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는 '개를 찾아주는 책'과 '개가 전염병을 옮기는 책'을 읽더니만 이번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라니... 그만큼 개는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 아닌가 싶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는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 역시 수상했었던 문학상이라 여러모로 기대가 컸다.

 "지금 몇 신 줄 아세요? 난 시간 안 지키는 사람은 딱 질색입니다. 시간을 천금처럼 생각하지 못하니까 어렵게 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이번 한 번은 경고예요. 다음에 귀가 시간 어기면 그땐 얄짤없어요. 아셨죠? 개를 분실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이 녀석은 처음부터 혈통서가 있는 개라고 말씀드렸지요? 아저씨가 개 분신하면 평생 일해도 못 갚아요. 다음부터 늦지 마세요. 외출도 못 하고 이게 뭐야. 짜증나게시리......"

 따뜻해보이는 표지와 다르게 이야기는 너무나 삭막하다. 사랑하던 여자에게 속아 산업스파이로 해고당한 이후 신원조회를 당하지 않는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었던 주인공. 잘나가던 컨설턴트라는 직업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부유한 집안의 개를 산책시켜주며 개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고,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와 고기집 불판닦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처참하다. 이 소설은 도랑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을 통하여 아이러니한 주변의 삶을 그려내고 개를 산책시키는 일을 통하여 다시 재기에 성공해나가는 주인공의 달라지는 모습과 벌어지는 사건으로 부와 명예보다 소중한 것에 대해 말해나간다.

 "죄송해요. 아무리 봐도 아저씬 이런 일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녀는 얼결에 그런 말을 했다. 그래도 괜히 가슴이 짠했다. 이런 일이라? 세상은 묘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일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이런 일을 한다. 스파이 짓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버젓이 스파이 짓을 했고, 철저하게 외면해야 괜한 불똥을 맞지 안흔ㄴ다는 판단이 서면 성자 같은 이들도 무서울 정도로 왕따를 시키는 일에 동참했다. 이런 일, 저런 일은 상황에 따라 바뀔 뿐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그녀가 조끼 주머니에서 초콜릿 바를 꺼냈다.

 하지만 이 책이 어째서 세계문학상을 수상받은 것일까? 작가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초반의 가독성과 이야기의 재미는 볼만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흐려지고 구성은 망가진다. '다른 차원을 말하는 모임'과 같은 애매하고 불확실한 소재와 연달아서 겹쳐지는 사건들이 독자의 눈을 흐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가독성과 재미를 떨어뜨려 마지막에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책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성공에서 떨어지고 다시 성공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삶과 가치를 그려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책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고 '문학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것보다 한가지를 이야기 하더라도 독자에게 확실하고 강렬하게 전해줄 수 있는 주제의식과 '문학'이라는 높은 산에서 내려와 대중에게 다가가 뜻한 바를 전해주고 대화하려는 자세. 이것들이 합쳐졌을 때 진정한 '문학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에는 이것이 부족하다. 담겨있으나 그것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힘은 부족하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는 자기만족적인 작품이 아니라 독자와 대화하려는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주제를 힘 있게 끌고 나갈 능력이 부족하다.'는 세계문학상 심사평에 크게 공감이 간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