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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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온다 리쿠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를 이어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작가다. 그런데 일본의 온다 리쿠 골수팬들은 그를 미스테리 작가로 생각하진 않는다. SF나 호러 전문, 정확히는 환상소설 작가로 분류한다. 사실 온다 리쿠는 이렇다 할 추리소설을 낸 적이 거의 없다. 미스테리의 형식을 갖췄어도 본격이든 사회파든 특정 장르에 딱 들어맞는 작품은 없다. 심지어 작가 스스로도 안티 미스테리를 지향한다고 인터뷰한 바도 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그를 미스테리 작가라고 분류하는 경우가 많을까?

온다 리쿠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속시원하게 꽉꽉 닫힌 결말을 원하는 독자들은 모호하면서도 열린 결말이 많은 그의 작품을 불편해한다. 이는 어쩌면 장르소설 중에서도 독자층이 가장 얇은 SF환상/호러 장르가 많이 읽히지 않은 탓도 있을지 모른다.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외국의 환상소설들을 읽다보면 온다 리쿠의 작품 속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경우가 빈번하다.(혹은 그 반대거나) 단편일 경우는 온다 리쿠의 단편들 못지않게 애매모호한 여운을 남기며 미완처럼 끝낸듯한 작품을 여럿 볼수 있다.

환상소설이라는 장르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의례 판타지소설과 착각하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장르다. 대표적으로 에드거 앨런 포나 헨리 제임스, 아서 맥켄등의 고딕 호러 작가와 H.P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등의 SF환상 작가를 들 수 있는데, 이 작가들은 한국에선 어지간히도 마니악적인 취향을 타는 작가들이라 환상작가라기보다 그냥 퉁쳐서 호러작가로 많이 인식된다.

그러나 일찌기부터 공상과학과 괴담을 함께 좋아하는 일본은 이들을 추앙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양산되었는데, 온다 리쿠는 이들의 영향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받았다. 아예 대놓고 자신은 레이 브래드버리, 호시 신이치, 심지어 (여자 데츠카 오사무라고도 칭송받는) SF 여성만화의 여제 하기오 모토의 열렬한 팬이라며 그들을 오마주한 팬픽성 글들을 당당하게 내놓았다.

이건 그들의 팬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지만, 가령 호시 신이치에 대해 일말의 지식도 없는 독자에겐 (온다 리쿠가 호시 신이치를 기리며 쓴) 콩트처럼 짧으면서 내용은 별거 없는듯한 단편은 어찌보면 황당할 수도 있다. 팬으로선 다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온다 리쿠의 집필 스타일에 근거한 모든 책을 다 읽으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다만 개인적 팬심에선, 온다 리쿠만의 독특함이 이질적이다 하여 성급한 편견을 갖는 독자들이 조금만 너그러워지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전에, 한국에도 수많은 작가들에게 자양분이 되어줄 훌륭한 환상소설들이 더 많이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늘 궁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왜 한국에서는 유독 SF 고딕 호러 장르가 인기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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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포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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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스릴러 소설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하나 여전히 한국 장르 소설 독자층은 얇다. 출판사나 편집자가 야심차게 특정 작가 총서를 기획해보려해도 판매율이 부진하여 번번이 좌절되고만다. 그나마 한때 붐이 일었던 일본 추리소설도 요즘은 주춤하는 모양새다. 신간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옛날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어떤 장르의 소설이건 고전만한게 없으니 고전부터 읽으라는 말은 이제 구세대의 시대착오적인 말이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이 나라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사치가 되어가는 형편에.

이 소설을 포함한 노리즈키 비극 3부작은 작가가 주지하다시피 엘러리 퀸의 XYZ 비극 3부작을 오마주한 작품이지만, 읽는 내내 과연 엘러리 퀸의 고전을 함께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칭 퀸빠인 작가와 퀸을 잘 모르는 독자와의 괴리가 적잖이 느껴진다. 이미 퀸을 읽었거나 비교해서 읽는다면 퀸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외의 독자에겐 책의 재미를 절반도 못느낄 여지가 크다. 게다가 이 작품 <또 다시 붉은 악몽>은 아예 퀸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작가의 사견이 유독 강하다. 후반부에 이르러선 퀸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와 가라타니 고진까지 끌고 들어오니 이게 추리소설인지 퀸에 대한 리포트인지 애매하기 그지없다.

