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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다 리셋 1 - Cat, Ghost and Revolution Sunday, NT Novel
코노 유타카 지음, 이형진 옮김, 시이나 유우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리셋은 항상 그런 성질을 지닌다. 뭔가 슬픈 일이 있고, 의뢰를 받아 리셋한다. 그리고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 먼저 문제를 해결한다. 의뢰인은 자기가 도움받은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행복을 받아들인다. 물론 케이에게 감사하는 자는 없다.
너무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그렇게 생각한다.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풍경, 찾지 못한 무지개.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 이상의 인구가 능력자인 '사쿠라다'라는 동네에서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아사이 케이와 '세계를 3일치 리셋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루키 미소라. 설정만 보자면 라이트노벨의 소재로는 흔한 폐쇄공간형 초능력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순수하게 깜짝놀랐다. 괜히 이곳 저곳에서 추천하는 작품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했다. 예전부터 이곳저곳에서 말이 많던 작품이라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런 걸작을 건지다니...
일상을 살짝 뒤튼, 비일상적 요소로서 오랜 세월동안 라이트노벨의 소재로서 사용되어온 일정 지역에 등장하는 이능력자라는 설정을 보면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이능력배틀'물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쿠라다 리셋(サクラダリセット)은 그런 작품이 아니다. 이능물이라고 하더라도 화려한 전투가 펼쳐지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장 인물들이 가지는 이능력은 고양이와 교감하는 능력, 목소리를 타인에게 전해주는 능력 등 전투와는 별 상관없는 소소한 능력들이 대부분이다. 짐작했듯이 내용도 굉장히 담백하게 진행된다. 노을이 지고 안개가 끼는 마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고요하면서도 잔잔한 작품이라고 말하고싶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용은 오묘한 미스터리가 가미된 판타지라고 할까.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도 '능력'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십분 발휘한 훌륭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감탄한 부분은 주인공인 케이가 다른 인물에게 은유를 통해 묻는 질문 등에서 드러나는 철학적인 무언가(항상 내가 좋아하는 글의 냄새)를 안겨주는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하루키는 뭔가 반론하고 싶은 것 같았으나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표정을 바꾸었다.
코노 유타카(河野裕) 작가의 필력에는 여러 부분에서 놀랐다. 등장 인물의 모습을 이곳저곳 해체하여 허약하고 긴 문장으로 페이지를 반 넘게 잡아먹는 구구절절한 묘사를 해대는 것은 작가가 아닌 나라도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하루키의 복잡한 내면과 케이의 능력에 대한 언급을 단순히 '하루키는 뭔가 반론하고 싶은 것 같았으나'라는 문장으로 함축해버린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런것을 말한다.
후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단순히 이 1권만을 봤을때는 장편 시리즈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권으로서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어찌보면 담백하고, 무난한 스토리 플룻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 충실하게 내용을 담아낸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성이 놀랍다.
다른 라이트노벨처럼 노골적인 썸씽이나 시끌벅적한 이벤트, 화려한 액션이나 배틀은 없지만 캐릭터 조형이 대단히 아름다워 라이트노벨로서의 요소도 놓치지 않는다. 자신만의 신념을 지니고 그것을 똑바로 관철해나가는 주인공 케이와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복잡한 마음을 내비치는 히로인 미소라는 정말로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이나 시끌벅적한 하렘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라이트노벨은 아니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용히 감상하고, 그 안에 담긴 미세하지만 분명한 감정과 분위기를 읽어내고, 철학적인 부분을 고심하며 책을 한껏 음미할 수 있는, 활자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싶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