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1984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17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윈스턴은 그 교회가 몇 세기에 지어진 것인지 궁금했다. 런던에 있는 건물들이 언제 세워졌는지 안다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책을 통해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건축물로부터도 역사를 배울 수 없었다. 동상, 비명, 기념비, 거리의 이름, 과거에 빛을 비춰 주는 것은 무엇이든 체계적으로 날조되었다.

그 여자가 그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이곳까지 그를 미행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당원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수킬로미터나 떨어진 인적이 드문 뒷골목을 걷다가 그와 우연히 마주친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고통과 공포의 생물학적 무용성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항상 얼어붙어 무기력하게 되어 버리는 인간 육체의 배신행위에 대해 일종의 경악감이 들었다

끝은 항상 똑같은데 왜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가? 왜 며칠 혹은 몇 주 안에 생명을 거둘 수 없는가? 수색을 피하거나 자백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단 사상죄의 올가미에 걸려들면 주어진 날짜에 처형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공포가 무엇 때문에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가?

그에게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거요〉라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없는 장소는 볼 수는 없고 단지 예지(豫智)에 의해 신비롭게 참여할 수 있는 상상 속의 미래였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운 나쁘게도 빌어먹을 파슨스가 옆에 털썩 앉아 깡통 냄새가 나는 스튜보다 더 지독한 땀 냄새를 풍기며 증오 주간 준비에 대해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너무 지루해서 정신이 흐릿했지만 공회당 저녁 집회에서 게으름 피우겠다는 충동은 한 번도 일지 않았다.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보고 살아남고 싶은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서 용솟음쳤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위험한 짓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였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23시 ─ 어둠 속에서 조용히만 하면 텔레스크린으로부터도 안전했다 ─ 가 되어서야 그는 이런 생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머리는 거짓과 증오로, 배 속에는 얼음 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멍청이라고 생각했었다.

거절하는 것은 위험했다. 윌셔가 오라고 했는데도 가지 않고 혼자 앉아 있는 여자 옆에 앉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그는 반갑게 웃으며 앉았다. 그 멍청한 금발의 얼굴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윈스턴은 그 얼굴의 한가운데를 곡괭이로 정확히 내리찍고 싶은 망상에 사로잡혔다.

기차를 30분 탄 후, 역을 나와 왼쪽 길을 따라 2킬로미터쯤 가면 문설주가 없는 문이 있으며, 들판을 가로질러 길을 따라가면 풀이 자란 좁은 길이 나오고, 관목 숲 사이로 오솔길이 있으며, 거기에 이끼 낀 고목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손바닥, 손목 아래의 부드러운 살을 만졌다. 그냥 만지기만 했는데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당과 당의 모든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며 썩은 건초 냄새를 맡은 말이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처럼 보였다.

새는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결코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지 않고 음을 바꿔 가며 몇 분 동안 계속 노래를 했다. 때때로 몇 초 동안 노래를 멈추고 날갯짓을 한 다음 얼룩진 가슴을 부풀려 다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저 새는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보고 있는 친구도 적도 없다. 무엇 때문에 저 새는 외로운 나뭇가지 끝에 앉아 허공에 대고 노래를 쏟아 내고 있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