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계절의 수첩
고다 아야 지음, 황국영 옮김 / 책사람집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이 머리맡에 항상 두고 읽던 책인 《나무》의 저자, 고다 아야의 계절에 대한 에세이다. 고다 아야가 타계한 후, 딸인 작가 아이코 다마가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모아 출간한 책으로 "삶의 감각과 태도를 전하는 책"으로 알려졌다. 이전 《나무》에서도 섬세한 감성과 관찰로 13년간에 걸친 나무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했기에 이번 계절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사계절이 지나가며 느끼는 찰나의 감정, 계절과 계절 사이의 그 헛헛하고 덧없는 동시에 다음 계절에 대한 기대감까지 섬세하게 기록된 에세이에서는 짙은 계절의 냄새가 느껴진다. 봄의 흔들리는 꽃 냄새, 여름의 비가 내린 후의 흙냄새, 가을의 떨어지는 낙엽 냄새, 겨울의 차가운 공기 냄새. 찰나의 순간 사라지는 모든 감각들이 선명하게 표현된 글들에서 계절을 기다리고 살아낸 삶에 대한 쓸쓸함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다시 다음 계절을 기다는 마음을 품은 이가 가진 내일의 희망, 삶의 근사함, 감사함이 몽글몽글 떠오른 책이다. 이 역시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 반복된 계절 속, 하루하루 속에서 성실히 작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봄날과 아버지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은 이전에 《나무》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경쟁하듯 서로 아버지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식물 이름을 줄줄 외던 언니마저 어머니가 돌아가신 2년 후 잃었다. 남동생마저 저자가 스물두 살 때 먼저 하늘로 가버렸다. 작가에게 남은 가족이란 아버지뿐이었으므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 그리움, 설움과 정념은 더욱 깊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한평생을 연구하고 직접 만지며 겪은 모든 식물, 글쓰기 또한 작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그 지혜와 지식을 습득했다. 저자의 모든 삶의 원형에는 분명 아버지가 뿌리 깊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 맨 처음 에피소드부터 봄날의 정취가 묻어나는 날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봄은 힘든 계절이다. 모든 생명이 소생하고 겨우내 찬 바람과 겨울의 혹독한 흔적을 녹이는 따스한 햇살과 기온이 찬찬히 들어오기 시작하지만 봄이 되면 이유 없는 쓸쓸함에 잠긴다. 이 쓸쓸함이란 가을에 느끼는 쓸쓸함과는 또 다른 층위의 감정인데,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우수, 마음에 엷은 그늘이 드리우는 것은 금세 떠나버릴 시간들에 대한 쓸쓸함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기엔 적절한 슬픔의 계절이다. 사랑과 애착을 주고받던 대상이 꽃처럼 흐트러지며 봄이라는 기억을 남기고 떠나갔지만, 보낸 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므로 그저 바라보고 머무를 수밖에 없는 덧없음. 


​저자의 아버지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사랑했던 식물과 동물에게 점점 거리를 둔다. 봄이 성큼 다가와도, 피어나는 꽃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즐기기보다는 이제는 모든 것을 보내주고 돌아가야 하는 흙을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생성의 결과인 꽃과 열매를 사랑하고, 지난날을 뒤로하는 노년에는 가장 고요하고 원숙한 흙을 사랑한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각자가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다르듯 나의 지난봄 안에서 사랑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내년에 또 봐!


​줄기처럼 이어져 뻗어나가는 추억, 모래알처럼 작게 떠오르는 추억, 가냘프고 희미하지만 이어져 나가는 추억, 떨어진 낙엽처럼 이제는 부재하지만 현존했던 생명력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계절, 가을.

​"내년에 또 봐! 희망 사항인지 부탁인지 모를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외침에서 왠지 모를 망연함과 애착이 느껴진다. 마치 '잘 가, 마지막까지 잘 살아내줘서 고마웠어'라는 인사를 하는 것처럼.


​늘 훌륭한 마무리를 짓는 단풍의 모습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봤을 때 도저히 마무리를 잘 해왔다고 할 수 없는 범람의 연속을 그때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보다는 이제 와서 소망한들 무리일 것이니 그저 단풍을 동경한다는 저자의 말은 살아온 날들을 위무한다. 그렇지, 모든 일에서 완벽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면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겠지. 그저 훌륭한 마무리로 떨어지는 낙엽을 기쁘게 바라보는 것이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리고 내년에 또 봐!라는 말로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계절이기에 올해는 조금 덜 몸살을 앓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자는 영차영차 젊었을 때 애를 쓰고 살아온 자신을 다독인다. 나이가 들며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지나간 날들에 대한 후회, 자책보다는 그땐 영차영차 애를 쓰며 부단히 살아왔으니 이제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며 내가 나를 봐주는 것. 


