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 28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정유정 작가의 글을 읽고 있자면, 도저히 여류 작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힘 있고 강렬한 묘사와 간결한 문체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몰입도로 스케일이 큰 서사를 글로서 그려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여류 작가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필력에 빠져들었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7년의 밤'이 취향에서 먼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신작인 '28'을 구매하게 된 이유다.

 정유정 작가의 신작인 '28'은 화양이라는 도시에서 전염병이 돌면서 생기는 일을 다섯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의 시점으로 그려낸다. 화양이라는 도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전염병, '빨간 눈'은 인간과 개를 가리지 않고 전염해간다.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에 개에게, 개가 인간에게, 개가 개에게... 순식간에 도시 전체를 뒤덮는다. 정확한 발병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감염된다. 눈이 핏빛으로 변하고 갑작스러운 고열과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나며 채 나흘도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높은 치사율과 강한 전염성을 보여주는 이 전염병에 정부는 화양을 폐쇄한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군인들을 배치하여 감염된 사람은 물론 감염되지 않은 사람까지도 화양이라는 도시에 가둬놓고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격리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식량은 물론 보급품까지 끊어진다. 정부는 물론 세계 전체가 화양이라는 도시를 '빨간 눈'이라는 강한 전염병의 숙주로 간주하고 격리시킨다. 화양 안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고, 화양은 결국 살인, 강간, 약탈 등이 백주대낮에 일어나는 무법 천지로 변해간다.

 '전염병'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격리된 디스토피아'는 최근 소설은 물론 영화, 만화를 불문하고 모든 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다. 그러나 정유정의 '28'이 다른 점은 결코 전염병의 원인 규명이나 전염병의 치료법 개발에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지막까지 '빨간 눈'의 원인이나 치료법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유정 작가가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까? 인간성이 파괴당하고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 '화양' 안에서 유기동물보호소인 '드림랜드'를 운영하는 '서재형'의 모습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정유정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정유정 작가는 '28'을 통하여 다시 한번 독자들을 스크린 앞에 데려다 놓는 것에 성공했다. 과연 그녀의 힘 있는 묘사와 몰입도 있는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정유정 작가의 소설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항상 그렇듯 그녀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스토리텔링 재능과 여류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문학적 함정들을 뛰어넘는 힘 있는 필력에 반하면서도, 허무한 결말과 읽는 재미가 부족한 이야기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그녀의 소설을 최신작까지 읽은 지금에서야 깨닫지만 사실 그녀의 소설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필력에 반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세간의 호평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집착과 같은 노력을 해왔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