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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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발터 벤야민의 소설, 꿈 기록, 설화 등을 처음으로 한데 모은 문학작품집 <고독의 이야기들>이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평가이자 철학자이다. 소설을 쓰다 말다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모음집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번 어려운 단어로 씐 비평 및 철학서(대부분 이해하기가 까다롭다)를 보다가 문학이라고 하여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건만, 세상에 더 어려웠다.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를 이해를 못 해서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었지만 발터 벤야민의 문장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롭고 꿈같은 무의식을 유영하는 듯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불안, 경계를 넘나드는 감성과 문체. 그리고 파울 클레의 날카로운 그림들까지 인간 존재의 모호함에 대해 흔드는 사유가 어려웠지만 다시 되짚게 되는 그 무언가가 가득한 책이었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을 그냥 쭉 보면 매우 혼란스러우므로 한 부를 읽고 난 뒤, 편집자 해체를 함께 비교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1부: 꿈과 몽상

2부: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

편집자 해제: 발터 벤야민과 말장난의 흡인력


벤야민은 최고의 이야기꾼인 프루스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그리움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일그러져 있는 세계, 현실의 진짜 얼굴인 초현실이 돌발 출현하는 세계였다.” 

벤야민에 대해, 그리고 벤야민 본인의 픽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p.355


경계의 문턱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불안

일상 속에 스며든 낯섦, 친숙한 것과 기이한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이런 '문턱'에서 펼쳐진다. 경계를 넘어설 때의 그 아슬아슬한 균형감, 존재의 불안과 매혹이 공존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벤야민이 포착한 이 문턱의 경험이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우리는 모두 여러 경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정체성의 경계, 사회적 규범의 경계,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이 경계에서의 흔들림이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와 존재 방식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꿈의 언어로 쓰인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마치 시계의 초침이 멈춘 듯한 시간성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꿈 기록들은 선형적 시간에서 벗어나 순환하고, 중첩되고, 갑자기 정지하는 시간을 그린다. 

「저녁의 목신」과 같은 작품에서 벤야민은 도시의 색채와 리듬을 꿈같은 이미지로 포착한다. 이 환상적 묘사는 역설적으로 도시의 실재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모더니티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독과 소외,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해방의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의 이론적 글에서 추상적으로 표현되었던 생각들이 여기서는, 구체적인 인물과 상황,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살아 숨 쉰다. 이는 마치 파울 클레의 그림과도 같다. 추상과 구체의 경계에서 떨리는 그 특유의 진동이 느껴진다.


놀이하는 인간의 감수성 

벤야민은 동화의 본질적 힘을 포착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오락거리로서의 동화가 아니라, 군사(軍事)적 은유로 가득한 세계에서 "현대인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모든 형태의 놀이와 유희의 가능성이다.

벤야민의 3부 작품들은 아이들의 놀이와 언어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세계 인식에 균열을 내는 존재론적 실험이다. 그에게 아이는 단순히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들이 잃어버린 지혜의 원형을 간직한 존재다. "아이 사냥꾼과 식인귀는 독일 전래 동화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그가 지적하듯, 동화 속에서는 삶의 파괴와 생성이 끊임없이 순환한다. 우리가 '비합리적'이라 배척하는 이 원초적 세계 인식이야말로 기술문명이 가져온 소외와 단절을 치유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다.

단순히 라디오라는 매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넘어, 매체와 '놀이하듯' 관계 맺는 법을 모색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다. 우리 시대의 "식인귀"인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삼켜버리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그 안에서 새로운 놀이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미래의 정치적 상상력의 씨앗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놀이하는 아이'의 윤리는 새로운 공동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철학적 모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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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보는 그림 - 매일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명화의 힘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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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 인생이 달라지겠지, 서른이 되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마흔이 되면 인생이 덜 흔들리겠지. 

어느덧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름 열심히 뭘 해본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이룬 게 하나도 없을까? 왜 아직도 목적 잃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릴까?

삶은 항상 모호하고 견딜 수 없게 흔들리다가도 또 어느 날은 좋기도 하다가 내가 별로이기도 하다가를 반복한다는 것을, 예술가들도 그랬다는 것을. 그때마다 되뇐다.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에서-

어쩌면 예술이, 아름다움이, 예술가들의 불안과 고뇌가 나를 계속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표지 디자인 살펴보기

마크 로스코, <No. 11>, 1957년, 캔버스에 유화, 201.9x177.2cm, 개인 소장

로스코의 그림은 하나의 거대한 문 같다. 

