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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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에 방을 잡고 컵라면을 먹으며 같이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돈도 없는데,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가지게 되었으니 힘들었겠지.

그런 공무의 마음이 모래의 눈에는 어째서 보이지 않았을까. 공무는 왜 모래에게 다가서지 못했을까

문득 나는 어떤 부끄러움을, 얼굴이 온통 붉어지고 어깨까지 따끔거릴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처음부터 돈이 많이 깨졌다면서 나를 새는 바가지라고 불렀지.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민폐 그 자체인 내 존재에 대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무슨 물렁한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떼어 그애에게 전했으니 공무는 나의 일부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식의 애착이 스물하나의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그 인간들이 변하고 달라진다고 해서 그들이 학대한 사람들의 상처가 없어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감정싸움에 섞인 서로에 대한 애정이 제삼자인 내게도 보여서, 그 애정이 나를 우리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아서, 다툼의 맥락을 둘만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착각하지 말라고. 단지 마음이 쓰이는 걸 그렇게 잘못 생각하지 말라고.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니. 너무 나쁜 사람들을 너무 나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얘기해?"

엄마는 왜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나를 계속 밀쳐 쓰러뜨렸을까. 일어서면 다시 때려 쓰러뜨리고, 일어서면 다시 때려 쓰러뜨리기를 반복했을까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네가 어떻게 커왔는지 뻔히 아는데, 그런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 문장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잡는 건 항상 모래의 몫이었으니까. 관계의 지속은 모래에게 달린 것처럼 보였다.

이유도 없이 맞고 있을 때 그 몸에서 나를 꺼내오기 위해, 그 몸이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나 자신을 세뇌하기 위해 애쓰는 내가 있다고.

이게 좋은 거겠지. 옳은 길이겠지. 모래는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깨끗한 얼굴에 그만큼이나 깨끗한 표정이 어렸다

절대로 이런 방에서 살 일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남의 일이니까, 그래도 위로는 해줘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런 모래를 바라봤던 것 같다.

내 눈에 모래는 의사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똑똑한 동생을 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의 가장 넓은 평수에 사는 온실 속 화초였다.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스물둘의 나는 공무를 포옹하지 않았다.

어떤 망설임도 불안도 없는 얼굴. 내가 가질 수 없는 얼굴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공무가 어땠냐고. 마냥 혼자였지. 마냥 혼자였어, 그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던 사람처럼 혼자였어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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