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끝. - 리옹에서 이스탄불까지 마지막 여정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베네딕트 플라테 지음, 이재형 / 효형출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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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글을 또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10년도 더 된 예전에 읽은 '나는 걷는다'에서도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이는 이미 60대 였다. 더구나 이번의 그의 새로운 글이 또 여행기라니. 77세에 이른 작가는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3천 킬로미터를 걷는다. 이번에는 연하의 애인까지 대동하고서. 나이에 굴하지않는 정열이 경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나이에서 오는 피로감은 책을 지배한다. 노화된 신체의 괴로움은 여행의 즐거움을 상당수 빼앗아갔다. 내가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작가의 글이 이전의 '나는 걷는다'와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오감은 여행에서의 낯선 경험을 더이상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신경과 에너지는 자신에게 쏠려있다. 때문에 글에서 예전같은 통찰력과 고요함을 찾기 힘들다. 지친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지켜보는 것은 괴롭다.  

하지만 본 책과 함께한 시간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것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애인이자 여행의 파트너였던 베네딕트 플라테의 존재였다. 본 책에서는 플라테가 직접 쓴 글이 수록되어 있다. 보고 들은 것은 겹치지만 다른 개성의 두 개의 글에서 경험의 주관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플라테라는 인물 자체가 매력적이다. 활달하며 당차고 현명하며, 무엇보다도 올리비에를 사랑한다. 호감가는 글쓴이를 걸림없이 만날 수 있는, 소탈하고 진실된 글은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화자보다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에 초점을 맞춰봐도 소득이 있다. 이스탄불로 향하는 그들은 옛 유고연방이었던 땅을 지나가게 된다. 제노사이드로 이어지는 처참한 내전의 상흔은, 당사자의 바람대로 분리독립이 되었음에도 여전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의 말 한구석에 섞인 증오에서 끔찍한 역사는 그 땅에 흉터처럼 새겨질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살벌한 땅을 두 명의 여행자들이 무사히 횡단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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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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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제목 그대로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활약을 그린 스릴러다. 에이머스 데커는 프로 풋볼 선수였다가 은퇴에 이르게되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뇌의 변화를 맞이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앞서 말한 변화를 맞이한 데커는 새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새로 투신한 경찰생활에서도 두각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아내와 딸을 끔찍한 수법의 사건으로 잃고 직업은 물론 자기 자신도 가누지 못하며 몰락한 상태로 소설은 시작된다.  

에이머스 데커는 아주 전형적인 설정의 캐릭터다. 2미터에 육박하는 건장한 덩치에 프로선수까지 했었던 운동능력을 겸비한 신체에 더해서, 후천적으로 얻은 서번트 증후군으로 인해 초능력에 가까운 두뇌를 가졌다. 거기에 가족을 잃은 슬픔에 모든 것을 공허해하는 내면은 동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설정의 삼위일체는 너무 노골적이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이지만, 작가는 그런 전형성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는 소설의 장점이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능력의 인물의 활약을 보는 것은 즐겁다. 다만 본 작품은 인물의 탄생 혹은 등장에 방점이 찍혀있다. 에이머스 데커와 새로 사귄 친구들의 활약과 관계를 다른 작품에서 보기를 간절히 원하나, 소설 자체의 균형이랄까 완결성은 미흡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데커와 동족이랄 수 있는 범인의 최후에서 동정보다는 갑작스럽고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졸음까지 쫓아내며 단번에 읽었던 굉장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의도했던 인간 내면에 깊숙히 자리한 어둠에 관한 고민을 공유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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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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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의 우발적인 살인에서 시작된 소설의 이야기는 지긋지긋한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통과해 비극으로 맺는다. 나는 갈수록 동시대의 아픔을 직시하기가 꺼려진다. 즐겁지 않은 현실을 고통을 굳이 찾아봐야하나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믐..'은 고개를 쉽게 돌리지 못하게하는 힘이 있다. 단순히 비참하고 끔찍하고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여서가 아니다.  

'그믐..'은 시각적으로 강력한 장면들이 있다. 살인 전과가 있는 남자와 남자를 지겹게 쫓아다니는 피해자의 엄마.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공유하는 일상의 클리셰 위에서 남자와 아주머니가 서있는 광경은 기묘하게 부조화를 이룬다. 그들 사이의 사연과 관계를 알기에 짠하고 슬프지만, 포기가 불가능한 모성애에 섬뜩하기도 했던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남자와 아주머니가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시각적인 잔상으로 남는다. 그들을 '남자'와 '아주머니'로 칭하고 외모를 특별히 묘사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많은 장점에도 '그믐..'을 가장 특별하게 해주는 소품은 '우주 알'이다. SF 문학을 탐독했던 남자가 여자에게 알려준 우주 알은 지구의 생명체가 가진 패턴에 매력을 느끼면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남자의 몸에 있던 우주 알이 남자를 죽인 아주머니에게 다가오고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왜그렇게 먹먹하던지. 아마도 속죄니 복수니 증오니 하는 속세의 것들을 한꺼번에 덮어버리는 절대적 존재의 힘에 감응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주머니의 한을 풀어줄 거짓말로 죽음을 택한 남자의 무엇이 우주의 알과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일까.  

