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스피치 스피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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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강의 중 기업 경영인을 대상으로 한 9편의 강의 모음으로 경영 방식 변화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강의하는 말투 그대로 활자로 옮겨놓아서 중간중간 목소리와 제스처 등이 상상 가능한 책이다.

기업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과 창조적 상상력은 어떻게 형성하는지 패러다임 시프트 등에 대한 고찰을 읽어낼 수 있다. 기업 경영인뿐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조언이자 격려였다. 

농림수산식품부 특강(2010), 중앙공무원 교육 강연(2009),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총회(2009), 한국표준협회 대한민국창조경영인상 시상식 특별강연(2009) 등에서 한 강의 그대로 활자로 옮겨두었기에 중심 내용과 사례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언어'에 대한 가치는 여러 번 보아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창조의 1단계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9개의 강의를 모두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언어'의 힘이다.

말의 힘, '워드 파워'는 무기나 돈보다 강력한 힘이다. 

언어는 도구적 기능이 80퍼센트, 미적 공감이 20퍼센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어령 선생님은 말한다. 20퍼센트에는 문화와 영혼이 있으니, 말속에는 삶과 죽음과 사랑과 드라마가 속해 있어 자력을 가진다고.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모국어로 볼 수 있다고 기뻐했다. 아무리 잘 번역된 글이라도 한국인만이 가진 정서와 한은 한국 사람이 가장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와 문학을 읽는 것도, 언어가 가진 힘을 느끼기 위해서다.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다독여주는 언어를 만나기 위해서. 

한글은 더욱 특별한 언어다. 생성 문자로 위치에 따라 생성되고 변화되는 글자다. 'ㅗ'를 뒤집으면 'ㅜ'가 되고, 'ㅏ'를 돌리면 'ㅓ'가 되는 등 계절처럼 순환되는 구조의 한글은 한 글자가 위치에 따라 여러 개가 되는 독특한 말이다. 

한국어를 일깨우는 일은 사천 년을 살아온 귀중한 DNA와 지혜를 나누는 일이다. 순환적이고 창조적인 문자, 언어의 영혼 아래 살아가는 민족이라 기쁘다. 이어령 선생님은 한국인이라서 더욱 강점이 있다는 격려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직접 들었다면 더욱 감동적이었으리라.  


인간을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 창조


창조적 상상력을 길러라. 뭐를 창조하라는 것인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이것 또한 인문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한다. 

즉, 인간을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 창조라는 것.

배만 부르게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맛있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행위 그것이 창조의 본질이다.

과학기술을 발명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는 창조가 아니라 인문학에서 나오는 것이 창조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창조여야 하는 것.

블랙 스완의 발견처럼 통계도 확률도 아닌 관념과 통념을 부수고 시대의 체온계를 가져야 하는 것, 언젠가는 어제의 것이 통하지 않는 날이 불시에 닥칠 것이라는 것. 이것이 창조가 필요한 이유다. 


패러다임 시프트, 사실을 해석하는 코드를 바꿀 수 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세상은 피시스(자연), 노모스(법). 세미오시스(상징)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자연과 법은 달라지기 어렵지만, 상징은 세미오시스는 바꿀 수 있다. 사실을 해석하는 코드를 바꾼다면, 세상을 창조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또 강조되는 것이 언어인데, 말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강풍에 90퍼센트의 사과가 떨어진 일본의 사과농장은 단 10퍼센트의 떨어지지 않은 사과의 상징을 마케팅에 활용했다. 강풍을 이겨내고 견뎌낸 떨어지지 않은 사과는 수험생들에게 불티나게 팔렸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 마케팅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어제까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보람차고, 시인과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면 최고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에서 경영자에게 하는 말이기 전에 한 인간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 퍽 다정했다.


강의의 마지막은 항상 격려의 말이 붙는다. 그것이 단지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의 자기 계발서 같은 말이 아니라, 창조적 경영의 다양한 근거와 예시를 통해 살펴보았으니 우리도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는 격려다. 

