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에스터 셀스던.지넷 츠빙겐베르거 지음, 이상미 옮김 / 한경art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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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를 기념하기 위해 출간된 책으로 에곤 실레의 생애와 작품에 집중 조명한다.


​실레의 성장 배경부터 실레가 가진 무의식적 욕망의 투사, 누드에 대한 실레의 생각 등 퇴폐적인 미술로 오해받기 쉬운 실레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실레의 중요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고화질의 그림과 함께 톺아주어 작품의 이해도를 높인다. 


​분명 야한데, 이상하게 안 야하다


에곤 실레라고 하면 퇴폐적이다, 야하다, 포르노 같다는 말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분명히 야한데 이상하게 불쾌하기만 하고 안 야하다. 

성적인 충동이 가득한 관음적인 그림들, 분명 미성년자가 보기엔 부적절한 주제가 맞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에로틱한 육체는 잠시일 뿐, 욕망이 혐오와 매혹의 메커니즘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실레는 사실상 여성적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는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살결을 그려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는 여성이 아니라 깡마른 육체에 가슴이나 중요 부위만 지나치게 붉게 칠해져 있어 오히려 살결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실레의 누드는 단순히 그림을 넘어서 영혼의 내면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실레만큼 직접 보지 않고 논할 수 있는 오해가 가득한 화가가 있을까. 

실레는 자기 자신도 누드로 표현했다. 심리적 누드의 모습은 인간의 욕망, 고통, 고뇌 등이 오히려 걸쳐져 있는 것이 없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지만 누드로 표현된 자화상에서 드러나는 고통은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표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그림은 실레의 연필 선과 색채감, 구도 등을 도드라지게 볼 수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인간 실격의 내용처럼 실레 또한 헌신했던 연인을 버리고 신분 상승을 위해 결혼했지만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임신한 아내를 스페인 독감으로 잃는다. 아내가 사망한 사흘 뒤 실레도 독감으로 생을 마감한다. 실레의 나이는 고작 28살이었다. 


도전적인 시선, 도발적인 포즈, 유혹하는 듯한 붉은색의 꽈리 열매. 그러나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허약해 보이는 몸짓에서는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까지 드러난다. 


어머니와 두 아이


실레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높은 신분의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던 욕망이 강했던 것은 어머니와의 골 깊은 갈등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어머니와 두 아이>는 세 개의 연작으로 앞의 두 작품과 확연히 달라진 그림을 볼 수 있다. 

이전의 그림은 어머니는 거의 해골이 다름없고, 아이들 또한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다는 느낌이 없다. 모성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사자(死者)들 같다. 


​실레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의 매독으로 인해 어머니는 이미 여러 명의 아이를 잃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으나 남편에 대한 원망은 아들에게도 투사되었기에 어머니는 실레에게 살갑지 않은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둘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으며, 어머니의 원망을 항상 들어야 하는 실레에게 어머니란 자식을 움켜쥐는 사람이었다. 

에디트와 결혼 후에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감정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실레의 그림에서 어머니는 점차 얼굴에 생기를 찾는다. 


​가정적인 가치보다는 죽음과 모성이라는 우화적 주제에 집중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병치에 대한 탐구로 변한다.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은 굳어 있으나 이전 연작에 비해서 부드러운 연민이 서려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책을 봐서, 보기 전에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본 작품들이 나와서 찍은 사진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책과 전시를 통해 처음 실제로 접한 에곤 실레의 작품에 많이 매료되었다. 퇴폐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실레의 작품을 직접 만나고 그의 생애와 욕망을 들여다보니 실레가 했던 말이 이해가 간다.


​나는 창조자이자 창조물입니다. 나는 예술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에곤 실레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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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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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책으로 괴테의 시 100편이 수록된 <나를 울게 두오!>는 시를 직접 쓰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시를 더욱 음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특히 괴테 특유의 직설적인 문체와 당돌한 투기가 시에서 드러나 시를 읽는 즐거움과 쓰는 기쁨이 함께 어우러진다. 


괴테는 색채에 대한 1,400쪽짜리 논문집을 1810년에 출간했다. 그만큼 색채에 관심이 많았는데, 물리적 색채보다는 심리적/감정적 색채에 관심이 높았다. 

색이란 사람들 각자가 다르게 인식하는 감정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색이 주는 심리적인 특성을 찾는 것에 관심이 높았다. 현재의 색채심리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주황색은 조금 독특한 색이다. 

