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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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자 르네상스의 3대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화가로서의 업적보다는 인간 다빈치에 대한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다.


다빈치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에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라고 적었다. 아니 무슨,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가 뭔 말이야. 님은 천재신데요? 상당히 황당하게도 다빈치는 자기 자신을 예술가라고 칭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자로 불리길 원했고 그 유명한 다빈치 노트에는 자신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관찰하며 발명한 발명품들에 대한 스케치와 기록이 담겨 있다.


'천재'라고 하면 마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혜성처럼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특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천재'라는 프레임은 오히려 다빈치의 노력과 열정을 가리게 되었다. 이 책은 남들보다 특별한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다빈치의 집요한 관찰력과 노력, 열정, 자기 한계를 느끼며 넘어서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한다.


ADHD 마냥 이것저것 손대다가 이도 저도 마무리 못하는 산만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만큼 세상 모든 것에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자신이 이룬 것이 없어 좌절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닌 실패한 경험이 최고의 인생 공부임을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려는 위대한 인간.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스스로 말했지만, 그 말이 좌절이 아닌 그렇기에 더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산만한 천재


다빈치는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보고 관찰하며 선생들을 붙잡고, '왜', '어째서'를 남발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전형적인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고 진단하는데, 이를 보며 자꾸만 드라마 <빅뱅이론>의 쉘든의 이야기를 담은 <영 쉘든>에서의 어린 쉘든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왜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까지 갖가지 실험을 했다.


그 호기심과 열정은 지칠 줄 몰랐고, 실패라도 그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또 다른 가설로 나아가는 것으로 활용했다. 전형적인 과학자의 마인드다. 실패하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을 하나 줄인 것으로 인식하는 그 태도, 실험 정신이야 말로 자신의 경험을 이용하는 열쇠임을 알며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인간의 군상이지 않을까, 눈앞의 작은 실수와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경험을 지혜 삼아 나아가려는 태도에서 내면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다소 산만한 천재에게도 결점은 있으니, 미루기도 천재적이었다는 것.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뭔가를 하다가 중단하고 다시 그 실력을 연마해서 훗날 제대로 완성시켜야 했으니 완성된 것이 거의 없다. 여담이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엄청 비아냥 거렸다고.

작가는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한다. 미루기의 제왕이 아닌 마감 기간을 딱딱 맞춰서 다빈치가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놨으면 지금처럼 기억될 만한 가치를 가졌겠는가? 미루는 버릇을 용납해 주는 매력적인 설명이다. 그의 완성된 작품이 너무 많았으면 분명히 희소성이 적었으리라.


미완성된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계속 더 나은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실험과 자세,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완성시킨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다빈치는 자신의 욕망을 과정과 경험으로 삼았다. 그리고 전 생애 동안 계속 반복했다.


단 한 가지도 이룬 것이 없다


"훌륭한 화가는 두 가지를 그린다.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영혼이다."


다빈치의 말에서 예술이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선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된다. 단순 기술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던 시대상을 확실하게 거부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아닐까.


다빈치가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모습은 큰 교훈을 준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조차 스스로를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며 평생 학습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겸손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또한 화가는 철학, 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까지 모든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전문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융합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진정한 거장이란 실력뿐만 아니라 인격적 완성도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본인은 "단 한 가지도 이룬 것이 없다"라고 했지만,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다양성과 완벽성을 추구하는 과정, 수려한 기술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담기 위한 예술가의 자세, 융합적 사고까지 그가 이룬 것들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 다만 '천재'라는 프레임에 너무 가려져 있어 모든 것을 타고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길 뿐. 낡은 사고방식과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 장인 다빈치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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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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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부터 재점검하며, 생태계의 복잡성과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과학적 통찰로 설명한다. 


서문에 바이오스피어 2 실험의 실패 사례를 보여준다. 생태계를 똑같이 만들어 생물이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인데 이는 모두 대실패로 끝난다. 이를 통해 지구 생태계의 정교함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데, 지구 상에서 숨을 쉰다는 것과 현재의 생태계에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자연 보전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투자임을 강조하며, 인간이 자연의 소비자가 아닌 일부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윤리적 전환을 촉구한다. 


점점 세상은 이상해진다. 계양산을 검색하면 바로 러브버그가 추천 검색어로 뜰 만큼 우리나라 기후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다. 유럽에서 폭염과 폭설 때문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동남아 기후처럼 변하며 습한 더위와 스콜이 지속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생태학자로 지구 곳곳을 들여다본 저자는 그 통찰을 제시한다.


