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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 ㅣ 무서운 그림책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히가시 마사오 감수 / 박하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이 동화책 시리즈가 번역되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우려심이 들었다. 원서를 직접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판형부터 글자크기, 페이지의 양 모두 일반 동화책과 똑같다. 다만 내용만 엽기(?)적일뿐이다. 동화책이긴 한데 7세 미만의 아이들이 보기엔 경기를 일으킬 수 있는....아니, 그보다 아이의 엄마들이 거품 물고 출판사에 항의를 일으킬 수 있을 소지가 크다.
이 시리즈에 참여한 작가진 중에 미야베 미유키나 온다 리쿠 같은 인기작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덕 좀 볼까 하여 덜컥 번역 출판한 게 아니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 책들이 아동 도서 코너에 깔리지 않기를 더 바란다. (그러나 출판사가 적극적으로 대형서점들을 돌며 책의 위치를 지정해주지 않는 이상 책내용에 일일이 관심두지 않는 서점 직원들이라면 별 생각없이 아동 도서란에 이 시리즈를 배치할 게 분명하다.)
지금은 얼마나 완화되었는지 몰라도 몇년전까지만 해도 동화책에 대한 검열이 꽤 엄격했다. 모 그림책은 칼라가 전혀 없는 흑백 그림책인데다 내용도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한 블랙코미디라는 이유로 전량회수 되었다. 얼마 전에는 천재 시인이라고 불리는 한 초등학생이 잔혹한 내용의 시 한 편을 쓴 것이 트집 잡혀 역시 전량 회수되었다. (내용의 소재나 해당 학생의 재능에 대한 평가는 거두절미하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다.)
아이들이 좀 어둡고 부조리한 현실의 내용을 미리 접한다고 해서 정서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는지 신경전문의가 아니어서 모르겠으나, 오랜 세월부터 아이들은 `공포`를 원천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더 많은 상상력을 길러왔다. 그림과 페로의 동화는 기실 얼마나 잔혹한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전래동화는 호랑이가 가장 큰 공포의 원천이었으며 또한 그 호랑이를 도살하는 잔혹함으로 이야기를 반복 재생해냈다.
사실 이 시리즈는 미야베 미유키나 온다 리쿠라는 유명세의 작가보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히가시 마사오라는 인물이 좀더 조명되어져야 한다. 히가시 마사오는 일본의 공포/괴담 소설의 맥을 이어가는 꽤 영향력 있는 편집자다. 그가 `현대의 괴담 동화를 써보자`고 기획했기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나 온다 리쿠 등도 기꺼이 이 시리즈에 참여한 것이다.
동화책인줄 모르고 산 성인 독자는 그 나름대로 황당해할 수 있고, 동화책인 줄 알고 산 어린 독자(를 둔 부모는) 여태껏 접해보지 않은 내용에 당황할 수 있다. 최소한 출판사가 이에 대한 가벼운 경고(?) 정도는 띠지에 둘러주면 좋겠다. 그런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이런 책도 있구나`하고 너그러운 독자가 더 많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