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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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으로 시작되는 가사의 유행가는 결혼식의 축가로 쓰이기에는 뜬금없다. 광수와 선영의 결혼식에서 '얄미운 사람'을 열창한 진우의 알 수 없는 저의는 여러사람을 괴롭힌다.  

광수, 선영, 진우는 89학번 동기다. 한때 선영은 연정을 품고 진우를 쫓아다녔지만 진우는 거부했고, 시간이 지나 광수와 선영이 부부로 맺어졌다. 하지만 진우는 남의 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타입인듯, 뒤늦게 선영에게 매력을 느끼고 들이댄다. 이런 과거사를 잘아는 광수는 결혼한 뒤에도 진우와 선영의 사이에 의심을 가지고 번뇌한다.  

당사자들에게는 대단히 진지한 문제를 작가는 감각적이고 가볍게 풀어낸다. 한국의 현대사를 주제로 무겁고 현학적으로 다가갔던 작가의 글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시종일관 유쾌한 김연수의 글을 보면서 대단한 작가임을 새삼 실감한다.  

작가는 서문에서 '6시 내고향'에서 모티프를 얻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객선에서 춤을 추는 중년 아줌마들의 무리에 낄려던 아저씨가 거절당하자 술과 안주를 사들고 와서야 합석에 성공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삶의 단면 하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책을 읽고 나서 서문을 다시 떠올려보니 글의 의도가 대강 짚힌다.  

사랑 앞에서 구질구질해지는 과정은 본인을 자괴감에 빠뜨린다. 결코 쿨해지기 어려운 역경은 우리를 얼마나 스타일 구기고 추해지게 만드는지. 그러한 경험을 하고나서도 사랑을 열망하며 실수를 반복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이불킥하게 만드는 사랑의 잔향은 지켜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 오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소설은 이러한 양가감정을 효과적으로 건드린다. 

결혼이 임박한 선영을 자빠뜨려보겠다며 찌질거리는 진우나 이제는 아내가 된 선영을 못 믿고 안절부절하는 광수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는 문학적 필터가 훌륭히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사랑에 매달리는 감정의 요동침은 당연한게 아닌가. 인습에 얽매여 본능에 충실하지 못하는 현재의 도덕적 경직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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