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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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 작가의 심도 깊은 조사와 탐구, 그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13계단'은 사형 제도를 비판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로서 사형 제도의 문제점을 놀라울만큼 탄탄한 구성과 흡입력으로 이끌어냈고, 2012년 서점대상 2위, 제2회 야마다 후타로 상 등을 수상한 '제노사이드'에서는 인간 학살에 대한 역사의식을 담아내어 논란이 된 바가 있다. 그런 그가 KN의 비극(K.Nの悲劇)에서는 '중절'이라는 문제에 눈을 돌렸다.


 "네가 말하는 대로지. 나는 이 손으로 수많은 아기를 죽여 왔어. 왠지 알아? 무책임한 부모가. 사회가 아기를 죽이길 원해서였어!"


 KN의 비극에서는 두 명의 'K.N'이 등장한다. 젊은 나이에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자리에 오른 기자인 슈헤이와 결혼하여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나쓰키 가나미. 그리고 가나미의 친구인 나카무라 구미이다. 슈헤이는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을 통하여 거액의 인세를 얻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맨션을 장만했고 가나미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펼쳐지는 듯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내의 임신 사실에 기쁨보다 먼저 찾아오는 계산. 수입과 빚, 양육비와 생활비... 결국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 슈헤이는 가나미에게 중정을 하자고 설득하고 가나미는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절을 위하여 병원에 찾아가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다른 인격이 들어온 것처럼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가나미. 그녀의 몸을 잠식한 것은 나카무라 구미라는 여성이었다. 슈헤이는 정신병인지 심령현상인지 모를 이 빙의 현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나카무라 구미를 찾아 나서고 산부인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이소가이는 가나미를 치료하고자 노력한다. 아내의 마음을 잠식한 것은 정신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심령 현상인가. 두 명의 'K.N'에게 닥쳐온 비극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고민과 시사점을 던진다.


 슈헤이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나카무라 구미 명의의 모자 보건 수첩을 바라봤다. 흔해 빠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여성 전체를 대변하고 있기라도 하듯.......


 하지만 '중절'이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선택했으나, 그 메시지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부족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침을 고이게 만들었던 맛깔나는 표지와 달리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재미는 아쉽게만 느껴졌다.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는 13계단에서 사형수의 공포심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탄탄한 구성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과 몰입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 KN의 비극은 13계단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문장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반복되는 구성, 쓸데없는 지면의 낭비가 가독성을 흐려 반복되는 이야기에 곧잘 지루함을 느끼고 책을 덮게되고는 했다. 의사인 이소가이는 계속해서 슈헤이의 아내인 가나미에게 찾아온 정신병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가나미의 상태를 해명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지만, 의학서를 뒤지다가 결국 '답이 나오지 않는다'로 끝나는 내용도, 결과도 다르지 않은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어 몰입도와 가독성을 낮춘다. 사형수의 오명을 벗기기 위하여 사형 제도에 대해 알아보고 그를 통해 사형 제도를 비판하는 '목적'과 '탐구'과 정확히 일치하던 13계단과 다르게 이 작품에서 가나미의 '정신병에 대한 조사'는 '중절'과 '생명'이라는 작품의 주제와는 전혀 동떨어져있는 탐구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의사인 이소가이에게 정신병에 대한 의학서를 읽히기보다 '중절과 생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더욱 고심하게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제의식이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정신병'이나 '심령 현상'이라는 소재 또한 애매하기 그지없다. '사형제도'와 '역사의식'과는 다르게 정확한 치료법으로 규명할 수 없는 '정신병'이나 논리적인 설명이 통하지 않는 허구의 '심령 현상'과 같은 소재에서는 공감을 얻기 힘들었다. 이것은 곧 허술한 구성으로 이어져 마무리 또한 뻔하고 식상하여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기대감과는 다르게 읽는 재미는 물론 '중절'에 대한 사회비판과 고민에 깊이 몰입하지 못했던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데뷔작인 13계단 이후 그만큼의 걸작이 나와 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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