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고정된 이미지들로 낙인찍힌 이들에게 있어 우리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유사한 존재, 연약하고 존엄성을 지닌 존재,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다른 면모를 지닌 존재임을 상상하지 않는다. 하나의 프레임을 씌어버리면 그 고정된 이미지에서 좀처럼 확장할 수가 없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정된 이미지는 더욱 각인되기만 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받은 모욕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어렵게 내면 태연하게 굴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퀴어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왜 굳이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원하냐, 조용히 사회의 일부로 남으라는 시선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왜 굳이 이런 전시를 하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은 선프라이드재단의 대표가 퀴어 미술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림자처럼 머물라, 남들 눈에 띄지 말고, 모욕을 당해도 태연하게 다른 사람처럼 굴어라라는 일종의 기대와 시선 또한 혐오의 또 다른 폭력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않는, 조금만 달라도 틀린 것으로 간주되며 배제되는 이들이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하는지 이유를 댈 의무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제나 혐오를 받는 입장에서만 인정을 받기 위한 이유와 근거를 주장하고 너무나 손쉽게 그러한 이유를 묵살한다. 그들이 그러한 이유를 댈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즉, 혐오는 상상력의 부족이다. 사회적 약자라는 시선 속에 가둬버리고 고정된 이미지로 남도록 하는 그 이상의 것을 더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상상력의 부족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구조적 멸시에 이은 비가시적인 상상력의 부족은 혐오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임을 저자는 말한다. 


혐오의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혐오의 구조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 이미 덮인 혐오의 프레임을 넘어 상상하는 것, 그들이 받은 모욕을 침묵하도록 은근한 압박을 하지 않는 것, 혐오의 시스템에서 나를 용인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것, 인간 혐오를 혐오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으로 새로운 희망의 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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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대가 - 안전이 빼앗아 간 당신의 진짜 가능성에 대하여
체이스 자비스 지음, 최지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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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애플, 삼성, 구글과 협업한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허핑턴 포스트》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이자 기업가인 저자 체이스 자비스가 말하는 안전이라는 환상, 안전이 빼앗아 간 진짜 가능성에 대한 자기계발 서적이다. 

'안전'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안전해 보이는 선택만을 선택함으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문을 닫아버리는 이들에게 안전이 제일이라는 속임수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삶을 주도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충분히 긴 지렛대만 있으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수송선 한 척을 움직여보라는 왕의 명령에 아르키메데스는 그 말을 증명했다. 

천부적인 재능(물론 재능의 영역도 포함되겠지만)과 행운만이 아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도구를 사용한 결과 혼자서는 절대 옮기지 못할 배를 옮겼듯이, 우리에게는 적절한 지렛대가 필요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에 지레 겁을 먹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시도해 보지도 않은 채로 그저 안전한 길만 선택하려고 하면 배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충분히 긴 지렛대와 같은 힘이 있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은 삶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렛대는 외부적인 힘일까?

저자는 이 지렛대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모든 변화는 내면에서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어떤 것을 집중하고 즐기고 도전하는지에 따라 지렛대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말한다. 

《안전의 대가》는 7가지 인생의 지렛대를 소개한다. 이 지렛대를 활용하는 방법은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렸다. 

관심 - 삶의 경험은 무엇을 집중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이것은 전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시간 - 몰입의 순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 

직관 - 내면의 나침반을 믿으라, 성공이라는 지도는 버리고. 

제약 - 한계와 제약이 무조건적으로 삶을 방해하는 요소는 아니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놀이 - 일상과 일은 모두 놀이다, 기쁨과 에너지로 바꾸는 놀이에 대한 중요성을 기억해야 한다.

실패 - 완벽주의는 갖다 버려라, 실패를 겪더라도 빠르게 회복하는 과정의 배움이 필요하다. 

실천 - 원하는 것을 생각만 하지 않고 하루를 채우는 행동으로 옮겨라. 


​기존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의 자기계발서의 양식이라기보다는 거의 심리 상담에 가깝다. 안전이라는 틀을 선택하기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내면을 살피고 지금-여기를 강조한다. 삶을 창의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한 대담한 삶, 지렛대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첫 번째 지렛대의 관심과 집중부터 마지막 실천까지 저자가 꼭 강조하는 거대한 흐름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뜻밖의 선물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원래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기에 불확실함과 모호함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창조적인 삶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장면들이 하나씩 이어지는 영화 같은 삶이다. 이야기 한복판에 위치한 인생에서 퇴장해버리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생을 영화, 예술이라고 생각해 봤을 때 우리는 작품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중 놀이와 실패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삶의 본질 자체가 놀이이며 삶의 맥락을 놀이로 풀어낸다면 창조적인 삶이 가능해진다.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말고 모든 일이 놀이라면? 실패할 까 두려워 진지하게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다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인생에 과몰입하지 말라, 불교에서는 이를 '자각 연습'이라고 한다. 현재만이 전부다, 지금, 여기. 


실패 또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삶을 축소시키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패로 상처를 받을 수는 있지만, 당신이라는 존재는 실패는 아니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실망은 그 일에 마음을 충분히 쏟았다는 증거이며 그 실패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눈뜨게 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다. 즉, 뜻밖의 선물들로 이루어지는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불확실성이 지배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불안과 좌절을 안겨 주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로 재정의할 수 있다. 

《안전의 대가》는 현재의 순간, 내면에 집중하면서 앞날에 펼쳐질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공신화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예술가이며 인생이라는 예술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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