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몽테뉴의 수상록 메이트북스 클래식 1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정영훈 엮음, 안해린 옮김 / 메이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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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히고 끌려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보아라. 크든 작든, 상관이 있든 없든, 그들은 모든 일에 끌려다닌다.

할 일이 있으면 무분별하게 간섭하며, 격렬한 움직임이 없을 때는 영혼 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바쁘기 위해 바쁘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곧 자신이 중요하고 존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운명에 합당한 즐거움을 취하되
위대한 이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는다.

"일을 위한 일을 찾는다."

아기가 요람에서 뒤척이듯이 이들의 영혼은 움직임에서 안정을 찾는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 거짓 찬사를 즐기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잘 알고 가장 깊은 곳까지 탐색해 나의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알려지기만 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덜 받아도 만족한다.

나를 향한 남들의 비판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나는 진리를 환대하고 사랑한다. 멀리서부터 진리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나를 내어주고 패배의 의미로 무기를 건넨다

분노와 증오는 정의의 의무 너머에 있으며, 의무를 지우기에 한낱 이성으로는 부족할 때만 열정이 쓸모 있다.

"감성을 선동하는 사람은 이성을 선동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멀리서부터 진리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나를 내어주고 패배의 의미로 무기를 건넨다.

가장 나쁜 버릇이 드는 때는 바로 우리가 가장 미숙한 어린 시절이며 기본 성품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는 보모의 손에 달렸다

아이가 병아리 목을 비틀거나, 뛰놀다가 개나 고양이를 다치게 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소일거리로 삼는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힘없는 농부나 하인을 모욕적으로 비방하는 것을 보고 남자답다 여기거나, 친구를 악랄하게 배신하고 기만하는 것을 보고 명망 있다고 여기는 아버지는 정말이지 어리석다

이것들이야말로 잔인함, 폭정, 반역의 씨앗이요 뿌리다. 여기에 싹이 터서 왕성하게 자라나면 마침내 습관이 된다.

아이들이 근본적으로 악을 경멸하도록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 실체가 얼마나 추악한지, 어떤 가면을 쓸지라도 악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가르쳐 그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새어나오도록 해야 한다.

내 눈이 사방에서 나를 사사건건 지켜보기 때문에 나는 내 의무를 다한다. 내 두 눈이 나를 가까이에서 감시하기에 나도 내 눈을 가장 경계한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대답했다.

플라톤도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꿈꾸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모른다. 거의 모든 고대인들은 ‘우리의 지각이 제한적이고 지성이 미미하며 생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도, 인지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고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기와 상대의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포악한 성미다.

세상의 하찮은 일들에 일관성 없이 동요하고 상처받는 것보다 더 하찮고 한결같지 않은 것은 없다.

이런 성급함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플라톤의 말을 항상 되뇌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이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비난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내 눈이 사방에서 나를 사사건건 지켜보기 때문에
나는 내 의무를 다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당신에게도 그 단점이 있노라 말해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타인의 단점에 대해 주의를 주는 일은 정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후각이 더 예민했더라면 타인의 체취보다 자기 자신의 체취가 더 지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모든 삶은 인생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노출된
삶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

분노가 나를 사로잡고 장악하는 순간부터는 그 동기가 얼마나 사소한가와 관계없이 격분한다. 나와 더불어 설전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과 이 논쟁을 시작한다.

폭풍은 각기 다른 시점에 생겨난 분노들이 서로를 자극하며 각축을 벌일 때만 발생한다. 각각의 분노가 제 갈 길을 가도록 둔다면 항상 평화로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유용하지만 적용하기 힘든 법칙이다.

우리는 분노를 감춤으로써 그것을 더 키운다.

나를 희생시켜가며 내 격정을 숨기기보다는 내 감정들을 느껴보는 게 좋다.

바람을 쐬고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면 감정은 완화된다. 감정의 날카로운 끝이 우리를 향해 굽어 있기보다는 외부를 향해 있는 것이 낫다.

"드러나는 결함은 차라리 덜 심각하다. 정말 위험한 결함은 건강한 기색을 하고 숨어 있다."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면
감정은 완화된다.

고민들은 나를 짓누르거나 상하게 한다. 또한 삶은 연약하며 흔들리기 쉽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우리는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다. 잔잔하거나 물결치는 물 위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렬하게 떠다니는 물체처럼 여기저기 이끌려간다.

지나친 자기만족과 과도한 자기애는 오만함이라는 악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오만은 사유에 깃든다

여기에서 언어는 미미한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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