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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인문학이 대세죠. 그만큼 바쁘게 살아가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어서,
그동안 나를 잊고 살아서, 그런 나를 다시 찾고 싶어서
인문학 강의를 많이 듣고,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천년의 수업>은 그리스 로마신화와 고전을 통해
나와 세상을 꿰뚫는 통찰을 들려줍니다. 그럼 내용을 볼게요.

질문은 기초와 기본이 있습니다.
질문의 기초에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 일명 팩트 체크가 필요합니다.
올바른 전제를 정립하는 것, 사실 관계를 파악하려는 태도야말로
질문하는 삶의 기본입니다.
육하원칙을 따져보고,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나 자료를 찾아보고,
내용 자체가 논리적으로 정합한지 알아보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다음에는
정보 이외의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정보가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정확성만큼 더 중요한 것은 맥락입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맥락을 파악했다면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판단하면 됩니다.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옳은지 그른지, 아름다운지 추한지,
즉 실용적, 도덕적, 미학적 관점은
질문을 맞닥뜨릴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익과 윤리, 아름다움 중에서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가 하는 점은
매번 달라집니다.
저자는 지금도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이 일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법에 저촉되거나 일반적인 윤리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지, 멋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추하지는 않는지 묻는답니다.

아폴론 신전의 현관 기둥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라는 뜻입니다.
신전에 신탁을 듣기 위해 들어오기 전, 사람들에게
묻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죠.
우리는 문제 상황에 부딪쳐야 비로소 의문을 느낍니다.
인생이 평탄할 때는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듯 자연스럽게 흘러가죠.
커다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절망 앞에서 내가 어떻게 일어서는지
겪어본 적 없고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 문제 상황에 부딪치면
거대한 방황과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비로소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리며
단정하고 확신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판단을 중지하는
'에포케'가 필요합니다.
판단을 중지하고, 다시 한번 묻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의 진짜 모습을, 의식하지 않는 부분까지도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인간은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밭을 갈고, 집을 짓고, 성을 쌓으며, 인간들은 사는 동안
자신의 무늬를 새겼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모든 노력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나와 이 세대의 우리는 앞으로 이 땅 위에 무엇을 새겨 넣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계속 보전하고
어떤 것은 제거해 나가야 하는가?'.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듭니다.
우리 주위의 무늬들은 인류가 지금껏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해온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삶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세요.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온 발자국의 궤적을 돌아보고,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살았나 물어보세요.
만족스럽지 않다면 앞으로 어떤 길을 만들며
어떤 자취를 남기고 갈 것인지를 꿈꿀 수 있는 힘으로 바꾸세요.
그것을 고민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욱 인간다워질 것입니다.
영원히 산다면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순간들은 빛을 잃을 것입니다.
하루가 끝없이 반복될 텐데 오늘을 이렇게 보내든 저렇게 보내든
무슨 상관일까요.
저자는 "오뒷세이아"에서 '죽음이 있는 삶'에 대한 긍정을 찾았답니다.
오뒷세우스를 보면서 비로소 죽음의 가치, 죽음으로 인해
또렷해지는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대요.
인생은 유한하며, 그로 인해 삶의 순간들이 빛납니다.
삶의 순간에 응축된 다채로운 빛깔을 깨닫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진하게 보내려고 애쓰게 됩니다.
무엇을 하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조차도
그때의 감정을 잔뜩 느껴보게 됩니다.
자신 안의 충만한 감정을 느낄 때, 삶은 조금 더 풍성해집니다.
모든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죽음이 사실은
모든 존재를 빛나게 만드는 셈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죽음이 가진 진짜 힘이 아닐까요.

참된 자존감이란 남의 눈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일지라도
삶을 열심히 꾸려가고 있으며, 그런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진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기준과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인생을 존중해야 할 이유 또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기술을 배우기 전에 인간은 무엇이며, 무엇을 해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의 쓸모와 방향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어떤 양상으로 세계가 변하든 그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새로운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잘 꾸릴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정답을 맞히는 사람을 만들기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돕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더 나은 사람,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열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깨달음이나 답변이 꼭 완벽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하고 얻는 경험이 쌓이는 동안
시야는 조금씩 넓어지고 지혜도 조금씩 깊어질 겁니다.
저자는 그런 과정이 바로 성장의 기반이자 성장 그 자체라고 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성장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대학생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역사, 철학을 가르치면서
'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라고 물어본대요.
그럼 학생들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럴 여유가 없음을 표현합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이일 때는 세상이 질문투성이였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궁금한 것도 질문할 것도 사라졌습니다.
자기가 얻은 답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다시 묻지 않을 채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대다수가 추구하는 성공 모델이 존재합니다.
그 성공 모델은 실패가 적고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결승점만 통과하면 만족스러운 삶도
자연히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끝이 아니지요.
결승점 너머에는 더 복잡한 선택의 기로가 놓여 있고
그동안 몰랐던 세계도 펼쳐져 있습니다.
직선주로인 줄 알았던 나의 인생이 사실은 망망대해임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미루고 미뤄왔던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나를 어떻게 할 때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기로 앞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때 <천년의 수업>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