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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59종 나무들의 지혜를 담은 글로 모든 페이지마다 푸르름이 가득한 나무 일러스트가 담겨 있는 싱그러운 책, 아마존과 굿리즈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나무 철학서'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전에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이 읽던 책, 고다 아야의 <나무>라는 책을 통해 나무들도 사람 인생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본 적이 있어 인상 깊었다. 나무에게도 인생의 이력이 있고 그 쌓아 올린 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 나이테와 뿌리를 이루는 것들을 보면서 나무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태도를 관조할 수 있었다.
고다 아야의 <나무>는 저자가 직접 죽은 나무를 베어 보기도 하고 산에 나무를 찾아가는 과정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50가지가 넘는 다양한 나무의 간단한 특징들과 더불어 거기서 오는 지혜를 일러스트와 함께 전달한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책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는데 막연하게 나무처럼 든든하고 탄탄한 사람이라고만 생각되는데 이처럼 다양한 나무를 보니 다양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범위가 너무 넓다. 그러니 이제는 심재가 단단하고 견고한 혹호두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려 4억 년 가까이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나무들, 변화에 적응하고 풍파를 견디며 살아남는 방식을 가장 잘 아는 나무들.
가장 이끌리는 나무 먼저 읽어보아도 좋고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찾아보아도 좋다. 어디를 펼쳐도 꾸준하고 천천히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키워낸 나무들이 존재하니.
이제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되고 싶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나무보다는 화려한 꽃들을 더 좋아했다. 활짝 개화하여 수려하게 자신을 펼쳐놓을 수 있는 꽃을 꿈꿨다. 다른 이들의 눈에도 꽃같이 보이길 원했다.
은유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나는 꽃에 집착했다. 꽃무늬 옷, 꽃무늬 가방, 꽃무늬 액세서리로도 모자라서 새벽 꽃 시장에 가서 감당하지 못할 꽃들을 사 왔다. 나무야 뭐, 그냥 길거리에 있던 애들이고.
눈에 띄어야 했고 열매를 맺어야 했고 화려한 나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세상 사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만 화려하게 살아지던가 개화에 집착하다 보니 나는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만 휩쓸리고 더더욱 나라는 사람을 꽃처럼 보이기 위해서 괜한 가시만 돋았고 내면을 돌보지 않았던 날들이 많았다.
꽃이 아니라 이제는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를 꿈꾼다. 수천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서 단단히 뿌리내리고 물을 길어 마시는 나무들, 단 한 번의 박수갈채가 없어도, 어떤 일이 닥쳐도 순응하고 사는 나무들처럼. 묵묵히 감내하고 적응하는 소리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추위와 더위에 따라 잎사귀의 모양은 변하겠지만 차곡차곡 세월의 흐름을 쌓는 나무가 되고 싶다.
수천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 단단히 뿌리 내리며 강인하게 자라왔을 뿐이다. 단 한 번도 박수갈채를 바란 적 없이.
p.22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생존을 위해 나무들은 꼿꼿하게 버티지 않는다. 햇빛의 양에 따라 빛을 흡수하는 세포의 수를 줄이거나 늘리며 섬세하게 조율하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줄기와 뿌리를 더욱 굶고 튼튼하게 키워 스스로 균형을 맞춘다.
강풍이 불면 몸을 낮추고 유연하게 적응하며 때가 되면 밑동에서 스스로 새순을 힘차게 밀어 올린다. 혹시 손상된 부분이 있다면 건강한 부분까지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상처 난 자리를 감싸고 상처를 딛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강하다는 증거라는 말이 나무들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세찬 풍랑이 올 때 단단하게 꼿꼿이 서서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휘어지고 조금 부러져도 상처를 동여매고 견뎌내는 자세, 4억 년을 살아남은 자연이 몸소 보여주는 지혜다.
마음도 그저 꼿꼿하게 버티다간 언젠가 부러질 수도 있다. 바람이 오면 잠시 몸을 낮추고 스스로를 정비할 시간을 가지는 유연함이 있어야 하는데 항상 나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서 이리저리 부러진 것 같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기지도 못할 풍파를 맞고 부러졌냐는 듯 나무들은 우아한 몸짓으로 유연하게 자신을 보호한다. 그 몸짓을 닮아가고 싶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개암나무가 온몸으로 실천해온 삶의 철학이다.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