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2
김원일 지음 / 문이당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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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원일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김원일의 작품세계는 대강 두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분단과 현재. 전자는 작가의 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일제시대와 전쟁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진중한 역사소설이었다. 본작 '가족'은 '마당 깊은 집'이나 '아우라지 가는 길'과 함께 후자에 속한다고 보면 되겠다.  

소설에는 1.4 후퇴로 월남한 부부가 냉면집으로 자리잡은 가문이 등장한다. 독실한 개신교인이면서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내려와서도 그들만의 네트워크로 상부상조하며 자수성가한 유형이다. 또한 투철한 반공주의자겠지만 극에서는 거론되지 않는다. 책은 이념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를 비추려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 냉면으로 집안을 일으킨 청년은 예순의 노인이 되었고, 작가 또래일 아들은 중년이 되어 조명 바깥에 서있다. 작가의 시선은 집안의 손자들에게 가있다. 4남매는 각기 개성이 뚜렷하다. 미국에 자리잡은 물신주의자 맏이, 아내를 잃은 슬픔에 인생을 자포자기하는 둘째, 맏이와 성향이 반대인 룸펜 셋째, 그리고 자신을 내던져 자선사업에 투신하는 성녀 타입의 딸.  

남매들의 면면이 하도 다채로워서 한국사회 구석구석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설정이란게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더구나 나이든 작가가 젊은 세대의 행동과 심리를 글에 담고자하는 노력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에 어색했다. 가장 비중이 큰 셋째 김준의 고뇌를 통해 IMF 체제 하의 젊은이들의 고민을 담아내려하지만, 결정적으로 김준은 1990년대보다는 일제시대의 지식인처럼 보인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다른 인물들도 별다르지 않다. 가족의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사고치는 전개는 티비드라마를 보는듯 시선을 잡아끌지만 작가가 의도했을 메시지로 나아가지 못한다. 

본 소설의 감상은 앞서 읽은 '아우라지 가는 길'과 같다. 현재와 소통하려는 노작가의 노력은 알겠지만 결과물은 신통찮다. 글 속의 그들은 나와도 겹치는 시대의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배경에서 뛰노는 시대불명의 인물을 보노라니 톤이 정리되지 않아 산만한 미완성의 그림을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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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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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으로 시작되는 가사의 유행가는 결혼식의 축가로 쓰이기에는 뜬금없다. 광수와 선영의 결혼식에서 '얄미운 사람'을 열창한 진우의 알 수 없는 저의는 여러사람을 괴롭힌다.  

광수, 선영, 진우는 89학번 동기다. 한때 선영은 연정을 품고 진우를 쫓아다녔지만 진우는 거부했고, 시간이 지나 광수와 선영이 부부로 맺어졌다. 하지만 진우는 남의 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타입인듯, 뒤늦게 선영에게 매력을 느끼고 들이댄다. 이런 과거사를 잘아는 광수는 결혼한 뒤에도 진우와 선영의 사이에 의심을 가지고 번뇌한다.  

당사자들에게는 대단히 진지한 문제를 작가는 감각적이고 가볍게 풀어낸다. 한국의 현대사를 주제로 무겁고 현학적으로 다가갔던 작가의 글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시종일관 유쾌한 김연수의 글을 보면서 대단한 작가임을 새삼 실감한다.  

작가는 서문에서 '6시 내고향'에서 모티프를 얻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객선에서 춤을 추는 중년 아줌마들의 무리에 낄려던 아저씨가 거절당하자 술과 안주를 사들고 와서야 합석에 성공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삶의 단면 하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책을 읽고 나서 서문을 다시 떠올려보니 글의 의도가 대강 짚힌다.  

사랑 앞에서 구질구질해지는 과정은 본인을 자괴감에 빠뜨린다. 결코 쿨해지기 어려운 역경은 우리를 얼마나 스타일 구기고 추해지게 만드는지. 그러한 경험을 하고나서도 사랑을 열망하며 실수를 반복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이불킥하게 만드는 사랑의 잔향은 지켜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 오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소설은 이러한 양가감정을 효과적으로 건드린다. 