빨강과 노랑이 섞여 만들어진 색으로 따뜻하고 친근하며 에너지와 재미를 주는 색이다. 

악의 없는 장난기, 풍요로움,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색으로 색채심리학에서는 많이 해석한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표지와 비슷한 쨍한 주황색을 사용함으로써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활기차고 친근한 색을 유발하는 색채와 인생에 대한 환희, 사랑에 대한 열정, 예술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괴테의 시가 사뭇 잘 어울린다. 괴테도 아마 좋아하지 않을까. 


괴테의 시는 당차고 씩씩하다. 

인생에 대한 벅찬 기쁨, 사랑에 대한 애틋하고도 넘치는 열정과 호기심, 꼰대스러운 말도 괴테가 하면 밉지가 않고 위로가 된다.

좋은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서 단어 하나하나를 친히 고르고 또 골라 행과 열에 가지런히 배열해 둔 것을 천천히 음미하는 일이다.


시는 급하게 읽을 수 없다. 차분히 하나하나 곱씹어 보다 보면 일렁이는 불안과 초조함을 잠재우고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산다는 것이 참 부질없이 느껴질 때, 좋은 시를 읽으면 부질없음도 시의 언어가 되어 스며든다는 기분이 좋다. 

내가 가진 우울과 불안도 시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부질없고 무의미한 인생도 시처럼 오밀조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다독이는 듯하다. 


슈베르트의 '마왕'


작곡가 슈베르트의 '마왕'이 괴테의 시가 원작인지 사실 몰랐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라, 조금 부끄럽지만 미약한 나의 지식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추가해 본다.

마왕이 가져가는 것은 아이의 목숨이 아니라 반주자의 손목이라고 할 정도로 고난도의 피아노곡인데다가 1인 4역을 해야 하는 성악가의 어려움이 가득한 악명 높은 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를 보고 너무 인상 깊어 곡을 만들어서 괴테에게 악보를 편지했으나, 당시 유명세가 높았던 괴테는 수많은 편지 중 그 편지를 못 보았다고 한다. 

삶에 대한 환희도 있는 만큼 괴테의 시는 인간의 죽음에도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다시금 생각났다.


괴테의 시를 읽으며 신이 주신 재능이 이런 것이구나를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아직 필사는 하지 않았다. 

왠지 아껴두고 싶은 책이다. 내 삐뚤빼뚤한 글씨로 책을 채우고 싶지는 않고, 틈틈이 번아웃이 올 때쯤 꺼내보아야겠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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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이야기
이스카리 유바 지음, 천감재 옮김 / 리드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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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F 소설책 <인간들 이야기>


6개의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SF 소설로 소재가 독특하면서도 친숙하다.

화성에서 생명의 존재를 찾는 과학자, 태양계 외연의 라멘 가게에서 진상 외계인들 상대하는 사장, 서로서로 감시하는 초감시 사회에서 즐거운 사람들, 투명 인간 이야기 등.

친숙한 주제이지만, 때로는 서늘하고 때로는 씁쓸한 그러나 아직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온기가 서린 소설이다.

책의 제목이자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 <인간들 이야기>의 내용 리뷰만 할 것이지만 가장 병맛은 <중유맛 우주 라멘>이었다.

외계인도 편식하고 진상 부릴 줄이야..


<인간들 이야기>

지구 생명체에 회의를 느끼고 화성의 새로운 생명체를 찾는 과학자 교헤이.

새로운 생명체를 찾는 연구를 성공했지만 이것이 진짜 생명체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은 왜 그것을 찾냐가 아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회의를 느낀다.

고독한 그의 삶에 어느 날 조카 루이가 나타난다.

어린 아이치고 지나치게 성숙한 루이에게 마음이 쓰이던 교헤이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루이의 친아버지를 떠올린다.

행복이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는 매일매일 '타자'의 부재를 느꼈다.

p. 119


이전에 유튜브에서 '궤도' 님이 말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간은 너무나도 우주 상에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외로움을 버틸 방법은 사랑뿐이라고.

사실 칼 세이건의 말이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이란 우주의 관점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아등바등 살지만 한 점 밖에 안되는 존재인지 생각해 본다면 저절로 겸손해지게 된다.

