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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 ㅣ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11월
평점 :

전편인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에서는 예술가의 각각의 삶에 집중 조명했다면 이번 책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에서는 라이벌 구도였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예술가들의 이중적이고도 다각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예술가라고 하면 흔히 천재, 비운의 주인공 등으로 신화화되기 쉬우나 그들도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싸우고 흔히 말하는 '지팔지꼰', 불륜으로 사랑과 전쟁을 찍는 등 다사다난한 인생이 많다.
그럼에도 그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킨, 승화시키기까지 어떤 사건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했는지 등 전편보다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그 시절 사랑과 전쟁,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조각으로 시그니처 포즈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 뒤에는 로댕의 그림자처럼 살다가 비참한 인생을 맞이한 여인이 하나 숨어있다.
카미유 클로델.
강렬하고 거친 로댕의 작품과는 달리 편안하고 아름다운 섬세함을 표현할 줄 아는 조각가였다.
로댕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의 나이는 19살, 로댕은 당시 45살이었다.
둘은 제자와 스승 그 이상의 관계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다. 그러나 부적절한 관계가 지속되자 카미유는 결단을 요구한다.
나야, 부인이야. 선택해.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 아닌가?
이런 경우 유부남들이 하는 선택은 어쩜 이전부터 같았다. 카미유와의 스캔들이 알려지면 잃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던 로댕은 카미유에게 이별을 고한다.
여성이 조각가라는 직업을 가지기에는 편견이 난무한 세상에서 여성의 몸으로 홀로 조각가로서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은 로댕의 작품과 카미유가 너무 유사하다고 비난했고 결국 카미유는 로댕이 자신의 작품을 훔쳤다 등의 히스테리로 시작으로 30년간 정신 병동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
카미유 클로델의 <성숙의 시대>에서는 카미유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왜 이렇게까지 그녀는 로댕에게 매달려야 했을까. 자신의 몸과 영혼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그녀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힐난하기엔 너무나 큰 값을 치른 거 같아 씁쓸하다.
그녀의 조각은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매력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버림받았다는 고통을 재료 삼아 조각을 하던 그녀의 삶, 잘못된 선택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마저 집어삼켰다.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는 콜드플레이의 명곡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 유래된 제목이다.
인생을 충분히 비극과 고통으로 채우고 견디고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찬사.
프리다 칼로는 어릴 때 큰 사고로 인해 온몸이 망가진다. 그때부터 붓을 잡아 자신을 그리며 화가의 길을 들어섰고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고 더더욱 망가진다.
자신의 여동생마저도 남편의 바람에 동참하고, 디에고 리베라는 고환암에 걸릴 정도로 수많은 스캔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한 번은 디에고는 자신의 모델들과의 동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건 그냥 악수 같은 거야. 신경 쓸 것 없어."
왜 또 찡얼거려, 자기야. 이 말이지.
참 비참한 인생인데, 프리다는 만만치 않은 여성이었다.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안 받아도 될 수술을 받고,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편의 친구나 주변 사람과 맞바람을 피우는 막장을 벌인다.
기가 막힌 인생, 그러나 프리다는 항상 외롭고 아팠다. 신체적 고통을 참기 위해 모르핀을 중독될 정도로 맞았고, 남편의 바람에 상처받고 아이는 세 번이나 유산됐다.
그녀의 자화상에는 웃는 모습이 없다. 언제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눈을 부릅뜨거나 울고 있지만 그 눈동자에서는 인생을 무망하게 포기한다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당당함과 서늘함이 서려있다.
마지막까지 그 고달픈 인생에게 전하는 말, 인생이여 만세라고 하기까지 고개를 돌리거나 포기해버리지 않고 맞서 싸운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여전히 강렬하다.
모태 쭈굴이, 오딜롱 르동
오딜롱 르동은 어린 시절 몸이 연약해 친척집에 맡겨져 자랐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우울과 함께 30세가 될 때까지 소심하고 쭈구리였던 르동은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 사회 부적응자였다.
상징주의 화풍으로 점차 인정받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기까지 40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자기 자신을 음침하고 쭈굴거리는 모습을 검은색으로 그렸던 초반과 달리 점차 안정되고 인자한 모습을 아름답고 묘한 색상들로 가득 채워 넣은 후반기의 모습은 그가 이제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내 예술이 점점 더 마음에 들어요,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합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의 수많은 실패, 우울, 버림받았다는 상처, 쭈굴쭈굴한 순간들이 있었다. 색채로 행복한 음을 만들기까지 르동이 회복한 자존감에는 색과 그림,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던 그가 이뤄낸 승리의 선언.
르동이 보여준 예술에는 그 기쁨의 찬사가 가득 들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