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 피아노 - 카가미 소지가 되돌리는 범죄
사토 유야 지음,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최근 흠뻑 빠져있는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는 일그러진 세계관과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묘사. 미스테리한 이야기와 반전. 그리고 정신병자같은 등장 인물들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싸이코같은 글이 취향에 맞았는지 어릴적 읽었던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데뷔작인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에서 그 넘치는 에너지와 방향성 없는 무조건적인 증오에 충격을 받았고 얼마 전에 읽게 되었던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에서는 흐트러져 있던 이야기들이 뭉쳐서 만들어 낸 반전과 알 듯 모를 듯 느껴지던 미스테리하고 감각적인 묘사에 담긴 이야기를 깨달았을 때의 쾌감과 놀라움이 독서욕에 불을 지폈다.


 끝을 알 수 없는 수면 아래로 서서히 잠겨가는 절망적이고 충격적인 세상! 세 명의 ‘내’가 1인칭 시점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독특한 작품. 세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는 모두 나이도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도 다르다. 비슷한 점은 모두 홋카이도에 살고 있다는 것 말고는 없다. 세 이야기 속의 ‘나’는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망가져 버린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채팅으로 알게 된 소녀에게 집착하는 ‘나’, 가족들의 욕심으로 인해 뇌가 망가진 여동생에 의해 죽어가는 ‘나’, 그리고 동급생 소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놈’을 없애기 위해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나’. 작가는 이렇게 비상식적인 주인공들의 불행과 광기 어린 모습을 이야기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암울하며 어딘가 불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플리커 스타일』,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에 이어 사토 유야가 그려나가는 카가미 가(家) 7남매들의 연작 스토리 중 세 번째 이야기.


 하지만 이 3권인 <수몰피아노(水?ピアノ)>를 읽고는 어느정도 실망을 하게된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정상적인 소설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야기 구성 자체나 흥미, 재미, 그리고 반전을 깨닫는 쾌감에 대해 말하자면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 쪽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사토 유야(佐藤友哉) 특유의 일그러진 이야기는 여전했지만 이전의 에나멜이나 플리커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인 이야기와 반전이 너무나 아쉬웠다.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 때에도 어느정도 상식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번에 제대로 다뤄진 카가미 소지는 생각보다 더 멀쩡한 등장 인물이었다. 나락을 향해 달려가는 집안에 환멸을 느끼고 도망쳐 나와 큰아버지의 집에서 살아가고, 친구들이 많으며, 술을 잘 마시고, 서양 음악을 듣고, 패션숍을 쇼핑하는 카가미 소지는 약간 삐뚤어졌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잘 노는 사회인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 조차도 작가가 의도한 바였겠지만 읽는 내내 소지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져 나중에는 카가미 가문 사람들 중 가장 바닥을 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아는 지인은 "왜 정상적인 등장 인물을 그렇게 혐오하냐"고 말했지만......

 이번 이야기도 역시 여러 시점에서 서술되던 세 이야기가 나중에 하나의 큰 흐름으로 합쳐져 반전을 드러내는 사토 유야(佐藤友哉) 특유의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여동생에게 한명씩 차례로 살해당하는 가족의 이야기. 악의에 둘러쌓인 소녀를 지키기 위한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에 패배하여 무력하게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소녀를 지키기 위한 소년의 이야기. '코우'의 이야기는 그 비정상적임과 반전에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머지 두 이야기는 마지막의 반전을 위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만 있을 뿐 한마디로 너무나 싱거웠다.

 <수몰피아노(水?ピアノ)>가 지금까지 읽었었던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 중 가장 정상적인 이야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 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왔다. 마치 사토 유야(佐藤友哉)가 대중에 타협하고 일반인의 시각으로 다운그레이드 시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권들에서 느껴지던 엄청난 에너지는 느껴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무력한 문장만 이어졌다.(이야기 자체가 '무력감'이라는 소재에 집중해있는 탓도 있겠지만.)

 기대보다 실망스러웠지만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를 손에서 놓을 생각은 없다. 책의 띠지를 보니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4권인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鏡姉妹の飛ぶ?室)>가 '곧 정발된다'라고 쓰여져 있었지만 2008년에 정발되었던 <수몰피아노(水?ピアノ)> 이후 몇년이나 지났는가.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鏡姉妹の飛ぶ?室)>은 원서로 구매해서 읽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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