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 - J Novel
이누무라 코로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어떤 종류의 물건이든 하늘, 또는 바다를 주제로 한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그것이 하늘과 바다의 넓은 배경을 보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시원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하늘, 바다를 주제로 한 소설이나 영화, 날개 모양의 악세사리, 심지어 이런 취향은 패션에도 적용됐는지 최근에는 날개모양의 메이커로고가 특징인 로빈스진을 탐내고있다.

개인적으로 장편 연재 소설보다는 단권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두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구입하기에 경제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짧은 글 속에 담겨진 캐릭터성과 주제, 그리고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단권 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만큼 표현하고싶은 이야기를 짧게 압축해야하기 때문에 단편 소설은 장편 소설보다 쓰기 어렵다. 어려운만큼 작품의 수가 적고 선별되어 국내에 출판된 단편 소설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뛰어난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오랜만에 접하는 라노베 시장에서 단권소설들을 먼저 뒤지기 시작한것도 이상한점은 아니다. 심지어 그 단권 소설이 바다 위에 깔린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결국 나는 とある飛空士への追憶(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을 구입했다.

대폭포를 사이에 두고 레밤인과 아마츠카미인이 전쟁하며 대립하고 있는 시대 속에 아마츠카미 어머니와 레밤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 베스타드라 불리며 차별받아 고통받고 있을때 수도사에게 구원받아 결국 뛰어난 비공사로 성장하게 된 주인공 샤를은 아마츠카미의 전략적인 목적에 따라 목숨의 위협을 받게된 예비 황녀 파나를 태우고 비공정 한대로 본국까지 호송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게되는 이야기. 예전부터 '공주와 기사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뻔한 스토리는 계속 있어왔던만큼 이야기자체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고 예상대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식상함"이라는 부분이었다. 초반의 프롤로그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결말까지 한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라인은 솔직히 실망스러웠을 정도. 심지어 마지막에 샤를이 의뢰를 완수하고 받은 의뢰비를 어떻게 처리할지까지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것은 '비공정'이라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속에 라노베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모에와 액션을 모두 담아냈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심각한 세계관 속에서도 어찌어찌 하다보니 수영복밖에 남지 않은 파나라던지, 중간에 쉬어가는 섬에서 벌어진 낭만적인 이야기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속에 담긴 모에가 유치하지 않은 문체로 표현되어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공주와 기사' 이야기에서 하이라이트인 파나와 샤를의 사랑이야기. 어린 시절의 그를 베스타드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 준 유일한 사람이 파나였던만큼 오랜만에 만난 파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예비 황녀와 용병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감정을 계속해서 절제하는 모습과 엄격한 귀족식 교육과 억압에 마음의 문을 닫아가던 파나가 샤를이라는 존재를 만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하늘에서는 계급도 신분도 없다'라는 샤를의 한마디가 신호탄이 되어 용기내 고백하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가슴아픈 사랑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이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에서 가장 감탄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는 전투 장면의 묘사이다. 사실 전투기라는 소재는 그 분야에 왠만큼 정통하지 않으면 조작이나 액션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비공정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일반 전투기보다도 좀 더 판타지적인 요소를 포함한 쪽을 좋아하는데 이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은 일반 전투기에 가까운 비공정을 가지고도 충분히 스릴있고 격렬한 전투 장면을 그려내듯 잘 써냈다. 샤를과 파나 둘만이 타있는 비공정으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펼치며 수많은 아마츠카미 전함과 비공정을 아슬아슬하게 탈출해내는 장면은 여느 배틀물에 뒤지지 않을정도로 스릴있었다. 결말도 상당히 놀라웠는데 이 식상하면서도 뻔한 이야기에 감동받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서도 아무것도 해결된것이 없다는 부분이 굉장히 놀라웠다. 사실 '뛰어난 비공사가 예비 황녀를 태우고 단독으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내용은 딱 보기에도 굉장히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틀림없음에도 결말에서만큼은 전쟁이 끝난것도 아니고, 파나와 이어지지도 않고, 로맨틱하긴 하지만 현실의 벽을 강하게 느끼게 한 현실적인 결말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로맨틱한 분위기속에 포장하기는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전혀 해피엔딩이 아닌, 가슴아픈 엔딩이었다.

일러스트 부분은 예상했던대로 굉장히 아쉬웠다. 몇장 들어가지도 않는 일러스트인데도 볼때마다 글에 대한 몰입도를 뚝뚝 떨어뜨리는 그림체. 특히 중반 부분 전투 장면에서 그려져있는 비공정을 보는 순간 칼로 일러스트가 있는 페이지만 떼어내고 싶었으나 일러스트 뒤쪽에도 글이 써져있는지라 결국 그대로 놔둘수밖에 없었다.

세간의 평가는 대단한 명작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읽을만하기는 했지만 엄청난 감동을 받은것도 아니고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식상하고 평범한 이야기... 아마 너무 식상하고 뻔해 마지막 결말까지 모두 예상되었던 부분이 재미를 반감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노베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의 하렘물이나 난잡한 배틀물에 지친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치있는 책이다. 깔끔하고 유치하지 않은 필력과 전투 장면의 묘사는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犬村小六(이누무라 코로쿠)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만들었을 정도. 개인적으로는 평작이라고 하겠으나 적어도 돈이 아까운 책은 아니었다.

모두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이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언제 시간나면 한번 보고싶다. 거기에 <어느 비공사에 대한 연가>라고해서 5권 완결의 장편 소설이 있다고한다. 식상함과 결말 이후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아직 구입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보다 함께 구입했었던 책. 와타세 소이치로(渡?草一?)가 쓴 <윤환의 마도사(輪環の魔導師)>쪽을 더 기대했었으나 실제로 읽어보니 생각보다 너무 재미없어서 2권부터는 지르지 않을 생각이다. <하늘의 종이 울리는 별에서> 등을 썼던 와타세 소이치로의 글솜씨나 표지만 봐도 매력적인 미도리 후우의 일러스트. 이 두 사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액션 판타지를 기대했으나 생각보다 재미없는 이야기와 1권이라서 그런지 존재감조차 없는 주인공. 재미없는 액션... 아니, 이야기쪽은 아무래도 좋았으나 중간중간 자꾸 뒤바뀌어 혼란을 느끼게하는 캐릭터성이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읽던 도중 책을 몇번이나 덮었는지... 이래서야 단순한 중2병 판타지와 다르지 않다. 미도리 후우의 일러스트 또한 표지와는 다르게 내부 일러스트는 그리 성의있어 보이지 않았다. 기대했으나, 그만큼 실망한 책이었다. 주변 사람중에 이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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