꽃과 나무의 상생, 근사한 여름날의 밤과 훈풍, 단풍의 끄트머리, 서리가 낀 겨울날의 새벽의 냄새까지 사계절을 감각한다는 것이 삶을 얼마나 깊이 감각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 읽는 동안 나의 계절과 기억이 소환되고 지나가는 이 계절을 조금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계절의 감각과 인생의 해상도를 높이는, 선물하기도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갈피와 거짓말의 계절 도서위원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이자, 도서위원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 《책갈피와 거짓말의 계절》. 전작은 읽지 않았지만, 제법 캐릭터가 명확하게 잡혀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일본 미스테리 소설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콤비의 원형에 가깝다. 다시 만난 호리카와와 마쓰쿠라 콤비는 도서실을 무대로 투구꽃이라는 맹독을 지닌 꽃 책갈피를 우연하게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전작에서는 두 사람이 약간 대면대면하게 결말이 났다고 하는데 다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뭉치는 두 사람에게 지난 어색함은 잘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밀한 사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건을 파헤치는 내내 묘한 긴장감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분명 숨기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이것이 두 사람이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낸 문제의 투구꽃 책갈피. 투구꽃은 맹독으로 많은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살인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투구꽃을 활용하여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범죄 사례도 있을 정도. 때마침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 높던 교사가 투구꽃 중독 증세로 쓰러지고, 교정 뒤편 화단에서 독초가 재배되고 있었다는 불온한 사실까지 드러난다. 여기에 본심을 감춘 채 그 책갈피가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수수께끼의 여학생 '세노'가 합류하며 주인공들은 사건에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일까


소설은 이 맹독을 둘러싼 치열한 두뇌 싸움이 아니라, 그 이면에 얽힌 인물들의 '거짓말'을 파헤치는 과정을 조망한다. 투구꽃을 처분하려다 들키자 종이봉투가 없어서 일단 땅에 묻어 숨겼다며 서툰 변명을 늘어놓는 세노, 그리고 누군가가 과거에 만든 책갈피를 복제해서 뿌리고 있다는 자조 섞인 진실까지, 십대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본심을 겹겹이 감춘다.

책을 반납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으면서도 못 봤다고 거짓말을 했던 나(호리카와), 그리고 다른 식물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오직 투구꽃만 단번에 알아보았던 마쓰쿠라의 비밀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호리카와의 대립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누구나 조금씩 거짓말을 하니까, 거짓말이 한 방울 섞여 있다고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거짓말이 된다"는 나(호리카와)의 독백은 꽤나 씁쓸하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합리화인가, 아니면 그저 해석과 각자의 입장의 차이일 뿐인가. 확실한 것은 세 명의 인물 모두 자신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는 거짓과 진실을 섞어버린다는 점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에게 하는 거짓말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방어적인 거짓말인가 아니면 다른 이를 공격함으로써 혼란 뒤에 숨어버리는 거짓말인가. 소설은 계속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를 알아가고자 한다.


마지막 수단


왜 이 책갈피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세노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갈피의 복제본을 가진 또다른 인물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이것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본래는 치명적인 살인 도구이지만, 궁지에 몰린 십대들에게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이 위험한 물건이 하필이면 벽돌책 고전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사이에 끼워져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설정 또한 묘하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맹독을 품고, 누군가는 거짓말로 무장하며, 또 누군가는 기꺼이 비밀을 끌어안는다. 사건의 진상이 모두 밝혀진 뒤에도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그렇게까지 말 그대로 독을 품어야 하는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각자의 절박함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민낯이 그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골 1 :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 40주년 기념판 더 골 (40주년 기념판) 1
엘리 골드렛 지음, 강승덕.김일운.김효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40년 동안 천만 부가 팔렸다는 어마어마한 타이틀과 '경제경영서의 바이블'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책. 복잡한 수식과 딱딱한 이론이 가득할 것 같지만, 막상 책장을 넘겨보면 거창한 경영 이론보다는 당장 내일 거리에 나앉게 생겨 '궁지에 몰린' 한 직장인의 처절한 생존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필독서로 꼽는 이 책은, 폐쇄 위기에 처한 베어링턴 공장의 공장장 '알렉스 로고'가 겪는 팍팍한 현실과 문제 해결 과정을 한 편의 소설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직원들과의 갈등, 가족 간의 갈등 등의 리얼한 상황과 대치되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경제 용어가 많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데 아마 많은 이들이 회사, 가정 내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라 공감이 가는 상황 때문일 것이다. 혼란스러운 위기 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이성과 현상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책이다.