사실 소설의 양에 비해 사건성은 시시할 정도로 약하다. 불행한 과거가 있는 한 여자 아이돌이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에 휘말려 그것을 노리즈키 부자가 해결해준다는 내용인데, 전개에 있어서나 결말에 있어서나 어거지가 느껴질 지경이다. 그저 작가는 작중의 탐정 노리즈키가 `내가 왜 남의 일에 오지랖을 떨며 탐정질을 해야 하는가`를 고뇌시키기 위해, 또한 작가 스스로 `난 어떻게 해야 퀸처럼 멋들어진 추리소설을 쓸수 있을까`를 자문자답하기 위해 이 엉성하기 짝이 없는 플롯을 만든게 아닌가 싶다.

거기다 도대체 왜 집어 넣었는지 도통 모르겠을 일본 아이돌의 장황한 연혁은 사건과도 전혀 연결고리가 없고 작가도 그게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 딱히 설명하진 않는다. 추측하기론 그냥 작가 자신이 7-80년대 아이돌에 열광했던 추억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작가와 비슷한 연배일 듯한 나도 음지를 통해 접했던 당시의 일본 아이돌과 방송 프로그램들의 나열을 보며 반가움을 느끼긴 했지만,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겐 생소하다못해 지루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역자도 그 당시 문화에 대해 잘 모르셨는지 몇몇 잘못된 표기들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작가 자신의 취향과 지엽적인 소재의 소설로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겠지만, 앞서 말한대로 작가 못지않게 퀸을 좋아하거나 오래전 일본 아이돌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나름 흥미로운 텍스트다. 특히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빌려와 퀸을 해석한 것과 모세의 십계를 이단 아닌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소설의 내용에 상관없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만한 구절이었다. 개인적으론 존 레논의 가사를 매우 좋아해서 그것을 활용한 것도 즐거운 요소였다.

어찌되었건 일본은 이런 종류의 소설도 쓸 수 있고 팔리기도 하는 나라다. 고전도 꾸준히 읽히고 재판된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거나 번역되다 중단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 문고판에 의존하는 독자로선 늘 부럽고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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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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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녀 3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여성소설에서 비교적 흔한 소재다. 대체로 각자 한두가지쯤 가슴에 멍을 품고 그 상처가 모녀지간의 갈등이자 또한 화해의 요소가 된다는 골자가 같아서 이야기가 참신하거나 극적이지 않으면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로 전락해버린다.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미나토 가나에는 특유의 구성방식과 미스테리를 가미한 이야기로 잔잔하게 풀어냈다. 다소 파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소재를 썼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매우 차분한 편이다. 그만큼 미스테리성도 약한 편이고 후반부의 마무리는 TV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억지성도 느껴지지만 기본 평타는 치는 작가이니만큼 과히 나쁘지는 않다. 비록 띠지에 적힌 광고문구만큼 대단한 감동으로 눈물을 적실 정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야기 자체보다 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세 여자의 사랑에 관한 묘사였다. 감질맛 날 정도로 세명 모두 구체적인 연애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뜨겁게 불타는 그 무엇도 없는데도 읽다보면 묘하게 커플들 간에 설레는 구석이 있다. 애초에 연애소설이 아니라는 목적의식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이런 절제된 묘사가 매우 좋았다.

여담으로, 일본여행을 갈때마다 가능한 현지의 먹거리를 한번쯤 다 먹어보려 하는 편인데, 작중에 등장하는 긴츠바는 듣도보도 못해 읽는 내내 입맛을 다시게 했다. 정작 먹어보면 별 맛 아니더라고 그렇게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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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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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 작가의 소설인데 어쩐지 한국 여성 작가의 소설 같다. 이름이나 지명을 한국식으로 바꿔 내놓아도 크게 어색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놀랄만큼 이 소설은 한국식 정서에 가깝다. 그늘진 현실을 감정과잉 없이 담담히 묘사하는 스타일은 어딘가 작가 김이설을 떠올리게도 한다.

