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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없는 꿈을 꾸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메피스토 상에 관심이 많았을때 제31회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접했었던 츠지무라 미즈키(辻村深月) 작가의 글을 일본 최고의 대중 문학상인 나오키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의 최신작인 열쇠 없는 꿈을 꾸다(鍵のない夢を見る)는 2012년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젊은 층을 노린 미스터리 소설이었던 데뷔작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와 다르게 이 '열쇠 없는 꿈을 꾸다'는 범죄 소설임과 동시에 일상에서 이유없는 초조함을 느끼는 다섯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삶의 본질을 소설로 풀어서 말하고, 그것에 공감을 느끼게 하며, 또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교훈을 주는, 단순히 장르적인 재미나 대중성을 뛰어넘은 성숙한 책이다.
이 책은 니시노 마을의 도둑,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 기미모토 가의 유괴.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절도, 방화, 납치, 살인, 유괴라는 범죄를 소재로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섯 편 모두 주제는 다르지만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들 모두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지방도시에서 심리적인 압박감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상의 초조함을 느끼며 왜곡된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왜곡된 삶의 모습을 읽으며 역설적으로 그녀들이 보여주지 않은 올바른 삶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며 교훈을 얻게 된다.
가장 공감했던 단편은 어릴적 절도를 저지른 친구와 그것을 용서하지 못한 주인공. 잘못한 것이 없는 쪽은 언제까지고 기억하는데, 잘못을 저지른 쪽은 깨끗하게 잊어버린 상황을 그려낸 '니시노 마을의 도둑'이다. 누구든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일이 없더라도 미래에 분명 한번쯤 마주보게 될 상황이다. 어떻게 이런, '말로 하기 어려운' 경험을 소설로서 독자들에게 깔끔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용서하는 삶을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욱 강렬하고 직설적인 교훈을 '용서하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각인시킨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단편들은 모두 이런식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이야기, 말로 하기 어려운 말을 소설로서 독자에게 전해준다. 범죄 소설에 말 그대로 '삶'을 담아내는 생생한 작가의 필력이 감탄스럽다.
가장 재미있었던 단편은 마지막 두 편,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과 '기미모토 가의 유괴'였다.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은 사랑을 모르는 한 남자에게 집착하던 여성의 궁극적 선택으로 인한 비극을 그린 이야기인데, 다섯 단편중에서 가장 감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사랑을 갈구하고, 또한 집착하는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 묘사가 너무 좋았다. 기미모토 가의 유괴는 말 그대로, '경험' 없이는 쓸 수 없었던 단편이다. 아기를 그렇게나 바라던 주인공이 육아 스트레스에 좌절하는 모습과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의 감정 묘사가 너무나 생생하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는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었던 걸작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느낀 작품이지만, 나오키상을 수상할 정도의 '대중성'이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수밖에 없다. 까놓고 말해서, 직접적이고 장르적인, 대중적인 재미는 부족했던 작품이다. 다섯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점도 있고 여류 작가가 여성 화자를 통해 쓴 작품이라 그런지 남성 독자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어려웠다. 특히 앞의 세편은 단순히 읽는 재미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이 책은 대중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삶의 교훈을 전해주는 자기계발서라고 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 삶의 생생한 모습과 교훈을 소설로 표현한 것이 대단히 감탄스럽고 놀랍기는 하지만... 단순한 재미면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