내 자리는 여기야


하루아침에 공장이 폐쇄될 위기에 처해 지독한 피로감을 안고 퇴근한 알렉스가 머리를 새로 하고 온 아내의 원망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장면은 우리네 아버지 세대를 연상시켜 마음이 짠해진다. 특히 "내 자리는 여기야"라고 알렉스가 말하는 부분에서는 영화 <어쩔수가 없다>를 연상케 한다. 여기는 내 자리, 자리를 지키려면 어쩔수가 없다는 무너져버린 가치관의 균형이 갈등을 낳는다. 


이 엉킨 실타래를 푸는 과정은 목표를 재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원자재 저가 매입, 우수한 인력 확보, 첨단 기술 도입. 알렉스는 이런 화려한 리스트의 함정에 빠진다. 정작 그 거대한 시스템이 비즈니스에 기여해야 하는 본질을 놓치기 시작하는데, 물리학자인 요나 교수님과의 우연한 만남과 사정을 다 보지도 않았는데도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핵심과 본질을 집어내는 요나 교수님의 조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 "하지만 교수님은 물리학자시잖아요?"


​과학적인 지식, 우수한 기술, 모든 것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 궁극적인 목표(이윤 창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스마트 기술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요나 교수님의 말을 통해 저자는 말한다. 지능이란 결국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통찰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삶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지식


알렉스는 요나 교수님을 따로 찾아가기 시작하고 점차 핵심과 본질에 다가서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효율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전체 시스템의 흐름을 방해하는 제약 요인을 찾아내고 관성을 깨며 변화를 만들기 위한 사고 과정의 단계로 넘어간다. 낡은 인프라를 걷어내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갈 때, 문제가 되는 지점을 넘어 대안을 설정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설정해야 함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경영이든 어떤 것이든 지식이란 삶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리더 혼자 목표에 천착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모든 구성원이 이 변화의 세 단계를 이해하고 공감해야만 병목을 돌파할 수 있다.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고 내가 딛고 있는 두 발의 목표(골)가 무엇인지 직시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도모해야만 한다는 것을 저자는 소설의 형태로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 2500년을 건너온 인생 수업
노무라 소이치다로 지음, 류휘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일본의 우울증 치료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노무라 소이치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저자는 의학적 접근이 통하지 않던 환자들에게 노자의 말을 들려줬더니 증상이 호전되는 일이 반복해 일어났다고 한다. 아예 노자의 가르침을 우울증 치료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며 긴급 '처방'하듯이 엮은 글들, 노자의 《도덕경》을 바탕으로 노자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많은 불안의 상황들과 엮어냈다. 


마음이 불안하다, 우울하다는 말도 여러 가지 갈래가 있다. 타인과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스스로가 너무 무가치하게 느껴지거나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거나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거나 등등. 우울증 치료 의사답게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어려운 상황들을 35가지 주제로 나뉘어 맞는 상황에 적절한 노자의 말들을 처방해 준다. 가볍고 부담 없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볼 수 있는 책, 느슨하고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노자의 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하고 널찍한 책이다. 


인생의 전성기에는 공자, 인생의 침체기에는 노자


'인생의 오르막길에는 공자, 내리막길에는 노장'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공자는 공자의 가르침, 노장은 노자 철학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공자는 예의를 중시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리도록 가르치고 노자는 느슨하게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는가라고 넌지시 물어서라고 한다.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 '저지 프리 judge free' 사고방식, 판단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사고방식을 말하는데 이는 노자의 무위라는 개념의 가르침과 닿아 있다. 노자의 가르침은 어떠한 존재든 그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하니 자꾸 억지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인다. 다이아몬드가 안되어도 돌멩이가 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말,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라는 언어들. 


