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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디에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1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그런대로 우수한 성적과 사교성. 출세욕을 가지고 있으며 지망했던 대학에 합격하여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은행원으로 일하며 순조로운 인생을 살아가던 주인공 고야 조이치로는 원인모를 아토피성 피부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조사 사무소인 '고야 S&R'을 차린다. 원래는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는 정도의 조사원이 될 생각이었는데 개업하자마자 도쿄에서 실종된 젊은 미인을 찾아달라는 생뚱맞은 의뢰와 한 신사에서 발견된 고문서의 유래를 조사해달라는 한층 더 생뚱맞은 의뢰를 떠맡게 된다. 탐정을 동경하여 무작정 일하겠다고 찾아온 고등학교 후배인 한다 헤이키치와 함께 두 방향으로 갈라져서 각각의 의뢰를 조사하던 중 두 의뢰는 기묘한 접점을 보이며 하나의 결말로 수렴된다.
어쩌면 대박인 척해놓고 실은 꽝일지도 모르지만,
내일은 개를 찾고 오겠습니다.
평소 일상 미스터리, 혹은 청춘 미스터리를 그려내는 엔터테인먼트 작가인 요네자와 호노부(米澤穂信)의 작품답게 이야기에 재치가 넘친다. 그의 작품에서 항상 등장하는 시니컬한 느낌의 주인공 역시 매력적이다. 쉽고 편하게 읽히는 문장이 독자로부터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는 그저 그런 평작이라는 느낌이라 다소 아쉽다. 조사하던 두 사건이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은 놀랍지만, 결국에는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솔직히 모두 읽고 난 후에는 맥이 빠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부분에서 대단히 감탄했다. 개는 어디에(犬はどこだ)라는 제목을 가진 책임에도 이 책에서 주인공이 쫓는 사건과 개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개는 어디에'라는 제목이 붙은 것일까?
병환으로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둔 사람이 모두 나처럼 빈껍데기가 되지는 않는다. 그 사실에 비추어보건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피부병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니다. 나는 원래부터 계기만 있으면 빈껍데기가 될 수 있는, 그런 나약함을 내포한 인간이었다. 이것이 올바른 인식일지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아무런 구원도 되어주지 못했다.
주인공인 고야는 원인모를 피부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성에게서 버림받은 후 고향에서 반년 간을 방안에 틀어박혀 살아온 사회 부적응자이다. 주인공인 고야의 시니컬한 말투로 표현하자면, 그는 패잔병이다. 그런 그가 사회 복귀를 위해서 개를 찾아주는 사무소를 연다. 하지만 정작 개를 찾는 의뢰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무기력하게, 들어오는 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사건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개가 머리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개와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개는 눈이 마주치면 흥분한다고. 또 이런 말도 들었다. 만일 눈이 마추지고 말았을 경우에는 먼저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해 개가 기고만장한다.
사건을 따라가던 중 그는 들개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어릴 적 들개의 습격에서 동생을 구해내던 일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건 당순명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고야를 위협하던 것은 개였고, 목적은 동생을 구하는 것이었으며, 그는 그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하여 영웅이 되었다. 그 명쾌함이 지금의 무기력한 그에게는 아득한 꿈만 같은 일이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어릴 적을 회상하는 그의 앞에 들개에게 쫓기는 어린아이가 나타난다. 그는 어릴적 '영웅'이었을 때처럼 어린아이를 구해내고 팔뚝을 문 개를 바라보며 내뱉듯 말한다. "네놈이 이길 수 있을 리 없잖냐."
이렇게 '개'는 고야의 성장이자 회복의 상징이다. 제목인 '개는 어디에'는 지금 내 눈에 '나는 어디에'라는 제목으로 보인다. 주인공인 고야는 붙잡은 들개에게 내뱉듯이 말한다. "이러다가 죽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는 사건을 따라가며 점점 과거의 자신과 열정을 회복하고, 마찬가지로 직장을 잃고 어딘가로 실종되어버린 그녀에게 패잔병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그녀를 찾아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무기력함 속에서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 사무적인 태도가 아니라, 위험에도 무릅쓰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그런 고야의 내면을 보여주는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묘사와 세심한 테크닉이 놀랍다. "에메랄드 마운틴." 피부병을 재발시키지 않기 위하여 그 좋아하는 커피를 연한 커피로, 하루에 한잔만 마시던 그의 평소와 다르게 진한 커피를 시키는 이 한마디의 문장에서 얼마나 많은 내면의 변화가 느껴지는지 모른다. 또한 과거 '야나카 성'에 대한 고문서를 해석하며 드러나는 옛 조상들의 투쟁과 맞물려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은 얼마나 충격적인가. 주인공도, 그가 동질감을 느끼는 패잔병인 '그녀'도 끝까지 싸워나간다. 이 작품은 '추리'나 '사건'보다는 그 속에 담긴 성장과 투쟁이 진정으로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는 어디에(犬はどこだ)는 요네자와 호노부(米澤穂信) 작가에게 있어서 일종의 터닝 포인트이다. 평소 일상 미스터리와 청춘 미스터리를 써내던 그는 2005년에 출판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 미스터리에 빠져들어 인사이트 밀(Incite mill), 부러진 용골(折れた龍骨)과 같은 작품으로 신본격 미스터리의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재미는 다소 아쉬웠으나 역시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할까, 그의 작품에서만 느껴지는 재치와 이야기 속에 담긴 주제의식이 놀라운 작품이었다.
또한 이 책은 고야 S&R 시리즈 1권이기도 한데(표지 위쪽에 영어로 '고야 S&R 사건수첩 1'이라 적혀있다) 아쉽게도 이후 시리즈는 연재되고 있지 않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