생태계에 대한 정의, 환경, 순환부터 시작하여 생물 다양성이 어떻게 계속해서 파괴되어 가는지, 숲이 인간의 편의에 의해 어떻게 몰락하는지 등 생태계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왜 인간에게 있는지, 경제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윤리적인 문제와 해결책 등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바이오필리아(생명에 대한 사랑)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자연을 좋아했다. 순수악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나비와 잠자리, 매미 등을 그렇게 채집하려고 하루 종일 뙤약볕에 돌아다녔고 개울가의 작은 물고기만 보면 또 어찌나 신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던지. 살아 움직이는 생물만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봉숭아 잎을 따다 손톱을 물들이며 기뻐했고 가을에는 단풍잎을 주워 코팅하여 이쁘게 오려서 가지고 다녔다. 


자연계에 저절로 이끌리는 성향,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가지고 있었고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거대한 자연 경관을 보면서 감탄한다. 그랜드 캐니언, 쏟아지는 별들의 은하수 광경, 나비 떼나 반딧불이 떼를 보며 느껴지는 경이로움. 사람에게는 자연계에 끌리는 성향이 존재한다. 


이것을 저자는 바이오필리아(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모든 생물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세균부터 고등동물까지 각각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인간의 도구적 가치 판단을 넘어선 본질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경제적 효용성을 넘어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사랑이 자연 보호의 근본적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종교적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하지만, 꼭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대하는 경외감과 책임감을 키우고 소비 위주의 생활 방식을 성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자연 보호가 단순한 환경 운동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왜 야생이 필요한가?


2019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예시가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 대성당의 화재가 났을 때도 그렇고, 2008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숭례문 화재 때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매일 매 순간 파괴되는 자연 학살과 생태계 파괴에서는 그런 안타까움을 겪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이 만든 문화재는 복원할 수 있지만 한번 사라진 자연 생태계는 되돌리기 어려운 더욱 치명적인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 생활의 무감각한, 불감증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토양 손실, 물 부족,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농업의 위기와 함께 전 세계 토양의 3분의 1이 이미 황폐화되었음을 경고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과 재생 농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미래에는 많은 종들이 고온을 견디지 못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까 싶다. 고기의 양을 줄이고, 일상에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나머지는 기업과 정부, 경제적인 부분이라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안타깝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성과 공감이 모여 생물을 보호할 권리는 만들어낸다면, 개인이 미세하게 분투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이오필리아를 실천하는 판타지 같은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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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가 사라졌다 I LOVE 스토리
니콜라스 데이 지음, 브렛 헬퀴스트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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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가 사라진 그 순간부터, 범인의 행동을 쫓는 추리소설 같은 구성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에 대해 번갈아가면서 전개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모나리자는 눈앞에서 사라졌고, 루브르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그럴 만하다, 그 큰 박물관에서 뭐가 없어졌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모나리자 없는 모나리자 박물관은 이로써 매우 유명해졌다. 홍철 없는 홍철팀 같은 것일까ㅎㅎ. 


모나리자 훔치는 일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훔치는 일과 같다


1911년, 무더운 여름 모나리자가 사라졌다.

루브르는 도난 사건 1년 전에 도난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나리자>를 훔치는 일은 거대한 중세 건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훔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루브르는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후, 아무런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모나리자는 이제 그저 도난당한 그림 정도가 아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접어 주머니에 넣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전까지 소수에 의해 관심 대상이었던 모나리자는 이제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평범했던 인생을 살던 고인이 영웅이 되어버린 것처럼. 

부재한 것은 원래 존재했던 것을 오히려 부각시킨다. 이 역설적 진리는 인간 경험의 본질적 측면을 드러낸다. 우리는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된다. 모나리자는 단순한 미술품 도난 이상이었다. 

부재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일상적으로 보던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고, 그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데 모나리자 도난 사건은 어떤 시각에서는 가치의 재발견일 수도,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유명해서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사건은 역설적으로 이 작품을 불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부재가 존재를 강화한 것이다.

