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 모든 감정과 사고에서는 이방인이었다.
처절한 경험을 할 때마다 내 자아는 산산조각 났고, 그때마다 심연의 힘들이 나의 자아를 뒤흔들고 파괴했다. 그럴 때면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돌봐 왔던 내 삶의 부분이 나를 배반하고는 사라져 갔다
이 황야의 이리는 죽어야 했고, 혐오스러운 자신의 실존을 자기 손으로 직접 끝장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새롭게 자기성찰이라는 치명적인 불길에 용해되어 자신을 변화시켜야 했고, 가면을 찢어 버리고 새로운 단계의 자아 형성의 길을 가야 했다.
삶은 내가 세상을 헤집고 다니는 거칠고 힘겨운 여정에 다시 나서게 했고, 새로운 고통과 죄악의 탑은 높아만 갔다.
시민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의 삶은 그렇게 뒤흔들릴 때마다 지속적으로 하강곡선을 그렸고, 정상적인 것, 허용된 것, 건강한 것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
노련한 주식 투기꾼이 투기, 이윤 획득, 확신 상실, 동요, 파산의 단계를 잘 알고 있듯이, 나는 그것들을 잘 알았다. 나는 이제 정말 이 모든 과정을 한 번 더 맛봐야 한단 말인가?
그 모든 고통, 그 모든 엄청난 곤경, 자아의 저속함과 무가치함에 대한 그 모든 통찰, 실패에 대한 그 끔찍한 불안, 그 모든 죽음의 공포를? 그 많은 고통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고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는 것이 더 현명하고 간단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간단하고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 누구도 내가 석탄 가스나 면도칼 또는 권총의 도움으로 삶을 끝장내고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정말 자주 그리고 심하게 맛보아야 했던 쓰라린 고통의 과정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살이라는 것은 어리석고 비겁하며 초라한 것일 수도 있고,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비상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출구가 있다면 가장 초라한 비상구라고 해도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하나의 가면이 벗겨지고 하나의 이상이 붕괴할 때마다 이에 앞서 소름 끼치는 공허감과 적막감, 이 끔찍한 옥죄기와 고독, 관계의 단절, 사랑과 소망이라고는 없는 황량한 지옥이 엄습해 왔는데, 나는 지금 이런 것을 다시 겪어야 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직업을 잃고, 가정을 잃고, 고향까지 잃고, 모든 사회 집단에서 국외자로서 혼자가 되었고,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많은 의혹의 눈길만 받으면서 일반 대중의 견해나 도덕과 언제나 혹독한 갈등을 빚었다.
죽고자 하는 결심은 한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잘 익어 있는 단단한 과일이었다. 그동안 서서히 자라나 이제 무거워진 그 과일은 운명의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고, 다음 운명의 돌풍이 불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도시, 이 세상 어딘가에 죽음으로써 나에게 상실감을 안겨 줄 그런 사람이 살고 있을까? 내 죽음을 조금이라도 애도할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까?
삶은 지독하게 쓴맛이었다.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자라 온 역겨움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생각, 삶이 나를 마구 튕겨 내고 내던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굶주린 개처럼 한 조각의 온정, 한 모금의 애정, 한 방울의 인정을 즐겼다
황야의 이리 하리는 감격해서 슬쩍 미소를 지었고, 건조한 목구멍에는 침이 고였으며,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감상성에 굴복했다.
나는 2분 전까지만 해도 이 저주스러운 세상을 향해 분노의 이빨을 드러냈으나, 지금은 존경할 만한 속물 하나가 이름을 한 번 불러 주고 악의 없는 인사를 건네자 금방 감동하고 들떠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맞장구를 쳤고 새끼 돼지처럼 뒹굴면서 한 줌의 호의와 존경, 우정이라는 먹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학문적인 수다를 떨고 타인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바라봐야 하는 의무감을 수반하는 교수의 저녁 초대가 성가신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가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 교수 집을 방문해 다소 가식적인 덕담을 함께 나누는 등 본래 원치 않는 이 모든 일을 하듯, 대부분의 사람은 매일, 매시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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