결혼이 임박한 선영을 자빠뜨려보겠다며 찌질거리는 진우나 이제는 아내가 된 선영을 못 믿고 안절부절하는 광수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는 문학적 필터가 훌륭히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사랑에 매달리는 감정의 요동침은 당연한게 아닌가. 인습에 얽매여 본능에 충실하지 못하는 현재의 도덕적 경직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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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걸음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4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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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유태인 혈통의 다비드 프랑크프루터는 광신적인 나치 간부 빌헬름 구스틀로프를 살해한다. 제3제국은 새로 진수되는 여객선에 구스틀로프의 이름을 붙였고, 배는 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함께 했다. 붉은 군대가 독일 국내로 밀어닥치던 전쟁 말기에 구스틀로프 호는 피난민을 실은 채 어뢰를 맞고 침몰한다.  

소설의 소재가 되는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은 1945년 1월의 발트 해에서 있었던 실제 사고다. 정원을 초과한 1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대부분 사망한 비극은 아직까지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작가는 소수의 생존자의 후손을 화자로 삼아 사고의 전후를 비추고 있다.  

'게걸음으로'는 단지 사고를 재현해보려는 취지에서 쓰여진 글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여객선의 이름의 주인공이 되는 나치광신자와 유태인 암살범과 구스틀로프 호를 침몰시킨 러시아인 함장의 궤적을 짚어간다. 선형의 교차점이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이었을 뿐이다. 특정한 사건이 당사자들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귄터 그라스의 글은 시뮬레이션과도 흡사하다.  

만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배의 침몰은 분명 비극이다. 그러나 사고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특정한 입장으로 단정내릴 수는 없다. 나치독일이 러시아에 행했던 무자비한 살육과 묵시적으로 침략과 제노사이드에 동의했던 독일국민들을 생각해보자. 

작가 역시 분명한 입장을 정해두지 않지만 후대의 장면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구스틀로프 호의 생존자인 화자의 어머니는 손자에게 증오를 주입한다. 그로인해 벌어진 살인은 개인이 과거의 망령에서 자유롭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악의 사슬을 우리 대에서 끊지 못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스스로에게 촉구하게 된다.  

귄터 그라스가 말년에 발표한 '게걸음으로'는 사실 그의 대표작들만큼 와닿지 않았다. 이는 글의 과녁이 전인류적 보편성보다 독일인으로 좀 더 좁혀져 있기 때문일테다. 정치적인 이유로 묻혀있던 구스틀로프 호를 과감히 소재로 삼아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실존과 가공이 편집된 스토리로 독일 현대사를 작가다운 방식으로 재구성해 나간다. 사고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은 독일인이 아니라면 쉽게 추측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물론 이는 반성없이 희생자들에게만 조명을 비추는 일본적인 회고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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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사이언스 클래식 30
칼 세이건.앤 드루얀 지음, 김혜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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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2'의 한 장면였던 걸로 기억한다. 장국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는 씬은, 돌이켜보면 자연현상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단적으로 보여줬던 것 같다. 원인도 원리도 모르는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세계의 현상을 근대 이전의 인간들은 공포로 바라보았다. 세이건 부부가 써낸 본 책의 주제인 혜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수놓는 긴 꼬리달린 별의 움직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앙의 전조로 읽혔다.  

에드먼드 핼리는 무지에 의한 공포를 한 꺼풀 걷어냈다. 뉴턴의 절친한 동료이기도 했던 그는 출현시마다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던 혜성이 정기적으로 지구 곁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 76년마다 보였던 특별한 밝기와 궤적의 혜성은 그의 이름을 따라 '핼리 혜성'으로 명명되었다.  

이처럼 본 책은 혜성에 관한 과학적 설명인 동시에 창조적 발상으로 세상을 바꾼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학적 탐구심과 방법론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의 생애는 칼 세이건 특유의 미려한 문체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코스모스'와 같다. 인간의 도전은 과학이라는 도구로 세계를 진보로 안내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차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카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처럼.  