도난 전 모나리자는 소수의 관심만 받던 작품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주목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갑자기 이 그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빈 벽면은 오히려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았고, 모나리자는 하루아침에 전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 '바이럴'이라 부르는 현상, 즉 대중의 관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나리자의 사례는 이미 100년 전에 '부재'가 만들어낸 최초의 글로벌 문화 현상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모나리자가 돌아온 후에도 그 명성이 식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제 '유명해서 유명한' 그림을 보기 위해 루브르를 찾는다. 이는 현대 유명인 문화와 비슷하다. 어떤 연예인들은 그들의 재능보다는 '유명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것처럼, 모나리자 역시 그림 자체의 미학적 가치를 넘어선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진 모호함이 이러한 명성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것들,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것들이 더 오래 우리 기억에 남는다. 그 미소의 비밀은 풀리지 않고,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결국 모나리자의 명성은 예술 작품 자체의 가치를 넘어,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부재가 존재를 강화하고, 신비로움이 지속적인 관심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관심이 스스로를 증폭시키는 현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왜 유명한 것에 끌리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 책은 모나리자의 이야기를 통해 유명세의 본질과 우리 인간 심리의 특성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모나리자의 진정한 가치는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나리자의 이야기는 그저 한 장의 그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범인은 말하지 않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인터넷에만 쳐도 나오는 유명한 도난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전개하면서 나아가는 작가의 예술, 역사, 명성에 대한 통찰이 뛰어나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으로 인해 안타깝게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시선을 견뎌야 했던 예술가들, 당시 사회적 혹은 집단적인 광기 같은 것도 묘사되어 있다. 어린이만 보기엔 아까운 책이다. 어른들이 봐도 아주 탁월한 시선과 전개 방향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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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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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소설, 꿈 기록, 설화 등을 처음으로 한데 모은 문학작품집 <고독의 이야기들>이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평가이자 철학자이다. 소설을 쓰다 말다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모음집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번 어려운 단어로 씐 비평 및 철학서(대부분 이해하기가 까다롭다)를 보다가 문학이라고 하여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건만, 세상에 더 어려웠다.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를 이해를 못 해서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었지만 발터 벤야민의 문장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롭고 꿈같은 무의식을 유영하는 듯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불안, 경계를 넘나드는 감성과 문체. 그리고 파울 클레의 날카로운 그림들까지 인간 존재의 모호함에 대해 흔드는 사유가 어려웠지만 다시 되짚게 되는 그 무언가가 가득한 책이었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을 그냥 쭉 보면 매우 혼란스러우므로 한 부를 읽고 난 뒤, 편집자 해체를 함께 비교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1부: 꿈과 몽상

2부: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

편집자 해제: 발터 벤야민과 말장난의 흡인력


벤야민은 최고의 이야기꾼인 프루스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그리움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일그러져 있는 세계, 현실의 진짜 얼굴인 초현실이 돌발 출현하는 세계였다.” 

벤야민에 대해, 그리고 벤야민 본인의 픽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p.355


경계의 문턱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불안

일상 속에 스며든 낯섦, 친숙한 것과 기이한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이런 '문턱'에서 펼쳐진다. 경계를 넘어설 때의 그 아슬아슬한 균형감, 존재의 불안과 매혹이 공존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벤야민이 포착한 이 문턱의 경험이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우리는 모두 여러 경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정체성의 경계, 사회적 규범의 경계,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이 경계에서의 흔들림이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와 존재 방식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꿈의 언어로 쓰인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마치 시계의 초침이 멈춘 듯한 시간성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꿈 기록들은 선형적 시간에서 벗어나 순환하고, 중첩되고, 갑자기 정지하는 시간을 그린다. 

「저녁의 목신」과 같은 작품에서 벤야민은 도시의 색채와 리듬을 꿈같은 이미지로 포착한다. 이 환상적 묘사는 역설적으로 도시의 실재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모더니티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독과 소외,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해방의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의 이론적 글에서 추상적으로 표현되었던 생각들이 여기서는, 구체적인 인물과 상황,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살아 숨 쉰다. 이는 마치 파울 클레의 그림과도 같다. 추상과 구체의 경계에서 떨리는 그 특유의 진동이 느껴진다.


놀이하는 인간의 감수성 

벤야민은 동화의 본질적 힘을 포착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오락거리로서의 동화가 아니라, 군사(軍事)적 은유로 가득한 세계에서 "현대인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모든 형태의 놀이와 유희의 가능성이다.

벤야민의 3부 작품들은 아이들의 놀이와 언어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세계 인식에 균열을 내는 존재론적 실험이다. 그에게 아이는 단순히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들이 잃어버린 지혜의 원형을 간직한 존재다. "아이 사냥꾼과 식인귀는 독일 전래 동화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그가 지적하듯, 동화 속에서는 삶의 파괴와 생성이 끊임없이 순환한다. 우리가 '비합리적'이라 배척하는 이 원초적 세계 인식이야말로 기술문명이 가져온 소외와 단절을 치유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다.

