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바 카즈키(桜庭一樹) -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少女には向かない職業)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열세 살. 주인공인 오니시 아오이는 중학교 2학년이다. 학교에서는 그렇게나 밝고, 시끄럽게 떠들다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농담을 잘하는 소녀지만, '괴물'. 알코올 중독에 걸려 온 몸이 까맣게 죽어버린 새아빠와 '내가 왜 너 때문에 이렇게 고생해야 하냐'며 매일 불평하는 엄마가 살고있는 집에 돌아오면 과묵해진다. 그런 때에 그녀는 미야노시타 시즈카를 만나고 두 사람을 죽이게 된다. 살인 무기는 각각 악의(惡意)와 배틀엑스.

 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少女には向かない職業)라는 책은 참으로 사쿠라바 카즈키(桜庭一樹) 작가 다운 책이다. 중학교 2학년의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부조리하고 힘겨운 삶을 그려내며 그것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하여 부숴나가는 이야기가 라이트노벨과 일반소설 양 문턱에 걸쳐져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라이트노벨로 데뷔하여 일본 최고의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하기까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작가의 애매하면서도 장르의 벽을 허무는 작풍이 그대로 담겨있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부분은 분위기뿐 아니라 내용 전개나 마무리까지 라이트노벨의 애매함과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힘겨운 삶과 인간관계에 대해 부드럽게 그려나가지만, 중학생 소녀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어딘가 유치하게 느껴지고, 어느새 친구가 되어 가장 큰 비밀을 공유하게 된 미야노시타 시즈카의 정체가 드러나는 후반부는 일부러 진실을 감추려는 작가의 테크닉이 작위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미숙하여(이런 테크닉에 속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아쉬움을 남겼다.

 나는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 안다. 그건 딸도 아니고, 죽은 남편도 아니고, 새로 생긴 애인도 아니다. 분명히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일 것이다. 도회지에서 뭐가 됐어도 됐을 젊고 예뻤던 여자. 그 여자는 영원히 엄마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젊고 아름답고 시건방지며 가능성으로 가득한 채로. 엄마는 이런 한심한 섬에서 썩고 있는 지금의 자기가 아닌, 다른 뭔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언제라도,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거다. 엄마는 정말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나는 여기 있어.

 '부조리한 현실'을 묘사하는 부분은 감탄한 부분도 많았다. 오니시 아오이는 카드로 데이터를 기록하는 게임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폭력성을 풀어내기도 하고, 조그마한 연정을 품고있는 남자아이와 친하게 지내기도한다. 이 게임은 소녀의 인간관계이자, 감정 그 자체로 묘사된다. 그런데 '괴물'로 묘사되는 새아빠는 그녀의 카드를 찢어버린다. 그녀는 구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매일 집에 와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딸에게 '너 때문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돼'라며 불평을 하는 소녀의 엄마는 새아빠의 장례식에서 아오이에게 '하긴, 너는 그를 잘 따랐지'라며 무관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엄마는 곧 새 남자를 만든다.

 열세 살 소녀에게 이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가. 그것을 소녀는 '살인'이라는 다소 과격한 방법을 통해서 풀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가혹한 현실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이 책의 결말은 다소 미완성으로 끝나버린다. 주인공인 아오이와 엄마의 갈등이 어떻게 되었는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워낙 편하게 읽히는 소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허술한 내용 전개와 마무리 덕분인지 아쉬운 부분이 대단히 많았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내 남자'를 썼었던 필력과 표현력은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일까.

PS. '내 남자'를 읽은 후부터 사쿠라바 카즈기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많아서 꼭 읽고 싶었던 책인데 품절이라 읽지 못하다가 겨우 구해서 드디어 읽었다. 덕분인지 책의 재미는 아쉬웠음에도 기쁘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