어쩌면 남자가 소년일 적 좋아했던 잭 피니의 소설 '바디스내처'의 외계생물이 인간의 내부를 점령하는 방법대로 우주 알이 아주머니에 들어와 평안에 들게한다는 의미였을까. 물론 우주 알은 '바디스내처'와는 달리 착한 외계존재 일테다. 어쨋든 우주 알은 대단히 효과적인 소품이며 장치이다. 덕분에 일상과 가상의 존재의 조우로 '그믐..'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러한 작법은 테드 창의 단편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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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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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상의 정치적 선동을 그린 본 소설을 출간 당시에 접했다면 나의 감상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현실과 다르게 드러나는 인터넷에서의 인간성과 협력과 반목의 과정은 아주 현실감있게 묘사한대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역시 기자 출신이라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취합하는 능력이 다르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계 거물의 등장과 성공과 몰락의 스토리는 너무 익숙해서 통속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2015년 말의 나였다면 '댓글부대'를 잘 봐줘야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범작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몇년 전 국정원 여론조작사건을 목격하고도 말이다.  

이전 정권에서의 온갖 추악한 행위가 드러나는 지금에 보면 '댓글부대'는 예언에 가까운 책이다. 내가 가장 소름돋았던 부분은 권력과 소외받은 젊음이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온라인에서 능숙하지만 현실에서는 주류에서 밀려나 방황하는 젊은 일당이 정당한 경로였다면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성공의 과실을 맛봄으로써 폭주하는 과정은 섬찟했다. 익숙한 광경 아닌가. 일베를 중심으로 한 젊은 네티즌들의 패악질은 정권의 비호와 지원을 받으며 양지로 기어올라왔다. 시작은 깨시민과 주류에 대한 반항과 열등감으로, 어쩌면 창조적으로 발현되었을지 모르는 방향잃은 에너지는 정권안보에 이용되어 한국사회에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급기야 온라인 밖으로 뛰쳐나와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을 하는 패륜적인 집단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이 도래할 때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었다. 방대히 뻗어있는 넷을 어느 누가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래서 인간은 자유로워 질것이라며. 글쎄. 중국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인터넷 통제를 국가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오프라인에서 보이지 못하는 추악한 욕망을 익명의 아이디로 내보이는 배설의 창구이며, 덕분에 온갖 선동과 왜곡에 취약해진 게 실정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인터넷은 유토피아가 아니며, 인간사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당시 작가의 암담한 세계관을 담은 결말의 소설의 출간과 현재 사이에 벌어진 온갖 사회적 현상에서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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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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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었던 글을 쓰는 작가, 쉽게 말하는 좋아하는 작가의 대한 관심이 작가 자체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이런걸 팬심이라고 하는 것일까. '5년 만에 신혼여행'은 그러한 팬심을 십분 충족시켜준다.  

여러모로 즐거운 책이다. HJ라 불리우는 아내와 작가의 사연은 사실 '한국이 싫어서'의 뼈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의 책의 기저에 깔려있던 작가의 사상과 신념들이 여행의 일정과 기막히게 엮여지며 펼쳐진다. 특히 보라카이 섬의 일몰에 감탄하는 와중에 인간사 근원에 대한 사고는 너무나 특별해서, 많은 부분은 작가의 창작 혹은 짜집기가 아닐까라고 의심까지 든다.  

또한 묘사되는 HJ와의 결혼생활은 무척 달콤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신념을 공유하면서도 역시나 다른 정체성으로 충돌하며 맞춰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로맨틱 코미디의 모범이다. 당분을 섭취하면 졸음을 참지 못하는 신체적 특성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으로 싸우다 '이제 나 좋아?'라는 애교로 풀어지는 귀여운 그들을 보며, 완고한 나조차도 결혼 혹은 사랑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즐거움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사상이 일상과 포개지는 부분은 뛰어나다. 하지만 너무나도 잘 정리되고 절묘해서 즉흥적인 맛을 찾기 힘들었다. 때문에 진실성에 대한 의심으로 감탄은 하지만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물론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본 책이 여행에서 과자를 너무 많이 가져오면 안되겠다는 의도 외에는 없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를 믿는다면 의혹에 쏟은 수고로움이 헛된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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