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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ㅣ 사이언스 클래식 30
칼 세이건.앤 드루얀 지음, 김혜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영웅본색 2'의 한 장면였던 걸로 기억한다. 장국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는 씬은, 돌이켜보면 자연현상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단적으로 보여줬던 것 같다. 원인도 원리도 모르는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세계의 현상을 근대 이전의 인간들은 공포로 바라보았다. 세이건 부부가 써낸 본 책의 주제인 혜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수놓는 긴 꼬리달린 별의 움직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앙의 전조로 읽혔다.
에드먼드 핼리는 무지에 의한 공포를 한 꺼풀 걷어냈다. 뉴턴의 절친한 동료이기도 했던 그는 출현시마다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던 혜성이 정기적으로 지구 곁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 76년마다 보였던 특별한 밝기와 궤적의 혜성은 그의 이름을 따라 '핼리 혜성'으로 명명되었다.
이처럼 본 책은 혜성에 관한 과학적 설명인 동시에 창조적 발상으로 세상을 바꾼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학적 탐구심과 방법론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의 생애는 칼 세이건 특유의 미려한 문체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코스모스'와 같다. 인간의 도전은 과학이라는 도구로 세계를 진보로 안내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차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카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처럼.
태양계의 가장자리인 오르트 구름대에서 지구를 거쳐 태양을 한 바퀴 도는 혜성의 여정을 작가와 함께 동행해보니 우주가 새삼 경이롭다. 알면 알수록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진다. 수포자 출신인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과학적 설명을 왜곡해 요약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욕망과 증오와 오만함에 대한 반성이다. 칼 세이건의 모든 저작의 감상은 그의 유명한 글 '창백한 푸른 점'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윤리를 가르친 모든 선생님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