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그림 - 매일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명화의 힘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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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무 살이 되면 인생이 달라지겠지, 서른이 되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마흔이 되면 인생이 덜 흔들리겠지. 

어느덧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름 열심히 뭘 해본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이룬 게 하나도 없을까? 왜 아직도 목적 잃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릴까?

삶은 항상 모호하고 견딜 수 없게 흔들리다가도 또 어느 날은 좋기도 하다가 내가 별로이기도 하다가를 반복한다는 것을, 예술가들도 그랬다는 것을. 그때마다 되뇐다.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에서-

어쩌면 예술이, 아름다움이, 예술가들의 불안과 고뇌가 나를 계속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표지 디자인 살펴보기

마크 로스코, <No. 11>, 1957년, 캔버스에 유화, 201.9x177.2cm, 개인 소장

로스코의 그림은 하나의 거대한 문 같다. 

"나는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했던 로스코의 말처럼 색채의 층위가 주는 강렬함은 내면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진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예술이 주는 위로의 힘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주황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8명의 예술가의 인생과 그림을 통해 결국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들을 말해준다. 그들이 남겨둔 삶과 예술은 위로, 용기, 버팀, 홀로서기의 순간들에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타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

 

타인의 뒷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뒷모습은 생각보다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뒷모습을 꾸며내거나 연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빌헬름 하메르스회, 화가는 거의 일평생 아내의 뒷모습 혹은 엿모습만을 그렸다. 아이도 없는 두 사람만이 사는 공간에서의 아내 이다의 뒷모습에서 하메르스회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조용한 회색빛이 감도는 공간에서의 아내는 독서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고 있거나, 사색에 잠겨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어떤 표정과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뒷모습만을 보고 그 모호한 것들을 유추해 보는 수밖에 없다.

조용하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는 뒷모습은 잔잔하고도 적막하여 어떨 때는 외롭고, 어떨 때는 처연하기도 하며, 어떨 때는 평화롭다.  

화려한 색채와 기교 없이 잔잔한 하메르스회의 그림은 점차 가장 존재감 있는 위로의 화가로 부상하고 있다. 밀도 높은 잔잔함, 타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자기 자신의 감정의 농도, 차원이 다른 적막함에서 피어나는 고독 혹은 평화를 많은 이들이 경험한다. 

인생의 모호함은 때로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바쁘게 무언가를 해내야 하지만 이도 저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 잠시 그 알듯 말듯 한 하메르스회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의 뒷모습에 생각하게 된다. 내 뒷모습은 무엇을, 어떤 내면을 말하고 있을까. 



마크 로스코

미술 보는 것이 지겹고 다 때려치우고 싶으면 다시 그의 작품 앞에 어떻게든 찾아가 기어이 다시 서있는다.  2015년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마주했었던 그의 그림 앞에서 느낀 전율, 어쩌면 그것은 스탕달 신드롬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로스코 그림 앞에서 운다. 누군가는 기절했다고도 한다. '이 정도는 나도 그린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그 앞에 서면 그런 말을 안 한다던데, 내가 그랬다. 사진으로 보고 이거 나도 하겠다고 콧방귀를 뀌고 가서 전시를 보고 나와서 한동안 얼떨떨했다. 


보지 않고선 배길 수 없고,

생각에 잠기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깊이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보는 순간 완전히 벌거벗은 자신을

마주하게 될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마흔에 보는 그림> p. 90


살기 위해 어린 시절 건너온 미국에서 자라나면서 받은 인종 차별,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며 예술가로서의 실패를 겪고 가난을 지나 성공 반열에 올랐지만 자신이 실패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인정 욕구에 집착하던 영혼, 결국 67세에 손목을 그어 생을 마감했다.

그런 그가 남긴 예술 속 색채는 불안과 패배감으로 가득하지만, 보는 이들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결국 내면에 가득 찬 패배감은 나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보는 순간 숨기고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언젠가 로스코 채플에 가보고 싶다. 그 안에 들어가 하루 종일 고요히 앉아있고 싶다. 보는 순간 완전히 벌거벗은 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싶다. 지옥 같은 불안의 내면 속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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