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책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에 폴 오스터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바움가트너>를 읽으면서 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보냈었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 속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희망을 살피게 되는

폴 오스터만의 깊이 있는 문학적 사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에 이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좀 더 빠져보고자

그의 책을 하나씩 찾아 읽는 벽돌깨기를 시작해보고자 <환상의 책>을 펼쳐 들었다.

차라리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리란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실제로 그것을 보았고 이제 그 말들과 이미지들이 내 안에 스며든 이상

그걸 담아둘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날 아침에 적어둔 메모들은 내가 놓쳤을 세부적인 내용들을 기억하도록 도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영화가 내 머릿속에 살아 있게 해주었다.

p386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생각들이 있다.

그런 생각들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추악하며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정신을 타락시킨다.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아는 것의 끔찍함에 휘말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고 이제 말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p451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게 된 버몬트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짐머.

그는 교수직도 내려놓고 암울한 현실의 고통 속에서 시름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티비에서 무성 영화를 보다 웃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몇 개월만인지 그에게서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상실의 아픔을 깊이 앓고 있다가

삶이 다른 국면으로 맞을 수 있는 계기를 심어준

헥터 만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존재일까.

데이비드는 헥터 만에 대해 책

<헥터 만의 무성 세계>를 집필하게 된다.

60년이 지나고 헥터 만의 아내라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는데

앨머 그런드를 통해 죽기 직전의 그를 만나게 된다.

실종 이후의 삶이 궁금했는데

헥터 만은 은둔 생활을 하며 비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둘의 짧은 만남 후 곧바로 목숨을 끊고 만 헥터는

유언대로 그의 영화 필름, 작업일지, 시나리오

모든 발자취를 불태워 버리고만다.

그의 영화를 연구하고 삶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헥터 만과 데이비드 짐머의 작품 속 인물인 두 인생 이야기가 오가며

중첩되는 느낌이 읽는 내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게 만든다.

기록으로 소생시킨 삶이지만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복잡한 인생사에 대한 씁쓸함과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

데이비드가 집념처럼 쫓았던 헥터의 인생 속에서

어떤 삶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었는지

조금은 도발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비극으로 내몰린 삶에서 다시 살아갈 의미를 되찾는 듯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또 다른 삶 속에서도

휘말리게 되는 알 수 없는 인생의 굴레를 보면

우린 끊임없이 환상을 쫓고 쫓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폴 오스터만의 개성있는 독창성과

신비주의적인 문학의 매력이 이 작품 속에서도 빛나기에

다음 작품도 기대하면서 읽어보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수와 0수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복하고 재생하는 삶의 지속성을 깨닫게 되는 책이라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수와 0수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에 재독을 마친 <곰탕>에 이어 김영탁 작가의 신작도서를 만나 보았다.

이 책은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상황 설정과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소설이다.

바이러스의 취약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정부는 거주지를 구분하여 격리 조치에 나선다.

세상은 팬데믹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사람들은 격리와 단절로 인한 물리적 거리감이

심리적 문제까지 발생되고야 만다.

인간을 대신해 AI가 노동력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됨이 과연 축복일까.

무기력과 우울감으로 그 결과

자살률이 높아지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정부를 대응책으로 강제 근무를 도입하게 되는데

주인공 영수는 아버지의 자살로 버거운 노동 강도를 버티며 살아간다.

친족 관계 안에서 자살이 밝혀지면 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연좌제 노동 패널티'에 적용됨으로 징계처럼 노동을 떠안고 살아가게 되는 현실의 고됨이 보인다.

자살을 늘 꿈꾸는 영수는 이 선택이 쉽지 않은 것이

정부가 만든 이 제도의 피해를 가족들이 떠맡게 될 것이 우려스러워서였다.

동료 오한이 복제 인간에게 일을 대리로 시킬 수 있는 묘책을 강구함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분위기는 전환된다.



몸을 창밖으로 내민 인간은 울상이지만, 다리를 잡은 인간은 웃는 얼굴 같다.

죽으려는 인간과 말리는 인간,

두 인간은 몹시 닮았다.

한 사람이라 해도 믿겠다.

대체로 한 사람이긴 하다.

죽으려는 것도 나, 말리는 것도 나.

p56

생각해보면 영수에게 자살은 나쁜 습관 같은 거였다.

툭하면 죽고 싶다는 말을 뱉었다. 매일 새로운 경험을 바라며 지루해하고,

재미있는 일 없나 툴툴거리며 심심해하고, 엄청난 하루를 보내고야 말겠다며 지쳐갔다.

하지만 흥미로 사는 게 아니었다.

재미는 오래 지속되는 감정도 아니었다.

힘든 시절을 힘들지 않게 보내는 방법은 없었다.

영수는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 늘 부족하게만 여겼다.

돋보일 것 없는 자신의 삶을 탓하기만 했다.

대단하지 못했으니 쓸모없다 단정했다.

하지만, 도드라지지 않아도 존재하고, 부족함도 채워진 상태고, 불안함도 동력이었다.

p283-284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복제인간 0수는 그와 다르게

태어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0수가 죽지 않도록 말리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의 복제인간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되찾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게 된다.