사람 사는 게 거의 비슷할터인데도 한국과 일본 순문학은 미묘한 정서적 차이가 있다. 최근 독서가들 중에, 특히 젊은 세대들이 한국소설보다 일본소설을 좀더 찾는 것은 이 정서적 밀도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 소설은 대체로 날 것 그대로 후벼파고 드러내는 반면, 일본 소설은 미화까진 아니더라도 슬그머니 숨기는 구석이 있다. 어느 쪽이 더 깊이가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표현해내는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소설은 스토리텔링이 강한 소설이 아니면 심리적인 측면에서 작가가 어떤 의중을 갖고 집필했는지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비슷한 굴곡을 지닌 캐릭터를 묘사한다해도 한국소설은 캐릭터와의 교감을 인풋하는 반면, 일본소설은 아웃풋 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내 일처럼 공감되기보다 남의 일처럼 공감되어 읽기가 덜 힘든 것이다.

여태껏 그런 차이를 의식하며 일본의 여성 소설을 읽어왔기에 이 소설의 문체는 익숙하면서도 또한 신선해마지 않았다. 이런 작가가 이제야 소개되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단편집이지만 연작 형태라 편마다 밀도감은 있어도 호흡하기 좋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스치는 듯한 문장 하나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어 작품 내부에서는 물론 독자와의 연대감을 더한다.

관능소설가라 해서 묘사가 다소 적나라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뜻밖에도 섹슈얼한 느낌을 최대한 배제시키며 담백하게 묘사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로 인해 그려지는 모습이 자극적이기보다 행위의 당위성과 캐릭터가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세련미마저 느껴지는 것이, 작가의 본격 관능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여전히 힐링이라는 말이 유효한 요즘에, 때론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힐링이 된다. 누군가 나를 달래주길 바랄 때도 있지만, 왜 사는지 도무지 모를겠을 때에는 그저 꾸역꾸역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해답 아니 해답을 찾게된다. 어차피 사는거, 누구나 똑같구나 하고 푸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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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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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까지 널리 퍼진 도시괴담을 재해석하여 꾸민 단편집...이라기엔 작가가 거저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신성이 부족하다. 그만큼 너무 흔히 들어본 괴담을 써먹어서다.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네임밸류에 비추어 볼땐 임팩트가 약하다.

사실 한국에선 호러 장르가 그다지 잘 팔리지 않는다.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호러만큼은 싫다는 사람도 꽤 된다. 그런데 여름만 되었다 하면 호러 영화를 만드는 건 또 희한하다. 비주얼로 만들어진 건 찾아보는 관객층이 책으로는 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각적 자극보다 문자적 자극이 덜해서일거란 편견 때문일까.

그에 비하면 일본은 호러천국이다. 한국엔 미쓰다 신조나 교고쿠 나쓰히코,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나 오노 후유미, 온다 리쿠가 호러 비슷한 소설을 가끔 쓰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만 진짜 알짜배기 호러 전문 소설가들이나 작품은 아직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다. 이는 괴담류의 귀신 이야기는 그나마 정서상 통하지만 하드고어물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 한국 독서 취향탓이지 싶다. 심지어 추리소설가 이전에 하드고어 기괴소설의 장르를 개척한 에도가와 란포의 걸작들조차 극히 일부만 소개되었을 정도니, 호러 애호가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부여잡고 원서에 기대는 수밖에.

이런 어정쩡한 작품을 번역하느니 차라리 이 작품이나 저 작품를 내달라 출판사에 요구라도 하고 싶지만 안그래도 척박한 한국의 독서 시장은 베스트셀러나 무슨무슨상 수상자라는 네임밸류가 있어야 책이 선택되어지는 나라다. 스펙 따지며 몰개성화 하는 이 나라가 지긋지긋 하다면서도 결국 책 한권 영화 한편조차도 스펙으로 고른다.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는 나라에서 그 누구가 당당하게 자신의 독서 스펙을 자랑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책에 별넷을 준건 그나마도 감지덕지 해야할 정도로 없는 장르의 소설이니까. 그리고 작가가 그 `흔한 괴담`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아이들이 괴담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고찰하고자 이 소설을 쓴거라면 그건 그 각도에서 읽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러니까 이건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무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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