순간순간을 어제와 다르게 살고자 했던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어제의 나에서 창조적인 내일의 나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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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로운 생활 - 생활 밀착 네덜란드 로컬 라이프
김지윤 지음 / 마음연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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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안락사, 성매매가 합법인 무법지대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나라이지만 자유와 규제에 대해 평등하므로 안전하고 정직한, 화사한 색상과 소박한 곡선을 가진 튤립을 닮은 나라.

살면서 몇 안 되는 나라를 여행했지만, 한곳만 다시 선택해서 여행을 가라고 하면 나는 단연코 네덜란드다.

<더치로운 생활>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8,551km 떨어진 새집

네덜란드가 가르쳐 준 것들

내가 사랑한 네덜란드

산책하듯 여행하며 사는 법

겨울을 찾아서


작가는 남편을 따라 살게 된 타국이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함께 살아나가며 일상 속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불필요한 소비, 과도한 통제가 없는 자유롭고 실리적인 균형의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이 낭만적이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실제로 네덜란드인들은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대마초, 홍등가(사창가), 동성애, 안락사가 모두 합법인 곳이지만 범죄율이 낮은 나라. 바다에 가라앉는 나라를 풍차를 돌려 육지를 보존하는 나라. 

네덜란드는 여러모로 상식 밖의 나라이다. 하지 말라고 규정해버리면 음지화될 수 있는 것들을 오히려 합법화시키고 이왕 하려면 안전하게 하자라는 너무나도 혁신적인 나라. 

오히려 이렇게 모든 것을 공정하고 안전하게 규율을 만들었기에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 도시 같은 디스토피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함을 미덕으로 삼고, 선을 지키는 나라가 된 것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품위를 지키는 나라, 이것이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에 가면 또 하나 놀라는 것이 자전거인데, 남녀노소 대부분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자전거의 나라라고 할 만큼 자전거가 많고 차와 사람보다도 자전거가 우선이 된다. 

산업 혁명을 겪으면서 폭증한 자동차로 인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한 겨울의 강추위(암스테르담의 겨울은 습해서 더욱 춥다)에도 소박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보면 너무나 건강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작가는 처음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궁상맞아 보인다고 하는데, 익숙해지면서 삶에 녹아든 독립심과 인내심의 순간으로 보인다고 했다. 환경에 순응하고 자유에 대한 선을 지키고, 소박한 품위를 지닌 곳, 무조건적인 경쟁과 부를 과시하는 체면 문화에서 멀어진 곳, 감자튀김과 하이네켄이 있는 곳, 매력 있는 곳이다.


튤립 없이는 네덜란드도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네덜란드를 방문한 시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겨울이라 튤립을 못 봐서 너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튤립에 진심인 나라, 꽃이 일상이고 언제 어디서든 꽃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인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3월 세계 최대 꽃 축제인 쾨켄호프가 열린다. 

사진만 봐도 너무 아름다운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근사할까라는 생각에 더욱 아쉽다. 

봄의 시작부터 끝까지 튤립으로 채우고, 여름과 가을엔 또 다른 꽃으로 갈아 심기를 반복하는 일 년 내내 꽃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나라.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항상 함께라는 것이 너무나 낭만적이다. 

인생이 힘들 땐 아름다운 것을 자주 봐야 한다고 했다. 꽃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도처에 널린 곳에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흔하게 주어진다고, 공짜로 주어지는 순간이라도 결코 소박하지 않고 하나하나가 거대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음을 이제 조금은 느낄 수 있다."<더치로운 생활> p.106


고흐, 베르메르, 렘브란트의 나라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과 고흐 미술관은 바로 붙어있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베르메르 작품은 델프트라는 도시에 있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전 세계에서 약 35점 정도 되는데, 여행에서 운이 좋게도 9점 정도를 보았다. 세계에 흩어진 베르메르 작품을 모두 보는 것이 작가의 꿈이라는 데, 나도 마찬가지다. 

2023년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열렸었는데 전 세계에 같은 꿈을 가진 이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표는 구할 수도 없었고 2022년에 이미 다녀온 나로서 한 번 더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피눈물을 쏟은 기억이 있다. 

