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포레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추리/스릴러 소설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하나 여전히 한국 장르 소설 독자층은 얇다. 출판사나 편집자가 야심차게 특정 작가 총서를 기획해보려해도 판매율이 부진하여 번번이 좌절되고만다. 그나마 한때 붐이 일었던 일본 추리소설도 요즘은 주춤하는 모양새다. 신간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옛날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어떤 장르의 소설이건 고전만한게 없으니 고전부터 읽으라는 말은 이제 구세대의 시대착오적인 말이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이 나라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사치가 되어가는 형편에.

이 소설을 포함한 노리즈키 비극 3부작은 작가가 주지하다시피 엘러리 퀸의 XYZ 비극 3부작을 오마주한 작품이지만, 읽는 내내 과연 엘러리 퀸의 고전을 함께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칭 퀸빠인 작가와 퀸을 잘 모르는 독자와의 괴리가 적잖이 느껴진다. 이미 퀸을 읽었거나 비교해서 읽는다면 퀸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외의 독자에겐 책의 재미를 절반도 못느낄 여지가 크다. 게다가 이 작품 <또 다시 붉은 악몽>은 아예 퀸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작가의 사견이 유독 강하다. 후반부에 이르러선 퀸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와 가라타니 고진까지 끌고 들어오니 이게 추리소설인지 퀸에 대한 리포트인지 애매하기 그지없다.

사실 소설의 양에 비해 사건성은 시시할 정도로 약하다. 불행한 과거가 있는 한 여자 아이돌이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에 휘말려 그것을 노리즈키 부자가 해결해준다는 내용인데, 전개에 있어서나 결말에 있어서나 어거지가 느껴질 지경이다. 그저 작가는 작중의 탐정 노리즈키가 `내가 왜 남의 일에 오지랖을 떨며 탐정질을 해야 하는가`를 고뇌시키기 위해, 또한 작가 스스로 `난 어떻게 해야 퀸처럼 멋들어진 추리소설을 쓸수 있을까`를 자문자답하기 위해 이 엉성하기 짝이 없는 플롯을 만든게 아닌가 싶다.

거기다 도대체 왜 집어 넣었는지 도통 모르겠을 일본 아이돌의 장황한 연혁은 사건과도 전혀 연결고리가 없고 작가도 그게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 딱히 설명하진 않는다. 추측하기론 그냥 작가 자신이 7-80년대 아이돌에 열광했던 추억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작가와 비슷한 연배일 듯한 나도 음지를 통해 접했던 당시의 일본 아이돌과 방송 프로그램들의 나열을 보며 반가움을 느끼긴 했지만,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겐 생소하다못해 지루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역자도 그 당시 문화에 대해 잘 모르셨는지 몇몇 잘못된 표기들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작가 자신의 취향과 지엽적인 소재의 소설로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겠지만, 앞서 말한대로 작가 못지않게 퀸을 좋아하거나 오래전 일본 아이돌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나름 흥미로운 텍스트다. 특히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빌려와 퀸을 해석한 것과 모세의 십계를 이단 아닌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소설의 내용에 상관없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만한 구절이었다. 개인적으론 존 레논의 가사를 매우 좋아해서 그것을 활용한 것도 즐거운 요소였다.

어찌되었건 일본은 이런 종류의 소설도 쓸 수 있고 팔리기도 하는 나라다. 고전도 꾸준히 읽히고 재판된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거나 번역되다 중단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 문고판에 의존하는 독자로선 늘 부럽고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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