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과 분노 -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
마이클 월프 지음, 장경덕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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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1년을 그린다. 특히 작가는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딸 이방카 트럼프의 콤비 '재방카'와 수석전략가이며 대선의 일등공신 '스티브 배넌'의 알력에 주목한다. 뉴스를 달구었던 극우의 발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나 러시아 스캔들은 백악관 실세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스티브 배넌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해군장교 출신으로 야망을 품었지만 트럼프를 만나기 전까지 변방을 떠돌았다. 그가 품은 신념을 살펴보면 주류에 서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배넌은 노동자 계층에서 미국적인 가치를 찾는다. IT와 금융산업의 발흥과 세계화는 미국의 제조업을 후퇴시켰다. 땀흘려 일한 댓가를 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분노를 배넌은 공유한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케인즈주의와 심지어 레닌의 신경제정책을 따온다. 이는 기업과 작은 정부를 핵심에 둔 전통적인 우파와 거리가 있다. 배넌은 '대안 우파'를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가치로 두려했다.  

재러드와 이방카, '재방카' 역시 전통적인 우파가 아니다. 트럼프의 핏줄이기에 이례적으로 백악관에 들어온 그들은 금수저답게 귀족적이다. 억만장자들과 어울리며 자라고 사업해온 재방카는 낯선 트럼프의 등장에 당황해하는 기업들을 다독인다. 친기업적이며 사안에 따라 놀랄 정도로 자유주의적인 재방카는 공화당보다는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에 가깝다. 이들을 보면 공화당이 왜 선거 내내 트럼프 지원에 냉랭했는지를 알 수 있다. 트럼프의 조직은 민주당의 반대쪽에 위치했을뿐이지 공화당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통하지 않았다.  

동시에 재방카와 배넌의 투쟁은 단순히 권력에의 욕망이 아님을 추측한다. 트럼프와 주변에 부정적인 작가의 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많은 언론이 묘사하는 것처럼 자리와 돈만을 쫓는 우스꽝스런 졸부는 아니었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평생 가지못했을 세계 권력의 핵심부에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다. 책은 '하우스 오브 카드' 류의 무대 뒤의 알력을 목격하는 재미도 제공하지만, 현재 미국의 사상적 흐름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본인이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을 원하지 않았다는 가설 때문이었다. 일견 의아하지만 트럼프의 성공비결을 돌이켜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를 올려서 성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빌딩을 세계곳곳에 올리고, 사치스러운 일상을 과시하며, TV 쇼 출연과 심지어 노구에 레슬링까지 뛰어가며 '트럼프'를 세속적인 성공의 동의어로 만들었다.   

폭스뉴스의 경영자였던 로저 에일스는 트럼프에게 가장 유명해질려면 대통령 후보로 나서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이를 실천했고 놀랍게도 당선되었다. 총력을 다하지 않은 선거의 결과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과연 권력을 진심으로 열망하지 않은 개인이 최고권력자가 되었을 때, 국가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가고싶지 않은 곳에 당도하기도 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면모는 낯설지 않다. 좌충우돌하고 냉정하다가도 천진난만해지는 예측불가능한 성격은 뉴스를 통해서 익숙하다. 스티브 배넌의 전략으로 최고권력자에 등극하였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바지사장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으로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홉살 아이같은 언행에는 타고난 사업가적인 본성이 결합되어 있다. 조직을 직접 장악하기보다는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이를 곁에 두지만 내부투쟁을 방조함으로 2인자를 제거하는 그의 조직론은 적절히 작동되었다. 최고의 관심종자인 트럼프가 휘하의 타인이 자신보다 유명해지는 불상사를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뿜어내는 '화염과 분노'를 직격으로 맞는 미국시민이 아니기에 정치스릴러를 읽듯 흥미로웠다. 작가가 묘사한 트럼프의 성격적인 특징은 대부분 외부로 표출되기에 협상의 상대 입장에서 잘만 이용한다면 이익을 얻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는 이러한 트럼프 개인에 대한 분석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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