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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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과 유쾌하지 않은 생각에 시달리며 중앙역 바로 옆, 아스트리트 광장에 면한 동물원으로 들어가 쉬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화려한 깃털을 단 수없이 많은 피리새들과 검은 방울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대형 새장 옆에 놓인, 반쯤 그늘진 벤치에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동물원이 관람객들에게 문을 닫는 진짜 밤이 찾아오면, 녹투라마에 거주하는 이 동물들에게 전깃불을 켜 주는지, 그렇게 해서 밤낮이 뒤바뀐 소우주 위로 하루가 시작될 때 이 동물들이 어느 정도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중 하나가 아우스터리츠였는데, 그는 당시에 예순일곱 살이었지만 기이하게 곱슬거리는 금발을 한 청년처럼 보이는 남자로, 나는 그런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을 프리츠 랑의 영화 「니벨룽겐」에 나오는 독일 영웅 지크프리트에게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안트베르펜에서 아우스터리츠는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 빛바랜 푸른색 면으로 된 일종의 작업복 바지와, 맞춤복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유행이 지난 양복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매우 늦은 시간에 그곳에 머무르던 몇 안 되는 여행객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전체 구조가 거울에 비친 상처럼 대합실과 닮은 뷔페 공간에서 고독하게 페르네트*를 마시는 한 남자와, 카운터 뒤에 놓인 바의 높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완전히 몰입한 채 집중해서 줄로 손톱을 갈고 있는 마담이 전부였다.

침묵의 시간 동안 우리 두 사람은 1분이 지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알게 되었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서부터 한 시간의 60분의 1을 떼어낼 때마다 형리의 칼과 비슷하게 보이는 이 바늘의 움직임이, 사람의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위협적인 떨림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아차렸다.

같은 방어 시설의 예에서 수천 년 동안 똑같은 둥지를 짓는 새들과는 달리 사람들은 모든 이성적인 경계를 넘어 자신의 계획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탁자에서 일어나 륙색을 어깨에 메고 당시 안트베르펜의 장갑 시장에서 했던 이야기를 끝냈다.

1940년 역사상 두 번째로 이 브렌동크 요새를 독일인들에게 내주어야 했을 때, 독일인들은 그곳에 곧바로 수용소와 강제 수용소를 세웠고, 그 수용소들은 1944년 8월까지 존재했으며, 1947년 이후 최대한 변화를 가하지 않은 채 국립 기념관과 벨기에 항쟁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내가 시선을 그 요새에 두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리고 그것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것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어졌다

아우스터리츠는 19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박애주의적인 경영자들의 머리에서 생겨난 이상적인 노동자 도시에 대한 개념이 갑자기 집단 거주지라는 형태로 넘어간 것에 대해 두 시간 이상 내게 설명했고, 인간의 최선의 계획들은 실현되는 과정에서 언제나처럼 정반대로 흘러갔다고 말했다

그가 행운의 장소인 동시에 불행의 장소라고 느끼는 파리의 정거장들에서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 근거한, 이 모든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계통의 유사성에 대한 끝없는 준비 작업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불안감이 그에게서 느껴졌던 것이 당시에는 매우 기이했는데, 그 불안감이란 가벼운 말실수와 때로는 말을 더듬는 경우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럴 때면 그는 항상 왼손에 쥐고 있던 닳아빠진 안경집을 세게 움켜잡아 팔목뼈의 살갗 밑에서 흰 근육을 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내 생각을 흐리게 했고, 나는 오랫동안 내버려 두고 있던 글쓰기 작업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거기서부터 아주 서서히 빠져 나왔다

이런 회상이 그 어두운 12월 아침 내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외양의 환상과 일찍 찾아온 소멸의 위험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과, 그래서 내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염려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영원히 뭔가를 쓰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풀려나 윤곽이 없이 오로지 희미한 색깔만을 인식할 수 있는 세계에 둘러싸인 채 정원의 대나무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는 환상으로 차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나 자신의 상황과 연결했는지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다

오히려 회색빛 공간이 더 확대되는 것처럼 보였고, 시력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따금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 왼쪽으로도 얼마간의 시력 장애가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끝에는 롤 셔터가 달린 장들과 연단, 책상들, 사무실 의자들, 그 밖의 물품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마치 그 뒤에 누군가가 점령 상황 속에 끝까지 버티고 있는 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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