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최근까지도 열심히 활동중인 유명 작가인 시마다 소지(島田荘司)의 작품을 언제가 읽어봐야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선뜻 손대기 힘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유명작들이 대부분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고 본격 미스테리 시절에 활동하던 작가라 취향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시마다 소지(島田荘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형사 요시키 시리즈 11번째 작품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奇想、天を動かす)만 하더라도 1989년 발행작입니다. 현대라면 몰라도 20년 이상 과거의 일본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욱 더 망설여졌는데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군요.

기상천외한 트릭의 열쇠는 
하늘마저 움직인 남자의 마음이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쿄의 상점가에서 부랑자 노인이 소비세 12엔을 요구하는 가게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치매에 걸린 걸인에 의한 충동살인이 분명하지만 요시키 형사는 어쩐지 석연치가 않다. 유아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써 26년간 비참한 복역 생활을 했던 노인,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노인의 온화한 성품과 소설을 쓸 정도로 지적인 인물임을 증언한다. 한겨울밤 열차 안, 밀실인 화장실에서 자살한 피에로의 시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이야기, 하얀 거인에 의해 하늘로 날아오른 열차 등 괴기스러우면서도 환상적인 소설을 쓴 노인. 탐문 중 요시키 형사는 노인이 쓴 기묘한 소설이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되고 곧이어 충격적인 진실과 조우하는데…….

 재미는 그저 그랬지만 생각보다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미스테리의 트릭이나 해결이라는 부분에서 충격을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 도쿄의 상점가에서 가게 여주인을 살해한 노인이 "왜" 죽였는가를 따라가다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의 한을 느끼게 만드는 민감한 소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지요.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민감한 소재를 1989년 당시에 유명 작가가 일본 사회에 직구를 던지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대담한 소설이라니...

 이 책의 주제는 여타 본격 미스테리처럼 범인이 "어떻게" 살해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왜" 범행을 저질렀는가가 중요합니다. 범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뀌지 않고 주인공인 형사 요시키는 주임에게 '그런다고 범인이 바뀌나? 멍청한 짓 하지마!'라는 소리까지 듣지만 형사 요시키는 범행 동기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트릭을 풀어낸 후 주임을 향해서 당당하게 외칩니다.

“공부하지 않고, 일하려고 하지 않고, 사건의 흔적을 더듬으려고 하지 않는 그런 놈들이 꼭 우쭐거리며 남을 얕보고 업신여기려 들지. 자신한테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하고 싶으면 해라, 나는 상관없으니까. 그러나 그 일처리만은 참을 수 없어! 나를 바보라 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 노인을 쓰레기라 하며 이 이상 힘들게 하는 건 참을 수 없어. 가만히 놔둘 수 없단 말이다!”

 노인이 소비세 12엔에 사람을 죽였을리 없다고 믿으며 30년도 더 된 과거를 파헤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지독한 교도소 생활을 한 노인을 통해 결과만 맞춰지면 과정이나 사정은 상관없다는 식의 경찰이나 국군주의 시절 이유없는 폭력을 휘두르던 사회를 비판하고 무리한 개발로 인한 옛 정서 파괴등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결국에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우리의 한과 마주하게되고 형사 요시키는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지금 요시키 앞에 있는 이 노인은 아득한 옛날, 일본인이 범한 죄의 응보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에 대개 일본인인 자신은 설마 경찰관이라 해도, 아니 결찰관이기 때문에 절대로 고압적인 말을 내뱉을 수 없다. 요시키는 마치 자신이 '40년' 저편의 일본인의 죄를 혼자 짊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유명 작가가 이 시절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게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형사 요시키 시리즈라는 타이틀과 공포스러운 표지에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본격 미스테리 작품을 예상한 것과 다르게 의외로 감성을 뒤흔드는 세세한 묘사와 감성적인 문장이 좋았고 1989년 시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나카무라라는 인물의 입을 통해 요시와라나 오이란 등의 단어를 충분히 설명해 시대의 벽을 허무는 작가의 테크닉도 좋았습니다.

 충분히 좋은 소설이고 느낀 점도 많았던 책이지만 정작 재미 자체는 그저 그랬습니다. 기시 유스케(貴志祐介)의 유리망치(硝子のハンマ-)같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찾는 뻔한 추리물이 아니라 그럭저럭 읽었지만 일본 철도사정을 몰라서 그런지 1957년에 있었던 철도 미스테리 사건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철도 그림이 나오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지 사건 자체를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했던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범행 방법이나 과거 사건의 미스테리를 푸는 과정은 본격 미스테리에 가깝지만 정작 책 자체의 주제나 구성은 사회 비판적 성격을 가득 담고있는 사회파 소설에 가까웠습니다. 본격 미스테리와 사회파 미스테리가 융합된 걸작이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재미는 그저 지루하지 않는 정도였지만 많은 것을 느낀 좋은 책입니다.


PS. 표지 디자인이 정말 멋있습니다. 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하드커버의 요시키 형사 모습도 좋더군요.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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