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글쓰기 욕망’이 어느 수준과 어떤 목표를 향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거나 적고 싶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모든 행동은 목적을 향할 때 의미가 있다. 글쓰기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쓰고 싶은 ‘서평 타입’이 확실하다고 해도 체크해보는 건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서평러가 제일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의외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바로 ‘분량’이다.

예비 서평러에게 ‘글밥의 양’은 최우선 점검 요소이다. "잘 쓴다-못 쓴다"보다 더 원초적인 글의 기준은 "다 썼다 -못 썼다"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은 등산과 비슷하다. 반드시 내가 쓰려고 도전하는 산의 높이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머리에 쥐가 난다.

단형 서평 | 한 줄짜리 아주 짧은 평부터 전체 한두 문단까지의 분량이 여기에 속한다.

중형 서평 | A4 기준 1~2장 이내의 분량이 여기에 속한다.

중형 서평부터는 서두-중간-결미라는 구조도 생각해야 하고, 어디에 무슨 내용을 배치하면 좋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대중적이고 잘 읽히면서도 막 쓰지 않은 글, 알고 보면 구성 요소들이 갖춰져 있는 글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시 | 블로그용 책 리뷰, 온라인 서평단의 리뷰, 중고등학교 서평 대회용 서평 등

장형 서평 | A4 기준 3장 이상의 분량이 여기에 속한다.

한 권의 책에 대해서 3장 이상의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작업이다. 그만큼 책을 속속들이 파고들어야 한다. 전문적으로 말해 분석적 독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수준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발전이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안 후에 그 위 단계, 또 그 위의 단계로 나아가라는 뜻이다. 나를 직시해야 그 단계에 필요한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다.

글쓰기는 연습하면 나아지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딱 한 줄 나아지고, 오늘보다 내일 딱 한 줄 나아지면 된다. 우선 시간과 자신을 믿어보시기 바란다.

서평 ‘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평의 정체를 계속 상기해야 한다. 자신이 대체 뭘 쓰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쓰기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서평 쓰기를 고민하면서도 정작 서평의 뜻은 잊고 있다.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평가를 위한 분석과 판단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처음 서평을 구상할 때 <책의 좋은 점 적기>, <아쉬운 점 적기>처럼 리스트로 정리해보는 것도 좋지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책 전체에 대한 의의 부여가 훨씬 중요하다. 잊지 말자. 지적하기를 위한 단점 찾기는 비평의 원래 목적을 헷갈리게 만들고 칭찬을 위한 장점 찾기는 비평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긍정, 부정을 떠나서 비판적인 감식력을 바탕으로 날카롭게 분석한다는 의미가 ‘비(批)’에 들어 있다.

단점을 찾을 수 있다면 쓰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단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찾아야 ‘비’평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오버다.

분명히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는데, 분명히 줄거리도 어느 정도 알겠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손도 댈 수 없어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미의 독서를 하면 음미의 결과물이 남는다. 서평의 독서를 해야 서평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음미’하거나 ‘즐김’의 자세만 가지고는 ‘분석’, ‘판단’, ‘평가’의 목적을 다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지

‘분석’, ‘판단’, ‘평가’야말로 서평을 서평이 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책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그에 맞는 독서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서평 쓰기를 배우려는 초보에게 있어 가장 전략적인 충고는 서평을 위한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책을 즐기면서 읽는 행동이 생략되어야 한다거나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책을 음미하기와 여유롭게 읽는 일은 모두 다 좋은 일이다.

서평 작성에 대해 실전에 돌입하려면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서평에는, 서평을 위한 독서 법이 따로 있다.