"나는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했던 로스코의 말처럼 색채의 층위가 주는 강렬함은 내면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진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예술이 주는 위로의 힘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주황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8명의 예술가의 인생과 그림을 통해 결국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들을 말해준다. 그들이 남겨둔 삶과 예술은 위로, 용기, 버팀, 홀로서기의 순간들에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타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

 

타인의 뒷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뒷모습은 생각보다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뒷모습을 꾸며내거나 연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빌헬름 하메르스회, 화가는 거의 일평생 아내의 뒷모습 혹은 엿모습만을 그렸다. 아이도 없는 두 사람만이 사는 공간에서의 아내 이다의 뒷모습에서 하메르스회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조용한 회색빛이 감도는 공간에서의 아내는 독서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고 있거나, 사색에 잠겨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어떤 표정과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뒷모습만을 보고 그 모호한 것들을 유추해 보는 수밖에 없다.

조용하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는 뒷모습은 잔잔하고도 적막하여 어떨 때는 외롭고, 어떨 때는 처연하기도 하며, 어떨 때는 평화롭다.  

화려한 색채와 기교 없이 잔잔한 하메르스회의 그림은 점차 가장 존재감 있는 위로의 화가로 부상하고 있다. 밀도 높은 잔잔함, 타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자기 자신의 감정의 농도, 차원이 다른 적막함에서 피어나는 고독 혹은 평화를 많은 이들이 경험한다. 

인생의 모호함은 때로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바쁘게 무언가를 해내야 하지만 이도 저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 잠시 그 알듯 말듯 한 하메르스회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의 뒷모습에 생각하게 된다. 내 뒷모습은 무엇을, 어떤 내면을 말하고 있을까. 



마크 로스코

미술 보는 것이 지겹고 다 때려치우고 싶으면 다시 그의 작품 앞에 어떻게든 찾아가 기어이 다시 서있는다.  2015년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마주했었던 그의 그림 앞에서 느낀 전율, 어쩌면 그것은 스탕달 신드롬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로스코 그림 앞에서 운다. 누군가는 기절했다고도 한다. '이 정도는 나도 그린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그 앞에 서면 그런 말을 안 한다던데, 내가 그랬다. 사진으로 보고 이거 나도 하겠다고 콧방귀를 뀌고 가서 전시를 보고 나와서 한동안 얼떨떨했다. 


보지 않고선 배길 수 없고,

생각에 잠기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깊이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보는 순간 완전히 벌거벗은 자신을

마주하게 될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마흔에 보는 그림> p. 90


살기 위해 어린 시절 건너온 미국에서 자라나면서 받은 인종 차별,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며 예술가로서의 실패를 겪고 가난을 지나 성공 반열에 올랐지만 자신이 실패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인정 욕구에 집착하던 영혼, 결국 67세에 손목을 그어 생을 마감했다.

그런 그가 남긴 예술 속 색채는 불안과 패배감으로 가득하지만, 보는 이들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결국 내면에 가득 찬 패배감은 나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보는 순간 숨기고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언젠가 로스코 채플에 가보고 싶다. 그 안에 들어가 하루 종일 고요히 앉아있고 싶다. 보는 순간 완전히 벌거벗은 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싶다. 지옥 같은 불안의 내면 속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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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꿈
김민정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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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이상기후로 수몰하는 섬들이 생기며 그 지역의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상 현상이 있는 지구가 배경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되고 플라스틱 소재의 새로운 기술이 인류의 신체 일부를 교체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세 사람으로 각자의 꿈을 위해, 목적을 위해, 열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SF적 상상력을 합친 성장소설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사라진 언어를 연구하는 대학생, 지빈. 

가슴이 뛰고 열정적인 일을 찾고 싶지만 모든 것은 무료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어느 날 실험 참가자가 '고치바' 회사의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신체의 일부를 교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이는 '사천꽃밭'에 가보게 된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발효 미생물로 만들어진 신소재의 꿈의 물질로 소각장(사천꽃밭, 모든 질병을 고치는 꽃들이 모여 있다는 신화 속 공간)에 플라스틱을 훔치려 오는 밀렵꾼이 많다. 