암스테르담은 완전한 도심, 운하의 중심이지만 델프트는 또 다른 소박한 풍경을 선사해서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저자 또한 델프트의 모습을 보며 소박한 아름다움과 생기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왜 여기에서 탄생했는지는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넘치는 매력의 낭만의 나라, 네덜란드. 낭만하면 보통 프랑스 파리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파리보다는 소박한 낭만을 선사한 네덜란드가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 다시 한번 여행했던 기억들을 되짚으며 잠시나마 행복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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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서 - 250년 동안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침묵론의 대표 고전 arte(아르테) 에쎄 시리즈 3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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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기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20대 때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너무 종교적인 내용이 많아 기독교 서적으로 오해했다. 아무 정보 없이 읽은 거라 시대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덮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았다. ​


디자인도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내용과 번역이 훨씬 현대적으로 매끄럽게 되어있어 매우 읽기 쉬웠고 난해한 부분도 거의 없었다. 난해하다고 느꼈다면 그건 내가 종교가 없기 때문에 18세기 당시 기독교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번역과 내용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침묵의 서>는 침묵을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넘어서 생각과 마음,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로 소개하며 정리한다. 다양한 종류의 침묵이 존재하고 침묵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언어와 글쓰기에 대해 언급한다.

250년이 지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그 속에서 적절한 때에 지혜롭게 침묵하며 내면의 자아를 다스리는 침묵의 가치를 설명한다. 인간은 시대가 변해도 세상의 소음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는 욕구가 존재하며 침묵하지 못해 헛되고 잘못된 말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려주며 고전이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고전이다. 


<침묵의 서>는 명확하다. 언어와 글의 침묵을 다스려라는 직관적인 주제에 걸맞게 두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침묵의 종류와 기술, 나아가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통해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는 언어들을 침묵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입 다물기, 교활한 침묵


침묵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지 몰랐다.

<침묵의 서>에서는 열 가지 침묵에 대해 설명한다.


1. 신중한 침묵이 있고,


2. 교활한 침묵이 있다.


3. 아부형 침묵이 있고,


4. 조롱형 침묵이 있다.


5. 감각적인 침묵이 있고,


6. 아둔한 침묵이 있다.


7. 동조의 침묵이 있고,


8. 무시의 침묵이 있다.


9. 정치적 침묵이 있다.


10.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침묵이 있다.


나는 수동형 공격성이 매우 강하다. 타인에게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면 상대방을 당황시키거나 일부러 답답하라고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침묵을 무기로 사용하는 때가 많은데, 이 중에 해당되는 것은 교활한 침묵이다. 

저자는 정확히 꼬집는다. 편협하고, 의심이 많고, 남을 도발하거나, 앙심을 품기 쉬운 사람이 즐겨 활용하는 교활한 침묵이라고. 

그렇다면 교활한 침묵의 자세를 지양하면서 어떤 침묵을 지향해야 할까 살펴보니,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섯 번째 감각적인 침묵이었다. 

인간은 약 6%의 언어, 나머지 94%의 비언어적인 요소로 타인과 대화한다. 표정과 몸짓, 눈빛 등의 비언어적인 것들을 사용하면서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감각적인 침묵. 이 침묵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더니


250년 전에도 꼰대는 존재했구나 싶은 내용들이 열거되어 웃었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더니, 200년 전에도 그런 덕목이 필요했나 보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 부분에서 화가 많이 난 걸 보니 꼰대들에게 많이 당했나 보다. 

'그저 나이로만 자신의 가치를 셈하려는 오류, 지긋한 나이에 자기 혀 하나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 타락한 의중을 노출하는 사람, 늙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하기를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 

표현들이 하나같이 화가 잔뜩 묻어 있다. 경험에서 나온 바이브 같은 느낌..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다. 핵심만을 말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미사여구가 길어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 가끔 기분이 이상해진다. 아, 저 사람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만 자꾸만 충고하려 하거나 타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버려 자신의 언어부터 일단 내뱉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왕왕 만날 수 있다. 

적절한 침묵을 유지하기,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은 꿀벌과도 같다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의미도 교훈도, 재미도 없는 글을 그저 쏟아내는 과도한 글쓰기. 

