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워쇼가 2007년에 42세로 사망하자, 미국 인류학회로부터 월간 소식지에 실을 워쇼의 부고 기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오배리가 동물 행동주의 활동에 나서고, 일본의 돌고래 도살 관습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마음먹게 된 데는 돌고래들과 함께한 이력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가 동물의 감정을 인식하고 다른 동물들과의 동류의식을 자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두 마리의 곰, 그리고 수천 마리가 넘는 곰들에 대한 슬픔이 북받치는 상황에서 이렇게 분석적인 질문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의식적인 호흡’을 해야 하는 돌고래들은 이런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 돌고래들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할 정도로 예민한 감정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영향은 잠깐에 그치기도 하고 장기간 계속되기도 한
어린 침팬지 플린트는 어미 침팬지의 죽음으로 슬퍼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신체를 훼손함에 따라 생겨나는 고통이 더 깊은 감정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자해 또한 인간에게 국한된 행동이 아니다.
조사한 병리학자 빅 심프슨Vic Simpson의 말을 인용했다. "일종의 집단 자살처럼 보인다. 돌고래들이 해변에 좌초되는 사례는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돌고래 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좌초된 사례들도 있다
‘사육장 직원이 새끼 곰의 담즙을 채취할 준비를 하자 새끼 곰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사랑하는 새끼 곰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괴로움을 느낀 어미 곰은 우리를 탈출했고, 새끼 곰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도록 새끼 곰의 목숨을 빼앗았다. 감정적 고통을 주체할 수 없었던 어미 곰은 의도적으로 벽에 돌진해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
곰 사육농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담즙 농장에서 일어나는 일. 중국, 베트남, 한국 등 아시아 곳곳에 곰들이 감금돼 있다. 이들 지역에서 곰 담즙에 의학적 효능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관찰만으로는 어미 곰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그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만 남겨두지는 말자. 대신 두 곰이 겪어야 했던 운명과 어미 곰이 실제로 한 행동(어미 곰에게 의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의도였는지를 떠나서)에 미루어, 동물의 슬픔에 관해 우리가 이미 던진 질문들에 새로운 질문을 더해보자. 동물들은 자살을 하나? 자살을 한다면, 슬픔이 동기일 수 있나?
"가족이 있는 사람은 진짜로 죽는 게 아니거든." 죽으면 부고가 나는 사람이든 부고가 나지 않는 동물이든 이 말은 누구에게나 어울린다
구글 검색창에 ‘동물의 자살’을 입력하면 이와 같은 무모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동물 자살의 주요 특징으로 꼽는 각종 일화가 나온다
워쇼는 미국 수화를 익히고 조합해서 뜻을 전달하는 데 획기적인 성취를 이룬 침팬지였고, 미국 인류학회는 이에 근거해 워쇼가 학회원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데일리 메일》은 관련 온라인 기사에 ‘궁극적 희생, 고문으로 점철된 삶에서 벗어나려 새끼 곰을 죽이고 자신도 죽은 어미 곰’이라는 헤드라인을 박았다.
《헤아려 본 슬픔》 마지막 부분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말도 한다. "격정적 슬픔은 우리를 죽은 이와 연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단절시킨다.
내가 다른 동물들은 경험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바로 슬픔의 무게에 대한 의식과 슬픔에 관한 정신적 성찰의 지형도 변화다
한 인구 통계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약 5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1070억 명가량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다
내게 두드러지게 다가온 것은 인간의 특별함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들도 사랑을 하고 슬픔을 느낀다는 깨달음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야생에서, 농장이나 생추어리, 동물원에서, 또는 우리와 함께 가정집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이 인간의 무시와 학대로 풍파를 겪었거나 직면해 있는 실상은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를 찾기 위해 봄날을 즐기기를 포기하고 온 사람들, 내 아버지에게 직접 애도를 표하고 나와 내 어머니에게 힘을 주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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