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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쓸모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3년 5월
평점 :
여행을 떠나야지 생각하면
예쁜 캐리어, 요일별 의상, 꼭 가야할 장소, 맛집 등에
모든 영혼을 갈아넣었던 적이 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다 생각했던 여행에서
3일차 그만 소프트렌즈가 찢어지고 말았어요.
한 번도 찢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여분의 렌즈를 챙기지 않았던
그 순간 뿔테 안경을 끼고 다녀야 하는 속쓰림
계획된 장소들 틈틈히
소프트렌즈 판매하는 곳을 찾았지만
외국에서 더욱이 영어도 짧았던 저에게는
찾을수도 찾아다해도 구매할 방법이 막막했어요.
렌즈를 잃어버린 첫 날은
아둥바둥 그렇게 렌즈를 사려고 했으나
다음날 내려놓으니 새삼 편해지고
렌즈로 뻑뻑하던 눈에 자유로움을 주었더니
주변이 편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여행은 그런거였는데 말이죠.
각잡고 떠나는게 아니라 힘빼고 떠나는.
사람들이 은퇴하고 자신의 무릎이 허락하는 한
가고 싶은 최고의 여행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해요.
화려한 건물도 없고, 이벤트도 없고, 특별함도 없이
그저 잔잔히 걸으며 걷는 그 길을
왜 내 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장식하고 싶은걸까요?
□우리가 이렇게 바삐 살아가는 동안 우리 자신도 모르게 놓치는 생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목적지 중심의 사고, 목표 중심의 사유는 편의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는 조금 더 느리게 살고 싶기에 '목적지'뿐 아니라 '가는 길'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삶도 여행도, 인간관계도 일도, 조금 더 느려도 좋으니 '목표'만이 아닌 '과정'이 탄탄하고 진실했으면 좋겠다. "여행지에서 뭐가 그렇게 좋았어요?" "페루에서는 어디가 제일 좋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ㅡ p375
여행이 삶의 일부였던 작가이었기에
떠나지 못하는 시간은 유독 길고 답답했다고 해요.
그 시간 동안 작가는 다시 떠날 때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주어진 장소에서 작은 기쁨들을 발견하며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기!
그렇게 여행과 함께하지 못하는 시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보내고 나서
다시 떠날 수 있게 되자
바로 티켓을 끊었다는 작가.
여행은 준비할 게 많아 번거롭긴 했지만,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눈부시게 빛났고 더욱 황홀했다는데.
이 책은 다시 떠나게 된 순가의 감동과 감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었어요.
정여욱 작가만의 따스한 마음에
이승원 작가의 힐링 사진이 더해진
우리 같이 여행가자고 부추기는
나를 넘어선 나
여행을 넘어선 여행 에세이.
□반짝이는 윤슬을 가득 머금은 코모 호수의 물은 어제와 같은 장소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흐르는 물은 어제의 물이 아니며, 장소 또한 어제와 조금 달라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똑같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매우 다르다. 지금은 지리멸렬해 보이고, 목적지는 한참 멀어 보이고, 완성은커녕 생존 자체가 어려운 것 같은 나의 작은 재능조차도, 매일매일 유장하게 흘러가는 호숫가의 물결처럼 매일 새로워지고 매일 끊임없이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드넓은 강이나 바다의 흐름과 합쳐져 자신만의 장엄한 물줄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아름다움도 그렇다. 당신의 노력도 그렇다. 당신의 꿈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희망과 성실과 열정의 물결로 한 걸음씩 다듬어나간 당신의 꿈은 언젠가 찬란한 윤슬이 되어 꿈의 날개를 타고 비상할 것이다. ㅡp273
📙 도서 지원 받고 주관적으로 읽고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