글쓰기에서조차도 적절한 침묵을 필요하다. 미주알고주알 횡설수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을 갈기는 그런 책은 독자나 작가나 피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글을 쓰는 이는 꿀벌 가도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유익한, 매우 섬세하고 소중한 작업이라는 것. 

언어란 말로도 글로도 표현될 때는 신중하고 적절하게 덜어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여전히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대부분 혼나는 내용이다. 

여러 번 혼나고 반성했다. 구석에 가서 손들고 있어야 할 듯..


그렇지만 왜 침묵론의 대표 고전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료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박력에, 지난날의 잘못된 공격성 침묵 혹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말실수의 과오에 대해 반성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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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쓸모 -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인생 그림
윤지원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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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때론 난해하고 어려울 때가 많다. 미술 관련 글을 쓰고, 전시회에 다닌다고 하면 나는 미알못이라서 그런 거 모른다는 반응이 90% 이상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디자인, 미술이다. 모른다고 하기엔 각각의 취향과 선호하는 색들이 있고 훌륭한 안목과 취향을 지닌 사람이 많다. 미술사적 맥락에 압도되어 위축되는 말일 것이다. 

<그림의 쓸모>는 예술이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예술도 한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 인생을 표현한 결과물일 뿐이며 이것은 우리의 삶과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공감하며 마음의 확장을 일으킬 때, 그때 인생은 조금 더 넉넉해진다. 예술가들의 색채와 고뇌의 인생을 살펴보며 오히려 나를 더 살펴보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화가의 대표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이 어떤 힘을 주는지, 어떤 상황에서 이 그림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단지 글을 읽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을 덧붙여 조금 더 삶에 밀접하게 예술가들의 생애와 우리의 삶을 연결 짓는다. 


불확실함에 직면하기,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볼 때마다 배경이 헷갈린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인 것 같기도 하고, 절벽 위인 것 같기도 하다. 제목에 안개 바다라는 설명이 있어서 이것이 안개구나, 그럼 바다는 아니겠구나, 그리고 안개가 끼는 시간이면 새벽이겠다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안개는 유동적이다. 불확실한 상황과 마음들은 계속 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며 삶을 흔든다. 반면의 바위는 견고하다. 그 위에 서 있는 방랑자의 자세도 반듯하고 견고하다. 뒷모습이라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굳이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내면의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뒷모습은 때론 앞모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축 처진 어깨의 뒷모습은 우울한 표정을 보는 것보다 더 우울하고 안쓰럽듯이, 프리드리히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관람자로 하여금 시선을 따라가며 상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도를 '뤼켄피규어'라고 하는데, 프리드리히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도다. 관람자가 상상하게끔 하여 자신과 그림 속 인물을 동일시하게 만들어 초대한다. 단시 수동적인 그림 감상자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경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불확실한 안개 앞 견고한 자세로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미지의 세계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 낭만주의의 화가 프리드리히가 그린 그림은 이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 삶을 조망하고, 불확실한 안개를 응시해 보며 흔들리지 않고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성찰하기. 이러한 성찰들이 나를 조금 더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추락하는 별도 빛난다,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다른 이카루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추락이기라기보다는 별들과 함께 춤추는 사람 같다. 오만함에 대한 경고라기엔 경쾌하고 단순한 형태는 시선을 더욱 잡아둔다. 

앙리 마티스는 나이가 들어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려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되자 종이를 오려 붙이는 단순한 표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붓을 들지 못하는 슬픔이 드러나는, 꺾인 열망이 아닌 새로운 시도로서의 예술은 이전보다 더욱 자유롭다. 추락하는 별도 빛나듯이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추락 중이면서도 심장이 붉게 타오른다. 

단순화된 작업은 일상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겼다. 추락이 아닌 비상의 관점만을 포착함으로 여기가 마지막일 것 같았던 구간을 전환시켰다.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나는 지금 내려가고 있다는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낄 때가 많다.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다시 날아오르면 된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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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미술관 - 명화가 건네는 위로의 말들
추명희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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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있다고 한다. 