종아리 근육이 약해 선수로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수중무용가 치아루도 이 중 하나였고, 지빈과 두 사람은 사천꽃밭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천꽃밭의 밀렵꾼을 쫓아내고 관리하는 가람. 

가람은 치아루의 공연을 자주 보러 갔고 그걸 알게 된 치아루와 지빈은 가람에게 접근하여 플라스틱을 얻고자 한다. 


언젠가 너에게 다시 돌아갈 거야, 다른 형태로


플라스틱은 영어로 '쉽게 변하는', '진짜가 아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세상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플라스틱을 버린다는 것은 온 세상을 버리는 곳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소설에서 플라스틱은 곧 꿈이다. 시시각각 변하고, 진짜가 아닌 허상, 이룰 수도 없고 이미 성취했을 수도 있는, 터무니없을 수도 있고 그것만이 온 세상의 희망일 수도 있는 꿈. 쉽게 변하고, 진짜가 아닌 플라스틱, 꿈.

꿈을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좌절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버린 것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다시 돌아간다는 희망이 있다면 제법 근사한 버림이 아닐까. 

버려진 것은 그대로 떠나보내되 다시 꿈꾸게 하는 다른 형태의 그 무엇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인생의 전부인 치아루의 꿈 앞에서 로봇은 묻는다. 

"정말 버리지 않을 거야?"

무료한 삶의 열정적인 그 무언가의 꿈을 열망하는 지빈에게 고치바 CEO는 묻는다.

꿈을 찾는지, 꿈을 버리는지, 버린 꿈을 다시 찾으려 온 건지.

"당신은 어느 쪽이죠?"

어떤 것을 선택해도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면, 다시 그것이 나를 기꺼이 찾아낸다면 꿈을 꾼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희구하고 반복해서 다가가기 위해 삶의 굴레가 돌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삶의 연속, 다카포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 플라스틱=꿈과 더불어 거듭 이야기되는 메타포는 '다카포'이다. 곡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주하라는 뜻의 악상 기호, Da Capo.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주인공들은 이해했지만, 나중에 가서야 이 뜻을 온전히 자신의 삶에 받아들인다.


니체의 말이 연상된다.

"몇 번이어도 좋다! 끔찍한 인생이여, 다시!"


산다는 것은 변수의 연속이고 계획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매일매일 돌아가는 삶 속에서 다시, 다시, 다시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 그럼 언젠가 그 다시 한 번 고민하고 희구하던 것들이 삶에 다른 형태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세 사람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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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 - 윤동주 전 시집과 반 고흐 그림 138점
윤동주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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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기에 다양한 예술, 문화 행사가 많을 예정인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광복 80주년이자 윤동주 시인이 서거한지 80주년을 맞이하여 시인을 추모하기 위한 시집으로 윤동주 시인의 124편 작품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138편이 담겨 있다.


윤동주 시인의 유명한 시부터 나중에 발굴된 시까지 엮은 것에도 이미 큰 의의가 있다. 게다가 영혼과 정서가 닮은 반 고흐의 작품까지 함께 수록되어 시와 함께 그림 감상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술의 전당에서 얼마 전 고흐 전시회가 있었으나,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고 어두웠던 미술관 내부 조명 때문에 찬찬히 관람하기는 다소 어려웠다. 그 아쉬움을 달래듯, 찬찬히 시와 함께 음미하며 그림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그림이 수록된 책은 인쇄 상태와 종이의 질에 따라 그 해상도가 많이 달라지는데(아무리 좋아도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최고지만),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은 종이 질도 좋아 해상도가 미관을 해치지 않아 고흐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좋을 것 같다. 


맨 처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열면, 아 이거지 하는 감성이 되살아난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사랑하고 가슴 뭉클한 그 시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시대와 불화한 사람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와 삶의 고뇌에 대한 시를 쓰다 체포되었고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결코 꺾지 않았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으로 대한민국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신화화되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화가. 살아있을 때 단 한 점의 그림만이 판매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다 광기의 문 경계에서 서성이다 결국 자살로 마무리된 비루하고 비참한 삶. 


두 사람 모두 시대와 불화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시대에서 고통스럽고 슬픔으로 채워가며 꺾이지 않는 그들의 신념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이자 울림이 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들여다보았고, 보고 예술로 만드는 행위에서 항상 자아성찰을 하였다.

