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공간들 - 소란하지만 행복했던, 다정한 그곳에 대한 단상
이주희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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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장소와 공간에 관련된 저널리스트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존재의 박물관>이라는 책이었는데, 어떤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사람은 무엇이든 남긴다고 했다. 


모든 장소는 저마다 역사를 가진다. 그 역사를 탐색함으로써 우리 존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는데 <모든 순간의 공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저자가 직접 겪은 공간 속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과거와 현재가 만나 일상의 가치를 만든다. 

자신이 머무르는 곳부터 인생의 서사가 시작된다. 


목욕탕부터 시작하여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공간, 마트나 카페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 등에서 겪은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가 만나며 마주하는 인생의 의미들이 다정하게 들어있다. 


이거 뭐지? 왜 아름답지?


미술관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던 저자가 미술관이 어느 날부터 재미있어진 것 계기에 대해 나오는 에피소드가 역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느 날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죽음> 이란 그림을 보고 어 이거 뭐야, 왜 아름답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영화에서도 이 그림은 하나의 모티프가 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진짜로 모델을 드레스를 입힌 채 욕조에 누워있으라고 했다고.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난다. 

우연히 만나본 아름다움에서 확장되는 감정을 느껴보면 아하 모멘트로 접어들고, 점점 더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러다 보면 덕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닫힌 어떤 내면의 문을 여는 기분,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졌다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간다. 


공항은 어려워


혼자 경유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다. 

와, 진짜 그토록 두려운 줄 몰랐다. 환승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면서도 여기가 맞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어 부들부들 떨면서 갔던 기억이 있다.


혼자 탄 비행기가 그렇게 어렵고 무서울 수가 없다. 재밌게도 작가는 전기뱀장어에 비유했다. 푸하하하고 웃었다. 맞아,  독기도 아닌 긴장감이 가득한 전기를 풀충전하고 걸어가는 전기뱀장어 같았으니까. 


​촌스러웠던 경험은 잘 잊히지 않는 법이다. 공항에서 홀로 어려워하며 허둥대던 촌스러움은 한 번 경계를 넘자 세련된 척, 노련한 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항은 어렵다. 

홀로 경유할 때도 허둥, 셀프 체크아웃 키오스크가 생겼을 때도 허둥, 게이트를 찾아 헤맬 때도 허둥.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겠지. 


나만의 세계,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 도서관을 배경을 하는 소설을 특히 좋아한다.

가장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그렇고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일어나는 판타지적인 일들은 도서관이기에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커다란 보호막 같은 개인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곳. 각 책의 작가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혼자만의 세계인 곳. 


책의 제목만 보고 있어도 조각 조각나 두리뭉실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책들의 세계에 압도되어 버리는 곳. 세상의 모든 과거가 기록된 곳. 


그 기록 중 나만을 위한 기록을 기어이 찾아내는 곳, 도서관. 


​저자는 도서관을 독을 푸는 곳이라고 하며 정독도서관에서의 추억을 말한다. 


​특정한 공간에서의 소소한 기억은 기억의 편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기억으로 인해 새로운 '나'를,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하며.


장소는 흔적을 남긴다. 때론 여운을, 때론 부끄러움을, 때로는 촌스러움을, 때로는 향수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에서 찾은 일상의 가치는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왔고 그 추억으로 다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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