부정, 억압, 반동형성, 전이, 투사 등 듣기만 해도 부정적인 어감을 자랑하는 말 그대로 방어적인 기제도 있지만 그 와중에 승화라는 것이 있다. 

승화란 본인의 부정적 특성과 욕구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예술로서의 발현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미술치료 이론의 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들의 아픔과 고독, 상처를 굳이 굳이 찾아보는 것은 어쩌면 그 승화의 기록을 살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고통을 끌어안은 17인의 예술가, 상처는 어떻게 작품이 되었는지, 어떤 고독과 아픔이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이번 책을 통해 마주할 수 있다. 아픔을 녹아든 그림이 명작이 되듯, 상처를 견대낸 삶은 작품이 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온 그림, 프란시스코 고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극중 흐름상 경고의 의미로 나온 그림이다. (제목을 진짜 못 외우겠네, 지금까지 부잣집 막내아들인 줄 알았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프란시스코 고야. 

자신의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긴다는 신탁을 받은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많은 화가들은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그림을 그릴 때 위협적인 포즈만 취하지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자식을 뜯어먹는 광기의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스페인 화가였던 고야는 전쟁을 직접 여러 번 겪으면서 스페인 편에 붙었다, 프랑스 편에 붙었다가를 반복하며 살아남은 화가다. 보통 침략을 당하면 왕가에 있던 사람을 모두 죽이기 마련이건만, 고야는 실력과 아첨으로 살아남았다. 

젊은 시절부터 욕망 하나로 스페인 궁정 화가로 가장 잘 나갔지만, 지옥 같던 전쟁을 겪으면서 보았던 인간의 잔인한 군상과 살아남기 위해 떨었던 아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영혼을 온전하고 평온하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야는 부와 명예 모두 지녔지만 결국 귀가 멀게 되며 점점 은둔 생활을 하며 집에 '검은 그림' 연작 시리즈를 미친 사람처럼 그리다 생을 마감했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도 이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다. 

<모래 늪의 개> 또한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로 모래 늪에 빠져 죽음을 앞둔 개의 모습을 그렸다. 발버둥 치는 것은 오래전에 포기했을 터이고 곧 모래바람이 닥치며 모래 속으로 깊이 침전할 터이다. 두려움보다는 허공을 응시하는 개의 눈빛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 작은 개는 곧 고야 자신이 아닐까. 

쓸쓸함과 고독, 두려움 그 사이에서 죽음을 앞둔 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공경 받고 성공한 인생 한 번 살아보겠다고 전쟁도 하나의 소재로 삼아보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공허한 마음만이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먼지 한 톨도 반짝거린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림도 37점 정도밖에 없고, 생애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만큼 사랑받는 화가도 또 없다. 

무엇보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는 귀족이나 왕족, 신이 없다. 일을 하고 있는 하녀나 악기를 연주하고 편지를 보는 여인 등 당시 네덜란드의 일상 속의 여성들만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 부끄럽지만 나는 이전에 그런 일상을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별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소박하고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는 것은 재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반드시 뭐가 되어야만 멋진 삶이라고 생각해 마음만 앞서가다 다치기 일쑤였고, 그렇게 넘어지면 스스로를 루저라고 여겼다. 

아름다움과 빛나는 것이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마주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임을 그런 일생이 숭고한 삶임을 베르메르의 그림은 알려준다. 

베르메르 자체도 그런 사람이었던 듯하다. 고요하고 소박하고 하루하루를 그림으로 성실히 채웠던 사람. 다른 화가들처럼 막장 스토리를 얹지도 않았고 전쟁을 겪지도 않았지만 일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전에는 빵값이 외상으로 밀렸고 작업 속도도 더뎌 큰 인기와 부를 누리지는 못했던 화가로, 죽고 나서도 오랜 시간 동안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진주 귀고리의 세부 묘사 대문이 아니라 소녀가 마치 진주처럼 내면의 광채로 빛나기 때문에 이 그림이 특별해졌다고 한다. 

먼지 한 톨에서도 반짝이는 햇빛을 알아보는 것, 일상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마주하는 눈빛, 그것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나의 영혼을 시들지 않게 지키는 방어기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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