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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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끝내 허무의 입에 삼켜지고 대리석처럼 단단한 이에 찢어 발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관자놀이를 스치는 선선한 바람의 환희, 두 손안에 고인 물의 비밀, 길에서 마주친 여우의 찬란함, 이것들 중 어느 것도 우리에게 이르지 않는다.

숨이 끊기고, 기운이 떠나고 남은 썩어가는 육신뿐이다. 그러나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이 마지막 말이 그리스도를 천사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 그는 불안하고 연약한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

어둠이 짙어져야만 별은 드러난다.

죽은 자들은 낯선 이들이다.
그들의 닫힌 눈꺼풀에는 수도원 석재의 육중함이 있다.
마치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읽는 일에
사로잡힌 것처럼.

호박빛 두 눈이 감기는 죽음을 보았다. 성 프란체스코의 수척함을 닮은 검은 새끼 고양이의 눈이었다.

소중한 존재는 죽음의 손길을 맞이하기 전까지 이 년이란 시간 동안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마지막 순간에 고양이의 몸은 봉제 인형같이 부드러웠고, 두 눈은 충격으로 크게 떠지는 그 순간까지 기어이 버티며 호박빛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이제 나는 고양이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 바로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다가와 당신의 마음을 훔치는 어떤 이다.

육체와 영혼은 극심한 비참함이라는 지옥의 불길 안에서 녹아내렸고, 지팡이를 짚은 손은 덩굴손으로 휘감긴 포도나무 그루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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