감상의 독서란 날것 그대로의 원초 독서이다. 표현컨대 책이 부르고 독자가 응답해서 그 둘이 문자 속에서 만났다고나 할까. 바람직하고 이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런 독서는 영혼을 움직이고,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감상을 위한 독서를 마치고 나서 서평을 적는다면 쓸 말이 많지 않다. 그것은 읽은 사람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감상’을 위한 독서 자체가 이미 서평을 위한 독서와 성질이 다르다. 감상은 느낌의 세계, 직관적인 세계,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세계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자. 그 마음의 움직임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이 쉬울까.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읽은 ‘마음의 방향’을 바탕에 슬쩍 깔고, 다시 말해 내 정신과 감수성이 책과 소통하도록 하고 나서, 그 결과물을 지성적이며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면서 왜 내가 그렇게 읽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서평러들이 서평에서 해야 할 일은

1. 왜 ‘마음이 먹먹한가’의 원인을 분석하고,
2. 이 책이 왜 이렇게 ‘좋았을까’의 근거를 찾아내 드러내는 것이다.
3. 그리고 분석과 근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도록(혹은 전혀 읽고 싶지 않도록, 혹은 읽을 필요가 없도록)
4. 내 판단을 그들도 역시 신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가만히 있는 책에게 내가 질문을 던져놓고 또 내가 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해보는 건데, 이 과정이 있어야 나만의 서평이 잘 나온다.

서평러가 책을 분석하려고 덤빌 때 상비할 무기는 ‘왜?’와 ‘어떻게?’이다. 얘네 둘은 같이 붙어 다니는 게 좋다. 큰 녀석 ‘왜’가 나오면 꼭 둘째 ‘어떻게’로 연결이 되도록 해야 말할 거리도 많아지고 분석도 풍성해진다. 그러니 ‘왜’는 오른손, ‘어떻게’는 왼손에 쥐고 책에게 막 던져보자.

지적, 분석적, 판단력 등등 이 부분이 잘 안 된다. ‘지적으로 분석’이라든가 ‘날카롭게 판단’이 서평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만 설명해도 사람들은 대번에 이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해의 다음부터다. 할 일도 알겠고 목표도 알겠다만, 대체 그걸 어떻게 실천하느냔 말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작성해야 할지 대부분의 예비 서평러들은 실전에서 당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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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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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처럼 아주 잘쓰고 싶었던게 아니라 읽은 책을 제대로 표현해 쓸 수 있는 쓰기에 대한 책을 원했는데 드디어 찾았네요 어떻게 써야할지 하루 한걸음씩 떼보자는 글에 용기내서 !! 독후감과 서평에 차이도 궁금했을 만큼 쓰기초보인 제겐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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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 빌런
존 스칼지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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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고양이 책표지에 구매 안할수가 없었던책
울집 찰스도 안경씌워 사진 찍은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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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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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녀와 노인의 대화속 두드림이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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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몸의 모든 느낌들 가운데 고통만이 배를 타고 운행할 수 있는 강, 인간을 바다로 이끌어주는 마르지 않는 물을 지닌 강과 같다. 인간이 쾌감을 좇으려고 애쓰는 곳 어디서나 쾌감은 막다른 길임이 밝혀진다.

네가 고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하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고통공포는만성 마취를 초래한다. 모든 고통스러운 상태가 회피된다.

긍정심리학의 행복 임무는 약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지속적인 안락함의 오아시스와 자매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오피오이드 사태(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통칭하는 오피오이드가 과다처방되어 특히 2016년과 2017년에 수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것을 말한다 ? 옮긴이)는 범례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 사태를 일으킨 원인은 한 제약회사의 물질적 탐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실존에 대한 치명적인 가정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은 아마도 고통 없는 삶을 일종의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처럼 생각하는 지구상 첫 번째 세대에 속할 것이다. 고통은 스캔들이다."5

고통은약함의 신호로 해석된다. 고통은 숨기거나 최적화를 통해 제거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고통은 성과와 병립할 수 없다.고통의 수동성은능력에 의해 지배되는 능동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 오늘날 고통은 모든 표현 가능성을 빼앗긴다.

고통은침묵을 선고받는다.

어떤 것도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예술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인스타그램에 적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줄 수 있는 모서리나 귀퉁이, 갈등이나 모순이 없어야 한다.고통이 정화한다는 사실은 잊혀진다. 고통은 카타르시스적인 작용을 한다. 만족의 문화에는카타르시스의 가능성이 빠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만족 문화의 표면 아래쪽에 쌓이는긍정성의 찌꺼기에 에워싸여 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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