태양계의 가장자리인 오르트 구름대에서 지구를 거쳐 태양을 한 바퀴 도는 혜성의 여정을 작가와 함께 동행해보니 우주가 새삼 경이롭다. 알면 알수록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진다. 수포자 출신인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과학적 설명을 왜곡해 요약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욕망과 증오와 오만함에 대한 반성이다. 칼 세이건의 모든 저작의 감상은 그의 유명한 글 '창백한 푸른 점'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윤리를 가르친 모든 선생님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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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 -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
마이클 월프 지음, 장경덕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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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1년을 그린다. 특히 작가는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딸 이방카 트럼프의 콤비 '재방카'와 수석전략가이며 대선의 일등공신 '스티브 배넌'의 알력에 주목한다. 뉴스를 달구었던 극우의 발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나 러시아 스캔들은 백악관 실세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스티브 배넌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해군장교 출신으로 야망을 품었지만 트럼프를 만나기 전까지 변방을 떠돌았다. 그가 품은 신념을 살펴보면 주류에 서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배넌은 노동자 계층에서 미국적인 가치를 찾는다. IT와 금융산업의 발흥과 세계화는 미국의 제조업을 후퇴시켰다. 땀흘려 일한 댓가를 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분노를 배넌은 공유한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케인즈주의와 심지어 레닌의 신경제정책을 따온다. 이는 기업과 작은 정부를 핵심에 둔 전통적인 우파와 거리가 있다. 배넌은 '대안 우파'를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가치로 두려했다.  

재러드와 이방카, '재방카' 역시 전통적인 우파가 아니다. 트럼프의 핏줄이기에 이례적으로 백악관에 들어온 그들은 금수저답게 귀족적이다. 억만장자들과 어울리며 자라고 사업해온 재방카는 낯선 트럼프의 등장에 당황해하는 기업들을 다독인다. 친기업적이며 사안에 따라 놀랄 정도로 자유주의적인 재방카는 공화당보다는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에 가깝다. 이들을 보면 공화당이 왜 선거 내내 트럼프 지원에 냉랭했는지를 알 수 있다. 트럼프의 조직은 민주당의 반대쪽에 위치했을뿐이지 공화당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통하지 않았다.  

동시에 재방카와 배넌의 투쟁은 단순히 권력에의 욕망이 아님을 추측한다. 트럼프와 주변에 부정적인 작가의 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많은 언론이 묘사하는 것처럼 자리와 돈만을 쫓는 우스꽝스런 졸부는 아니었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평생 가지못했을 세계 권력의 핵심부에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다. 책은 '하우스 오브 카드' 류의 무대 뒤의 알력을 목격하는 재미도 제공하지만, 현재 미국의 사상적 흐름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본인이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을 원하지 않았다는 가설 때문이었다. 일견 의아하지만 트럼프의 성공비결을 돌이켜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를 올려서 성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빌딩을 세계곳곳에 올리고, 사치스러운 일상을 과시하며, TV 쇼 출연과 심지어 노구에 레슬링까지 뛰어가며 '트럼프'를 세속적인 성공의 동의어로 만들었다.   

폭스뉴스의 경영자였던 로저 에일스는 트럼프에게 가장 유명해질려면 대통령 후보로 나서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이를 실천했고 놀랍게도 당선되었다. 총력을 다하지 않은 선거의 결과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과연 권력을 진심으로 열망하지 않은 개인이 최고권력자가 되었을 때, 국가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가고싶지 않은 곳에 당도하기도 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면모는 낯설지 않다. 좌충우돌하고 냉정하다가도 천진난만해지는 예측불가능한 성격은 뉴스를 통해서 익숙하다. 스티브 배넌의 전략으로 최고권력자에 등극하였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바지사장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으로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홉살 아이같은 언행에는 타고난 사업가적인 본성이 결합되어 있다. 조직을 직접 장악하기보다는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이를 곁에 두지만 내부투쟁을 방조함으로 2인자를 제거하는 그의 조직론은 적절히 작동되었다. 최고의 관심종자인 트럼프가 휘하의 타인이 자신보다 유명해지는 불상사를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뿜어내는 '화염과 분노'를 직격으로 맞는 미국시민이 아니기에 정치스릴러를 읽듯 흥미로웠다. 작가가 묘사한 트럼프의 성격적인 특징은 대부분 외부로 표출되기에 협상의 상대 입장에서 잘만 이용한다면 이익을 얻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는 이러한 트럼프 개인에 대한 분석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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