별과 바람의 흐름을 사랑하고 자신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두 사람의 눈빛과 글, 색채와 시에서 나타난 시대와 불화한 슬픔과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상처와 고통이 선선히 비춘다. 완전하지 못한 삶이야말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두 천재는 삶으로, 예술로 보여준다.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된다


시집에 수록된 많은 그림은 시와 잘 어울리며, 고흐의 그림이 대부분 유명한 만큼 반가움의 눈길이 간다.

그중 그나마 덜 알려진 그림으로, 유난히 내가 좋아하던 그림이 있어 유심히 보았다. 윤동주의 시와 참 잘 어울린다.


해가 넘어가는 무렵, 포플러 나무 거리를 거니는 한 여성, 그 뒤로 들어오는 노을빛과 빛에 반사된 낙엽들. 쓸쓸하고 적막하다. 


시는 더욱 구체적이다.


이윽고 사색의 포플러 터널로 들어간다.

시라는 것을 반추하다. 

마땅히 반추하여야 한다.

(중략)

노래는 마디마디 끊어져

그믐달처럼 호젓하게 슬프다.

윤동주 <야행>


그믐달처럼 호젓하게 슬프다.


타박타박 걷는 여인의 얼굴이 더욱 상상된다. 그믐달처럼 호젓하게 슬픈 얼굴이지 않을까. 단지 쓸쓸하고 고독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외로움과 쓸쓸함, 그윽한 한숨으로 걸어가는 그 길. 


윤동주, 고흐 두 사람이 느꼈던 쓸쓸함은 이런 쓸쓸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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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천홍규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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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갑작스레 동생과 사별하게 된 동생에게 바치는 동시에 동생과의 기억과 추억을 담고자 펴낸 시집이다.


역시나 아득했다가 곡진하다가도 덤덤하고 무망하다고 느껴지는 신과의 거리, 기어이 따라잡히는 정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구하는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운이 많이 남았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삶 속에서 야속하게 세상은 흘러간다. 나의 세상은 상실되었고 흔들리며 버텨내야 하건만 '세상은 삐그덕삐그덕' 굴러간다. 

손을 잡고 날아가는 새, 길가에서 춤을 추는 꽃, 살랑이는 잎들이 봄을 알리고 지나가다 멈춰 선 얼룩 고양이, 지나가는 구름. 

나의 세상은 무너지건만, 그럼에도 세상은 고요히 아름답게 흘러간다. 이런 세상에서 '너만 없는 그런 허무함'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상실감이 무서운 것은, 나만 빼고 모든 것이 다 평온하기에 느껴지는 시차와 세상에 대한 이질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버텨내야만 겨우 하루가 넘어가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굴러만 간다. 

마치 나의 삶의 시계만 고장 난 것처럼.


삐그덕 굴러가는 세상이 '너무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표현이 절절하다. 상실의 아픔 앞에서 그럼에도 세상은 굴러가니까, 흔들리는 꽃을 지탱하는 손가락 하나가 있으니까, 너무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꽃은 동생과 저자를 형상화하여 드러나고 있다고 해설에는 설명한다. 흔들리는 꽃을 지탱하는 손가락 하나, 그 작은 하나, 서로의 존재의 이유를 깨치는 그 손짓 하나에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당신이 부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는 기억 속에서


상처를 그냥 단순히 상처라고 하는 것은 실례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다 다른 이유의 상처이기에 그 상처에 알맞은 이름을 붙여 불러주어야 한다고.


어떤 기억들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어떤 기억은, 고통은, 상처는 삶에 들러붙어 있다고 믿는다. 그 흔적이 어느 때는 아프고 어느 때는 조금 덜 아팠다가 더불어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너 없는 삶이 눈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고' 먼 훗날 만났을 때 말해줄 것이라는 말에 이렇게 삶은 살아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때론 웃었고, 때론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으며, 때론 가슴 벅차오르고 때론 무너지고 때론 기억에 짓눌려 아파했지만 울기만 한 삶은 아니었다고. 시간이 지나며 훼손되지 않는 고통의 삶이 있었지만 슬퍼하지만은 않았다고.


​그렇게 시인은 다시 삶을 살아간다.

'美는 언제나 관념의 승리에서 나타나더라, 美를 채집하는 일이 나의 기쁨이로구나'라며.

쉽지 않을 것이다. 박제된 상처는 불현듯 다시 찾아올 것이며 도망치려 해도 기어이 찾아낼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자의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것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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