죽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영수가 0수를 돌보며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살 이유를 되찾게 되는 부분이 인상 깊게 남는다.

결국 외로움을 함께 나눌 소속감과 연대,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볼 수 있기도 했다.

인간 본질의 근원적 가치를

죽음의 선택지 앞에서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풀어가는 위트 넘치는 스토리 구성이 좋았으며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기 힘든 삶의 지속성에 대한 물음에 해답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일리언 클레이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광할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본성이 뚜렷이 드러나 보이는

강렬한 한 편의 서사를 보는 듯한 완성도 높은 SF 소설을 만났다.

과학적인 이성적 사고와 소설의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듯해서

이 세계를 잠시 잊고서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생물학적,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으로 뒤엉켜 있는

복잡한 인간의 구조와 독자적인 우주 속에서

서로의 세계가 이루어져가는 모습이 이해와 대조를 오가면서 혼란스럽다.

정통 SF소설보다 훨씬 범주가 넓은 범위에 속한다고 느낀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미래 인류는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통치부 아래에서

우주 식민지 개척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주인공인 생물학자 아턴 다데브는 파시스트 정권에 반대하여 반역자로 낙인 찍힌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먼 외계 행성 킬른 수용소로 떠나게 된다.

항성 간 여행을 위해 신체 기능을 건조, 동결시키는

경성 수면 상태로 킬른에 도착하여

테롤런 사령관이 지배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킬른의 탐사 활동으로 얻은 과학적 데이터 값을 통치부로부터

정치적 외압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또한

식민주의적 사고에 지배받고 사는 권력구조가 확연히 드러나보인다.

부당한 대우와 탄압 속에서 존재의 부정과 혐오를 경험하는 이 미래 사회가

고도화된 문명이 발달 속에서 진화된 인간의 성숙미를 과연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더 참혹하다고 표현하는 쪽이 맞다고 본다.

권력을 이용한 착취와 억압을 일삼는 삶의 굴레와

동떨어진 외계 생물체의 유기적 화합은

결국 가닿을 수 없는 진화된 생물의 초월적 모습을 대비시키는 그림일까 싶다.

여전히 닿지 않은 세계를 갈망하고 연결되고자 희망하는 인간의 염원과

욕망은 무한대로 커질 뿐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와 성숙함은 모순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희망이다. 가장 인간적인 자질.

사람들은 먹을 것과 물을 주지 앟으면 들고일어날 수 있다.

신앙을 억압하거나, 자녀와 떼어놓거나, 전체주의 정권이 썼던 것처럼 여러 가지 자유를 빼앗는다면,

가들은 횃불과 곤봉을 들고 나설 수 있다.

하지만 희망은 까다로운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할까?

둘 중 하나다.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모든 것을 하거나.

사령관은 그 양극단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모두가 죽을 운명이니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냉소적인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철저한 절망에 빠져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사령관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곳은 노동수용소이므로 약간의 노력을 추가한 노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킬른에서 희망은 무엇인가?

야생에 떨어져도 미친 행운과 투지와 요령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혹시나 하는 오염 위험 때문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은 채로 총에 맞아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 희망이다.

p272-273

"킬른 생물의 상호 관계는 복잡한 중앙 통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아요."

"하지만 연결을 이루는 데 아주 능숙하죠.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곳 생물권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수수께끼, 처음 보는 기묘한 분자 구조를 풀려고 노력해 왔어요.

다양한 킬른의 종이 우리와 이곳 세상 사이의 간극을 메울 방법을 찾아왔죠."

p387

인간은 크고 복잡한 뇌를 가진 진화의 산물이다.

고립되고 외로운 지성.

킬른의 종과는 다른 점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싶다.

서로 연결되어 공생 관계로 살아가는 것.

짓밟고 정복해 내야만 하는 문명의 이기와는 다른

외계 생물들의 생존 진화는 바로 이것에서 해결책이 시작된다는 것에서 놀라웠다.

이 책에서 놀라웠던 점은

하나의 생명 유기체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생태적 진화의 핵심이

생존의 해답이 된다는 점이었다.

바로 킬른의 유기체들을 보면서

여러 개체가 공생하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킬른에서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

다데브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독재에 대한 폭력성과 오만함을 더 부각시켜 보여준다.

무지한 겨루기가 결국 아무 효력이 없는 상태임을

그럼에도 끝까지 손아귀에 쥐고 있는 방패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야생 사이에서 침범할 수 없는 경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 본성과 존재론적인 고전의 핵심을 외계 생물체의

공생적 관계 속에서 답을 찾게 될 줄 몰랐다.

결국은 희망과 연대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지만

지금 우리 세상과 다를 바 없음을 시사하면서

이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꽤 근사한 서사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의 모든 새들
찰리 제인 앤더스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세계관을 뚜렷히 드러나면서도

따뜻한 인류애가 느껴지고 풋풋한 어린 날의 사랑에

아련한 기분이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