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 집 여자애가 개나 말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시절에.
증조부가 가장 최악이었던 순간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
내레 다음 생에선 네 딸로 태어날 테니. 네 딸로 다시 태어나서 에미일 때 못다 해준 걸 마저 해줄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백정의 딸인 것보다도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한 존재라고.
나도 데리고 가라. 그녀의 치마를 꼭 붙들고 있던 엄마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내던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 증조모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
증조모의 침묵은, 그 마음은 할머니에게도 스며들었다.
백정의 자식이라는 말에 그애의 존재를 구겨 넣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백정이라는 표식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증조모가 할머니를 보며 엄마라고 불렀을 때, 할머니는 고조모가 증조모에게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기래, 가라. 내레 다음 생에선 네 딸로 태어날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얘야……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났던 거야."
삼 년이 지난 뒤 둘은 귀에 화살이 꽂히고 다리는 부러진 채로 새남터에 끌려가서 같이 처형당했다.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네가 자꾸 나한테 뭘 해주면, 내가 되돌려줄 게 없어서 문제가 생겨."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새비 아주머니의 무릎을 베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잠들 때의 평화로움을 할머니는 기억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 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미웠다. 밉다 밉다 다 밉다보니,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자식에게 한 발짝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 할머니도 미워졌다.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할머니가 베고 누운 새비 아주머니의 치마에서는 계절의 냄새가 났다. 쑥 냄새, 미나리 냄새, 수박 냄새, 마른 고추 냄새, 불을 피운 부뚜막 냄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진짜 천함은 인간을 그런 식으로 천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입에 있다고 했다.
마음 다 감추고 사느라 얼마나 서럽구 외로웠어. 아즈마이가 다 안다. 아즈마이한테는 영옥이가 딸이나 진배없다이. 오늘은 마음껏 울고 훌훌 털어버리라우.
할머니는 외롭지 않을까. 할머니는 대체 누구에게 의지하고 사는 걸까
네가 내 친구여서 고마워. 나는 그 말 한마디를 소리 내어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벅차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나를 웃게 해주고 말이 통하는 대화 상대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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