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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평점 :

1977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나 후쿠시마대학 행정사회학부를 졸업한 저자는 2002년 "총"으로 신초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2003년 "차광"으로 전작에 이어 다시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4년 노마문예신인상을 받았습니다. 2005년 "악의의 수기"로 미시마유키오상 후보에 올랐고, 같은 해 "흙 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습니다. 2010년 "쓰리"로 오에겐자부로상을 받아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럼, <미궁>을 보겠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어린 내게 말합니다. 사람들과 그럭저럭 어울려 사는 존재가 되느냐,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리는 존재가 되느냐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요. 그 남자는 나의 분신 R이 이물(異物)이며 그 분신에게 책임져 달라며 떠넘기라고 합니다. 나의 침묵을, 오른쪽 허벅지를 긁어대는 버릇을, 오른쪽 눈만 질끈 감는 습관적인 틱을, 새엄마의 속옷을 훔치는 것을, 같은 반 친구 유리를 껴안아버리는 실수를, 남을 믿지 않는 것을, 남을 경멸하는 습관을, 남이 나를 만질 때의 이질감 등을요. 만일 그렇게 되면 그럭저럭 내 삶이 명랑해질 거라고 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는 술집에서 처음 만난 사나에 씨와 밤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나와 중학교 동창이라고 하는데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녀의 집엔 남성 정장이 걸려져 있었고, 급한 대로 그 옷을 입고 출근했습니다. 퇴근하려고 빌딩을 나오는데 탐정이라는 남자가 사나에 씨를 아냐고 물어봅니다. 그는 내가 입은 양복을 입은 사람을 찾고 있다며,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그녀의 집에 자주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사나에라는 여자는 유명한 사람이며 히오키 사건의 유가족이라고 합니다.
히오키 사건은 1988년 내가 열두 살에 일어난 미궁 사건입니다. 언론에서는 '종이학 사건'으로 불렸습니다. 도쿄 네리마구의 민가에서 히오키 다케시라는 남성과 그의 아내 유리, 그리고 15살 아들이 사체로 발견되었고, 12살 딸만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이 민가는 밀실 상태로, 현관, 창문, 모든 곳이 잠겨 있었습니다. 다만 한 군데, 화장실 창문은 열려 있었으나 너무나 작아서 어린아이가 아니면 드나들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일가족 자살인 줄 알았으나 남편과 아내가 모두 예리한 흉기에 의해 살해되었고, 아들은 심하게 구타를 당한 끝에 독극물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장에 흉기는 없었고, 남편에게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구타를 당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주먹에 의한 것이고 왼손잡이라고 합니다. 범행 현장에는 사체를 장식하듯이 무수한 종이학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옷을 입지 않은 상태의 아내 유리의 사체는 종이학에 파묻혀 있었고, 숫자는 도합 312개입니다.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으로부터 한 달 뒤 용의자를 검거했으나 기소에 이르지 못했고, 사건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 미궁 사건에서 수면제를 먹고 벽장 안에서 잠이 든 사나에는 22년이 지난 후인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녀는 범인이 10년 후에 다시 만나러 온다고 했답니다. 미궁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지, R은 영원히 사라졌는지, <미궁>에서 확인하세요.
<미궁>의 화자인 나는 어릴 적 주위에 기댈 사람이 없어 가공의 인물 R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버릇과 행동을 했고, 주위 사람들도 내게 등을 돌렸습니다. 결국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았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R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범죄 뉴스 등을 봤을 때, 내가 주위에 명랑한 사람이라는 연기를 하고 있을 때, R이 자신을 버리고 범죄자 속으로 들어간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나의 생각과 주위 사람들에게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미궁 사건의 유가족인 사나에를 만납니다. 그녀는 10년 뒤 범인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말을 들었으나 10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유예가 더 무섭답니다. 점점 드러나는 그녀의 비밀과 그녀를 만나고부터 오른쪽 눈을 무의식적으로 손끝으로 자꾸 만지는 나까지, 주인공 나의 일그러진 심리를 보고 있으면 대지진이란 자연재해를 겪고 난 후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무 힘도 없는 어릴 때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주인공처럼 되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 것입니다. 읽을수록 제목처럼 미궁 속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