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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ㅣ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카노 카즈아키(高野和明) - 13계단(13階段) ★★★★★
다카노 카즈아키(高野和明)를 데뷔와 함께 밀리언셀러 작가로 만든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13계단(13階段)을 읽었습니다. 다카노 카즈아키(高野和明)의 작품은 이전 제노사이드(ジェノサイド)로 먼저 접했었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대볼륨에 비해 루즈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무난함 이상의 재미를 얻지 못해 언젠가 꼭 읽으리라고 생각해왔던 이 13계단(13階段)을 읽는데도 많은 망설임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읽어 본 '13계단'은 아무 고민이나 의혹 없이 정말 '잘 써졌다'는 생각이 깔끔하게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13계단(13階段)은 사형 집행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사형수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지불하려는 독지가, 그 의뢰를 받아들인 교도관 난고와 그의 도움으로 가석방 된 상해 치사 전과자인 준이치. 두 사람이 10년전에 종결된 사건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갑니다.
왜 이 남자는 샤형이 아니고, 50년 전 여성 피고인에게는 사형 판결이 내려졌을까? 형법이 그 강제력으로 지키려는 정의는 어쩌면 불공정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닌 참사관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하려 할 때 그 정의에는 보편적인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카노 카즈아키는 항상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문제작을 출판해내기로 유명합니다. 제노사이드(ジェノサイド)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었던 대량학살(제노사이드)를 묘사하며 신중한 역사 의식을 드러내고 그 와중에 도덕, 이성, 인격과 같은 '인간적인 부분'의 중요함을 그려내 일본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의 데뷔작인 이 '13계단' 역시 교도관 난고와 전과자인 준이치, 두 사람의 주인공과 기억을 잊고 누명을 쓴 사형수를 통하여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기엔 너무나 무겁게 사형 제도와 현대 국가의 범죄 관리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회파 소설입니다.
작가는 오전마다 사형수를 데리러 오는 교도관의 발소리에 미쳐가는 사형수의 공포감, 사형수를 '사형'시키는 교도관 난고의 고뇌, 상해 치사죄로 수감되었던 준이치의 모습을 통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대한 깊은 고뇌와 공포를 그려냅니다. 그러면서도 누명을 쓴 사형수. 사카키바라의 모습에서 사형 제도와 현대 범죄 관리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합니다. 재판을 집행하는데 모든 사람의 속내를 알 길이 없건만, 사카키바라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범죄자가 얼마나 참회의 뜻과 반성의 기미를 내비쳤느냐에 따라 형량을 줄여주는 '개전의 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살인 사건이 기억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카키바라에게 그러한 '개전의 정'은 오히려 불리한 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사형시키는 과정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가와 실무자들의 두뇌 싸움, 국가의 행사에 따라 사형수의 사형 집행일이 앞당겨지기도 하는 등, 장난치듯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벌이는 사건들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을 누명을 쓴 사카키바라의 기억에 남아있는 결정적인 증거인 '13계단'과 사형수를 사형하기까지 걸리는 행정 절차와 명령의 '13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표현합니다. 13계단(13階段)이라는 제목은 그 의미만으로도 이렇듯 현대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현대 일본의 사형 제도와 범죄 관리 시스템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다각적인 시선으로 세세하게 분석해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 책 한권을 써내는데 그 소재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어 조사해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이야기를 써내면서도 이전에 읽었던 '제노사이드'에서 느꼈던 스토리적 모순과 과한 전문성이 없어 정말 깔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의 중간 쯤에는 교도관인 난고가 준이치를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사형수를 사형시킨 자신의 업보를 속죄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 '닮았다'는 말은 결말에서 다시 언급되며 모든 관계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치밀하면서도 감탄스러운 구성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가 흔한 흐름이라고 말할까, 분위기상 범인이나 흑막을 유추해내기 대단히 쉽기 때문에 엄청난 반전이나 충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소설은 시사점을 남기는 속에 담긴 깊은 주제 뿐만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잘 써진 소설입니다.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주인공 중 한명이었던 준이치의 입을 통하여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다카노 카즈아키 작가의 말을 마지막으로 감상을 마칩니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