부족함 없이 자란 주인공 교헤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타자의 부재를 느끼는, 어쩌면 지구상에서는 타인과의 거리는 닿지 않을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를 찾아냈지만 그것이 과연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왜 우주 생명을 찾냐는 질문에 우리는 고독한 존재이며 하나의 세포에서 파생된 존재일 뿐이라는 대답을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단지 생명체가 인간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뭐를 할 수 있는지 '기능'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교헤이는 누나가 맡기고(사실은 버리고) 간 조카 루이를 얼떨결에 맡게 되면서 루이의 고독에 처음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타자란, 함께 존재함으로써 내가 여기 있음을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임을 루이를 보며 처음으로 깨닫는다.

우주까지 뒤적거려 다른 생명체의 가능성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고독함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너와 나의 만남이며 서로가 서로를 버틸 수 있는 것은 사랑이었다.

진짜 가족이 되어보자.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료헤이는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타자를 찾아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뭔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SF 장르는 인기가 많이 없다. 영화도 게임도, 소설도. 아마 조금 어렵다는 편견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인간들 이야기>는 배경은 SF이지만 어렵지 않은 세계로 초대한다. 미래로 가도 우주로 가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의 고독은 늘 존재하기 때문에 돌고 돌아 인간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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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공간들 - 소란하지만 행복했던, 다정한 그곳에 대한 단상
이주희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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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장소와 공간에 관련된 저널리스트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존재의 박물관>이라는 책이었는데, 어떤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사람은 무엇이든 남긴다고 했다. 


모든 장소는 저마다 역사를 가진다. 그 역사를 탐색함으로써 우리 존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는데 <모든 순간의 공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저자가 직접 겪은 공간 속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과거와 현재가 만나 일상의 가치를 만든다. 

자신이 머무르는 곳부터 인생의 서사가 시작된다. 


목욕탕부터 시작하여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공간, 마트나 카페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 등에서 겪은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가 만나며 마주하는 인생의 의미들이 다정하게 들어있다. 


이거 뭐지? 왜 아름답지?


미술관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던 저자가 미술관이 어느 날부터 재미있어진 것 계기에 대해 나오는 에피소드가 역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느 날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죽음> 이란 그림을 보고 어 이거 뭐야, 왜 아름답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영화에서도 이 그림은 하나의 모티프가 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진짜로 모델을 드레스를 입힌 채 욕조에 누워있으라고 했다고.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난다. 

우연히 만나본 아름다움에서 확장되는 감정을 느껴보면 아하 모멘트로 접어들고, 점점 더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러다 보면 덕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닫힌 어떤 내면의 문을 여는 기분,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졌다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간다. 


공항은 어려워


혼자 경유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다. 

와, 진짜 그토록 두려운 줄 몰랐다. 환승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면서도 여기가 맞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어 부들부들 떨면서 갔던 기억이 있다.


혼자 탄 비행기가 그렇게 어렵고 무서울 수가 없다. 재밌게도 작가는 전기뱀장어에 비유했다. 푸하하하고 웃었다. 맞아,  독기도 아닌 긴장감이 가득한 전기를 풀충전하고 걸어가는 전기뱀장어 같았으니까. 


​촌스러웠던 경험은 잘 잊히지 않는 법이다. 공항에서 홀로 어려워하며 허둥대던 촌스러움은 한 번 경계를 넘자 세련된 척, 노련한 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항은 어렵다. 

홀로 경유할 때도 허둥, 셀프 체크아웃 키오스크가 생겼을 때도 허둥, 게이트를 찾아 헤맬 때도 허둥.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겠지. 


나만의 세계,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 도서관을 배경을 하는 소설을 특히 좋아한다.

가장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그렇고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일어나는 판타지적인 일들은 도서관이기에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커다란 보호막 같은 개인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곳. 각 책의 작가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혼자만의 세계인 곳. 


책의 제목만 보고 있어도 조각 조각나 두리뭉실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책들의 세계에 압도되어 버리는 곳. 세상의 모든 과거가 기록된 곳. 


그 기록 중 나만을 위한 기록을 기어이 찾아내는 곳, 도서관. 


​저자는 도서관을 독을 푸는 곳이라고 하며 정독도서관에서의 추억을 말한다. 


​특정한 공간에서의 소소한 기억은 기억의 편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기억으로 인해 새로운 '나'를,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하며.


장소는 흔적을 남긴다. 때론 여운을, 때론 부끄러움을, 때로는 촌스러움을, 때로는 향수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에서 찾은 일상의 가치는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왔고 그 추억으로 다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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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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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인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에서는 예술가의 각각의 삶에 집중 조명했다면 이번 책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에서는 라이벌 구도였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예술가들의 이중적이고도 다각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예술가라고 하면 흔히 천재, 비운의 주인공 등으로 신화화되기 쉬우나 그들도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싸우고 흔히 말하는 '지팔지꼰', 불륜으로 사랑과 전쟁을 찍는 등 다사다난한 인생이 많다.