단순히 라디오라는 매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넘어, 매체와 '놀이하듯' 관계 맺는 법을 모색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다. 우리 시대의 "식인귀"인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삼켜버리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그 안에서 새로운 놀이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미래의 정치적 상상력의 씨앗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놀이하는 아이'의 윤리는 새로운 공동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철학적 모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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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보는 그림 - 매일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명화의 힘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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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 인생이 달라지겠지, 서른이 되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마흔이 되면 인생이 덜 흔들리겠지. 

어느덧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름 열심히 뭘 해본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이룬 게 하나도 없을까? 왜 아직도 목적 잃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릴까?

삶은 항상 모호하고 견딜 수 없게 흔들리다가도 또 어느 날은 좋기도 하다가 내가 별로이기도 하다가를 반복한다는 것을, 예술가들도 그랬다는 것을. 그때마다 되뇐다.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에서-

어쩌면 예술이, 아름다움이, 예술가들의 불안과 고뇌가 나를 계속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표지 디자인 살펴보기

마크 로스코, <No. 11>, 1957년, 캔버스에 유화, 201.9x177.2cm, 개인 소장

로스코의 그림은 하나의 거대한 문 같다. 

"나는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했던 로스코의 말처럼 색채의 층위가 주는 강렬함은 내면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진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예술이 주는 위로의 힘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주황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8명의 예술가의 인생과 그림을 통해 결국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들을 말해준다. 그들이 남겨둔 삶과 예술은 위로, 용기, 버팀, 홀로서기의 순간들에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타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

 

타인의 뒷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뒷모습은 생각보다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뒷모습을 꾸며내거나 연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빌헬름 하메르스회, 화가는 거의 일평생 아내의 뒷모습 혹은 엿모습만을 그렸다. 아이도 없는 두 사람만이 사는 공간에서의 아내 이다의 뒷모습에서 하메르스회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조용한 회색빛이 감도는 공간에서의 아내는 독서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고 있거나, 사색에 잠겨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어떤 표정과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뒷모습만을 보고 그 모호한 것들을 유추해 보는 수밖에 없다.

조용하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는 뒷모습은 잔잔하고도 적막하여 어떨 때는 외롭고, 어떨 때는 처연하기도 하며, 어떨 때는 평화롭다.  

화려한 색채와 기교 없이 잔잔한 하메르스회의 그림은 점차 가장 존재감 있는 위로의 화가로 부상하고 있다. 밀도 높은 잔잔함, 타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자기 자신의 감정의 농도, 차원이 다른 적막함에서 피어나는 고독 혹은 평화를 많은 이들이 경험한다. 

인생의 모호함은 때로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바쁘게 무언가를 해내야 하지만 이도 저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 잠시 그 알듯 말듯 한 하메르스회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의 뒷모습에 생각하게 된다. 내 뒷모습은 무엇을, 어떤 내면을 말하고 있을까. 



마크 로스코

미술 보는 것이 지겹고 다 때려치우고 싶으면 다시 그의 작품 앞에 어떻게든 찾아가 기어이 다시 서있는다.  2015년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마주했었던 그의 그림 앞에서 느낀 전율, 어쩌면 그것은 스탕달 신드롬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로스코 그림 앞에서 운다. 누군가는 기절했다고도 한다. '이 정도는 나도 그린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그 앞에 서면 그런 말을 안 한다던데, 내가 그랬다. 사진으로 보고 이거 나도 하겠다고 콧방귀를 뀌고 가서 전시를 보고 나와서 한동안 얼떨떨했다. 


보지 않고선 배길 수 없고,

생각에 잠기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깊이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보는 순간 완전히 벌거벗은 자신을

마주하게 될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마흔에 보는 그림> p. 90


살기 위해 어린 시절 건너온 미국에서 자라나면서 받은 인종 차별,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며 예술가로서의 실패를 겪고 가난을 지나 성공 반열에 올랐지만 자신이 실패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인정 욕구에 집착하던 영혼, 결국 67세에 손목을 그어 생을 마감했다.

그런 그가 남긴 예술 속 색채는 불안과 패배감으로 가득하지만, 보는 이들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결국 내면에 가득 찬 패배감은 나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보는 순간 숨기고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언젠가 로스코 채플에 가보고 싶다. 그 안에 들어가 하루 종일 고요히 앉아있고 싶다. 보는 순간 완전히 벌거벗은 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싶다. 지옥 같은 불안의 내면 속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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