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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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인지목덜미인지를 틀어쥐고 있었다.
아버지 손에는나무둥치에 박혀 있던 전지용 낫이 들려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울음소리와 비명뿐이다. - P26

예의바른 표현들: 천만에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혹은 어서 앉아요, 자릿세 받지 않아요.
육체를 미래 혹은 세계와 관련지어 묘하게 말하는 법: 뺨에 눈썹 한 터럭이 나게 해달라고 빌어봐. 혹은 누가 내 칭찬을 하나 보다, 왼쪽 귀가근질근질하네. 아니면 자연과 연관 지어서 비가오려나, 삭신이 쑤시네.

우리가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보다 더욱 잘 꿰고 있는 천사, 성모마리아, 아기 예수 등의 인물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 편재하고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지도 않은 인물들과 더불어 친근하게 살게 만든다. - P93

부끄러움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나에게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움 뒤에는 오직 부끄러움만 따를 거라는 느낌. - P129

부끄러움은 반복되고 누적될 뿐이다. - P148

1996년의 여름이 끝났다.
이 책을 구상하기시작했을 무렵 사라예보의 시장 바닥에 박격포탄이 떨어져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몇몇 작가들이 "부끄러움에 목이 멘다"라고신문에 썼다.
그들에게 부끄러움이란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그다음 날이면 떨쳐버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는(보스니아 내전) 적용되지만 다른 상황에는(르완다 내전)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개념이었다.
사라예보 시장의 피바다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아리츠의 사진들을 본다.
아버지는 이십구년 전에 돌아가셨다.
사진 속 여자아이와 지금의나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내게이 책을 쓰게 만든 6월 일요일의 그 장면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 장면은 결코 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이 작은 여자아이와 나를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그 사건뿐이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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