그럼에도 그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킨, 승화시키기까지 어떤 사건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했는지 등 전편보다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그 시절 사랑과 전쟁,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조각으로 시그니처 포즈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 뒤에는 로댕의 그림자처럼 살다가 비참한 인생을 맞이한 여인이 하나 숨어있다.

카미유 클로델.

강렬하고 거친 로댕의 작품과는 달리 편안하고 아름다운 섬세함을 표현할 줄 아는 조각가였다.

로댕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의 나이는 19살, 로댕은 당시 45살이었다.

둘은 제자와 스승 그 이상의 관계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다. 그러나 부적절한 관계가 지속되자 카미유는 결단을 요구한다.

나야, 부인이야. 선택해.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 아닌가?

이런 경우 유부남들이 하는 선택은 어쩜 이전부터 같았다. 카미유와의 스캔들이 알려지면 잃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던 로댕은 카미유에게 이별을 고한다.

여성이 조각가라는 직업을 가지기에는 편견이 난무한 세상에서 여성의 몸으로 홀로 조각가로서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은 로댕의 작품과 카미유가 너무 유사하다고 비난했고 결국 카미유는 로댕이 자신의 작품을 훔쳤다 등의 히스테리로 시작으로 30년간 정신 병동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

카미유 클로델의 <성숙의 시대>에서는 카미유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왜 이렇게까지 그녀는 로댕에게 매달려야 했을까. 자신의 몸과 영혼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그녀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힐난하기엔 너무나 큰 값을 치른 거 같아 씁쓸하다.

그녀의 조각은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매력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버림받았다는 고통을 재료 삼아 조각을 하던 그녀의 삶, 잘못된 선택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마저 집어삼켰다.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는 콜드플레이의 명곡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 유래된 제목이다.

인생을 충분히 비극과 고통으로 채우고 견디고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찬사.

프리다 칼로는 어릴 때 큰 사고로 인해 온몸이 망가진다. 그때부터 붓을 잡아 자신을 그리며 화가의 길을 들어섰고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고 더더욱 망가진다.

자신의 여동생마저도 남편의 바람에 동참하고, 디에고 리베라는 고환암에 걸릴 정도로 수많은 스캔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한 번은 디에고는 자신의 모델들과의 동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건 그냥 악수 같은 거야. 신경 쓸 것 없어."

왜 또 찡얼거려, 자기야. 이 말이지.

참 비참한 인생인데, 프리다는 만만치 않은 여성이었다.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안 받아도 될 수술을 받고,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편의 친구나 주변 사람과 맞바람을 피우는 막장을 벌인다.

기가 막힌 인생, 그러나 프리다는 항상 외롭고 아팠다. 신체적 고통을 참기 위해 모르핀을 중독될 정도로 맞았고, 남편의 바람에 상처받고 아이는 세 번이나 유산됐다.

그녀의 자화상에는 웃는 모습이 없다. 언제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눈을 부릅뜨거나 울고 있지만 그 눈동자에서는 인생을 무망하게 포기한다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당당함과 서늘함이 서려있다.

마지막까지 그 고달픈 인생에게 전하는 말, 인생이여 만세라고 하기까지 고개를 돌리거나 포기해버리지 않고 맞서 싸운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여전히 강렬하다.


모태 쭈굴이, 오딜롱 르동


오딜롱 르동은 어린 시절 몸이 연약해 친척집에 맡겨져 자랐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우울과 함께 30세가 될 때까지 소심하고 쭈구리였던 르동은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 사회 부적응자였다.

상징주의 화풍으로 점차 인정받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기까지 40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자기 자신을 음침하고 쭈굴거리는 모습을 검은색으로 그렸던 초반과 달리 점차 안정되고 인자한 모습을 아름답고 묘한 색상들로 가득 채워 넣은 후반기의 모습은 그가 이제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내 예술이 점점 더 마음에 들어요,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합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의 수많은 실패, 우울, 버림받았다는 상처, 쭈굴쭈굴한 순간들이 있었다. 색채로 행복한 음을 만들기까지 르동이 회복한 자존감에는 색과 그림,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던 그가 이뤄낸 승리의 선언.

르동이 보여준 예술에는 그 기쁨의 찬사가 가득 들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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