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이리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8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포장도로 위에 흙 칠갑이 된 반죽 덩어리들로부터 시선을 떼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발 늦는 바람에 결국에는 그것들을 보게 되고 내 마음은 죽은 개들로 가득 차버린다.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오는 건 개를 통해서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이미 약간은 개와 같아서 관심을 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맺는 관계의 대부분은 개에서 시작된다.

나는 쇼팽의 전주곡 두 곡,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드뷔시, 그리고 루아르강의 물살 같은 프랑시스 풀랑크 버전의 ‘렌토보다 느리게’를 연주한다.

아빠다. 건반 앞에서, 나는 아빠처럼 측은한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빠가 기다리던 ‘계속해요’라는 신호가 오지 않는다. 이건 내 안의 아빠다. 아빠의 불안이다.

열흘간 징계를 받았을 때, 똥통에 담겨 있던 아빠의 손이다. 피레네산맥을 건널 때 개들에게 물린 손이다. 붙잡혀 온 남자의 빡빡 밀린 머리를 만진 손이다.

미룬다는 것은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것이란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이 날에서 저 날로 바꾸기, 보류하기, 시간을 들여 결정하기

내가 꿈만 꾸지 결코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을 믿는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머릿속으로는 몇 시간에 걸쳐 영웅적인 행동을 상상한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제단 위의 그리스도는 무척 외로워 보이고, 구석에 놓인 성모 마리아는 로마숫자 위에 포개진 두 개의 보리 이삭이 만드는 십자가의 길을 닫고 있다.

주먹을 눈에 대고 지그시 누르면 아주 작은 불티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푸른 점으로 깜박이는 별들, 하얗다가 주황으로 변하는 구름들, 환기 구멍으로 변하는 벽돌 두 개, 커다란 굴로 변하는 우유 자국, 연보랏빛 오팔, 잿빛 오팔, 팽팽히 당겨지는 오팔, 아아 아니, 오팔은 안 된다. 오팔은 불행을 가져오니까, 오팔은 안 돼.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본다. 그분의 눈은 사방으로 향하고, 넷에서 시작해 무한에서 끝나는 그분의 시선은 예배당보다 크다.

알로에 베라가 자라고 있는 화분 하나. "그거 아니, 알로에 베라에는 치유 성분이 있어." 특이하게 생긴 들보가 있었고 가족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니산 가족은 아무도 따라 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취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정반대로,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이들 틈에서 나를 구하소서

새하얗고 온순한 소 떼가 갈비뼈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일정한 호흡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건 그들의 평온한 의식을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였다.

악하고 간사한 이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쓸모 있는 일을 하십시오. 뭐든, 필요한 일을 하란 말입니다. 도대체 왜 여러분을 착한 여자아이 신분에 가두어두려는 것을 공부합니까? 자기만의 권태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혈안이 된 가여운 이들이여, 언제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겁니까? 언제쯤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질 겁니까?"

"나는 위대한 사랑을 하고 싶어, 안나 카레니나 같은 사랑을, 보바리 부인 같은 사랑을……."
"그걸 어디다 쓰려고? 안나 카레니나는 기차 아래로 몸을 던지는데."

극단적인 것들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모니카네 아버지는 이사회를 오가고 어머니는 초상집을 오간다. 멕시코시티에서는 사람들이 연약한 새처럼 죽어나가고, 구슬픈 장례식과 구일장도 더불어 늘어나기 때문이다. 모니카네 아버지는 은행장이면서 은행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다.

나는 정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내 불안을 산책시킨다. 길이 불분명하고 흐릿하게 나 있는 건 세월 탓이 아니라 영성 수련을 위해 묵상의 집에 가는 이들의 자아도취적이고 강렬한 시선 탓이다.

멕시코에서는 새들이 예언을 전해준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멕시코에서는 파파야와 멜론으로 참호를 만들어 방어하고, 그 위에 놓인 수박이 바리케이드 역할을 할 만큼 차고 넘치고, 바닥에 쌓인 씨들이 작은 해와 달의 피라미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수사나의 눈은 멍하고, 길을 잃은 듯하고, 슬프거나 기쁘지도 않은, 그냥 그런 눈이다. 삶은 달걀 같은 시선을 던졌다가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떠난다.

미덕 안에서 하나 된 그들은, 꼭 다치지 않게 끝이 둥근 가위로 잘라낸 종이 인형들 같다.

성모 마리아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건 시모네 마르티니의 그림 ‘수태고지’에서였다. 그림 속 성모 마리아는 시무룩하고, 기분이 나빠 보인다. 아침의 밝은 빛 속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지만 좀체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