​너무 몰입하고 힘주지 말고 조금은 느슨하게, 이 정도면 괜찮다는 '무위'의 가르침, 인생의 내리막길에는 노자를 보고 다시 올라가는 전성기가 오면 인생을 탄탄히 다지는 공자를 공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굳건히 행하는 자는 뜻있는 자이다


노자의 느슨한 가르침 중에서 무력한 혹은 무가치한,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는 상태의 있는 자들에게 하는 위로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분명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대한 만큼 성과가 없을 때 또는 스스로가 뒤처지는 것만 같을 때가 필연적으로 있다. 남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나는 그저 그 자리에만 머무는 것 같은 인생,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순간이다. 그저 바다의 부초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시간들. 

노자는 노력하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00 사고'라는 비유를 든다. 여기서는 '시계 사고'를 해보자고 제시하는데 그 예시가 적절하다. 

시계는 그 그저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 움직이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인 시계, 노력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이 되고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다. 

사람마다 결과를 내는 타이밍, 시차가 다르다는 말은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그러나 시계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구나, 시차가 존재하면서도 시계의 바늘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조금 늦은 시계가 있을지언정 시계 자체로 이미 목적은 달성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노자 철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안내하는 '실용 인문서'로 어려운 동양 철학서를 우울증 정신과 의사가 각 상황에 맞게 고민을 분류해서 제시한다.

쉽고 가볍고 노자의 동양철학을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나 충고는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좋지 아니한가라는 느슨한 힌트를 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의 그릇 - 나를 비우고 뜻을 채우는 52주간의 마음공부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른다움’을 쌓아 올리는 데 필요한 ‘마음 그릇’의 정수를 담아낸다. 마음 그릇은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 감정, 태도를 길러내는 것으로, 선조들이 남긴 모든 고전의 핵심은 바로 이 ‘마음을 다루는 공부’에 있다. 이러한 어른들의 마음공부를 함께 동참하며 마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빚어내 세상을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문장들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이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 p. 22


《맹자》에는 사람을 본성적으로 선한다는 성선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근거로 네 가지 선한 마음(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제시한다. 이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맹자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잘 가꾸며 지켜나갈 때 어른스러운 덕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짜 어른'이란 무엇일까, 품격 있고 우러러볼 만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쉬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나이만 먹었지,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 또한 귀양 생활을 시작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고난을 '여가'로 생각했다고 한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어서 나타나는 태도가 아니라 마음공부를 꾸준히 한 사람의 넉넉한 그릇임을 엿볼 수 있는 태도다. 

어른은 자신의 품에 맞게 마음 그릇을 빚어내어 성숙한 방식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님을, 타인을 향해 너그럽고,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며, 역경 앞에서도 의연하게 웃을 줄 아는 '진짜 어른'. 일상의 크고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내 품에 맞는 단단하고 넉넉한 '어른의 그릇'을 빚어가고 싶다.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선조들이 남긴 마음공부의 문장들을 나침반 삼아,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맹자에는 '대인', 큰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큰 사람,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된 사람이 아니라 나이에 합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크고 작은 것의 중요성을 잘 선택하는 사람, 올바른 도리를 기반으로 선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야말로 '대인', 어른인 것이다. 눈앞의 얄팍한 이익이나 순간의 감정(작은 것)에 매몰되지 않고, 올바른 도리와 선한 본성(크고 귀한 부분)을 지켜내는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인의 길인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내 안의 '순수한 어린아이'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 본다. 당장의 작은 것에 급급한 삶, 나이에 합당하지 못하게 부끄러운 행동에 겉돌고,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소인의 삶을 이제껏 걷지 않았나. 


어른의 품격이란 태생적으로 주어지거나 지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성실함, 그리고 매 순간 깨어있는 생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정돈하는 치열함에서 비롯된다. "평안한 후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후에 얻을 수 있다"라는 《대학》의 구절처럼, 분주하게 휩쓸리는 일상 속에서도 멈추어 머물며 나의 말과 행동을 깊이 사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진정한 어른이란 어느 날 고정된 형태로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돈하는 치열한 과정이다. 맹자가 말한 잃어버린 선한 마음을 끊임없이 되찾고, 다산이 강조한 부지런함과 사유로 텅 빈 일상을 단단하게 채워나갈 때 어른다움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닌, 나이에 합당한 품격을 갖춘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내 품에 맞는 넉넉한 마음 그릇을 정성껏 닦아내는 묵묵한 연습을 이어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