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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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나니 짐짓 숙연해졌습니다. …라고 쓰고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레터를 통해 먼저 접한 책 소개에서 '박래군'이라는 이름이 낯설면서도 아주 낯설지는 않았어요. 뉴스나 기사에서 종종 마주하곤 했던 이름이었거든요.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는 인권 운동가 박래군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그런데 분명 에세이라고 했는데? 읽고 나니 대한민국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책을 한 권 읽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도한 시대가 초래한 슬픔과 분노의 역사 속에 항상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눈물을 흘리는 자 옆에 항상 박래군이 있었습니다. 그 눈물에 온기가 있다는 믿음으로요.





 1961년 노동절에 태어난, '來올 래, 群무리 군'의 한자를 쓰는 박래군은 본래 소설가를 꿈꿨습니다만 무도한 폭력의 시대는 그를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문학회 소속 선배가 강제 징집을 당하면서 시대적 부채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사상과 이론을 배워가며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강제 징집을 당하게 되고 전역 이후에는 인천 부평 지역에서 노동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한미 은행 점거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되죠. 첫 수감 후, '왜 그렇게 사느냐'는 아버지의 일갈에 자신의 이름처럼 서로 모여 데모하기 딱 좋은 이름처럼 살고 있다고 받아치는 기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모진 폭력과 고문을 감내하면서도 박래군은 이 시절을 활동가로써 내실을 다지는 단단한 시절이었다고 정의합니다. 마치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경구처럼 말이죠. 사실, 비단 이 시절뿐이 아니라 박래군의 삶 전체가 저 한 문장을 고스란히 체화한 것만 같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이 도래하고 맙니다. 박래군의 동생이었던 박래전이 '광주 학살 원흉 처단'을 외치며 분신하여 88년 6월 6일, 스물여섯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동생 박래전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상실과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박래군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준비된 유가족은 없다. 유가협뿐만이 아니다. 나는 인권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유가족을 만났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유가족들, 제주 4·3의 유가족들은 자신의 부모와 형제가 죽어갈 때조차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고 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남은 이들은, 그러나 침묵만 하지 않았다.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았지만 끝내 그들은 말했고, 그들의 말은 가해자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었다.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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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절을 계기로 전태일 열사의 모친이었던 이소선 여사를 만나게 되어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인권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죠. 관련 활동을 이어가다가 UN 세계인권대회에 참가를 계기로 더 넓은 영역에서 바라보는 인권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인권 단체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발하게 인권 운동을 전개하는데요, 《인권하루소식》이라는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인권 관련 뉴스를 발굴하여 알리는 일간지를 발행하기도 하였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권 영화제'를 개최하여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한국 인권 활동의 저변을 넓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그의 활동가 인생에 변곡점이 도래합니다. 바로 2014년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 유가족 곁에도 박래군이 있었습니다. 진상 규명 활동과 더불어 유가족을 지원하고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또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죠. 그는 세월호 참사를 가까이 목도하면서 생명 안전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4·16 재단을 설립합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또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과 함께 연대합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이유도 없이 스러져가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죠. 진실을 외치는 투쟁마저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지곤 하지만 결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고난은 투쟁이라는 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그를 추동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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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사람들의 증언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에 더 공감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바로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되고, 유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p.433





 너무 많은 죽음들, 눈물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알고 있었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었고요, 용산 참사도 세월호 참사도 그랬습니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분노하고 울고 있었어요. 선진 민주 사회라고 운운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죽음이, 의뭉스러운 죽음이, 인권이 유린당한 죽음이 흘린 피를 자양분으로 그저 비대해지기만 한 것 같달까요. 정말 곳곳마다 박래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며 같이 눈물을 훔칩니다. 그가 지나온 인권 투쟁의 길에는 느리지만 확실하고도 분명한 변화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편하게 누리고 있는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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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잘한 일이 있다면? 눈물 흘리는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려 했고, 그 눈물의 온기를 기억하려고 애썼던 일일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흘리는 눈물에는 온기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음을 잊지 말자." 그래야 사람으로 살 수 있으니까. p.439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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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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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매일 아침 자습 시간에 칠판에 적힌 대여섯 개의 한자를 줄줄이 받아 적었던 기억이 나요. 정규 과목은 아니었고 교과목이 시작되기 전 조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의 재량으로 한자를 배우던 것이었죠. 나중에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복잡하고 작은 글자 하나에, 획과 획이 모여 쌓인 서사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참 신기했더랬죠. 삐뚤빼뚤 그리듯이 써나가던 한자와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각 한자의 유래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요. 아 그리고 감사하게도 선생님 덕분에 그 시절 어휘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도 했죠.





 한문을 좋아하게 된 건, 한 글자라도 손에 꼭 쥐고 여러 번 공글리며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려보게 해주는 이 공부의 사려 깊은 방법이 매력적임을 알게 되어서이다. p.219, 習[습] 익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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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종종 복잡한 한자를 마주할 때면 검색 보다 먼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합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획들을 가늠해 보며 과연 이 한자는 무슨 뜻을 품고 있을지 짐작해 보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한자의 기분》도 그 결을 같이 한다고 느껴졌습니다. 다만 '한자'와 '기분'이 서로 상통하는 내밀한 접근이랄까요. 한문학자인 저자는 그것을 오롯이 해냅니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한자로 하나, 하나 엮어냈거든요. 하나의 한자를 두고 깊게 톺아보는 과정에서 흐르는 감성적인 사유들을 읽다 보면 그 전체적인 과정이 퍽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열의를 가지고 수학하는 학문 속에서 그 주체(한자)를 가지고 감정까지 톺아보는 관계의 확장도 놀랍고요.







 《한자의 기분》은 총 12부, 각 부마다 열 자의 한자 다루고 있습니다. 무려 120자의 달하는 '한자'와 그에 얽힌 '기분'이 있는 것이죠. 학문에 대한 열의와 학자로서의 고민, 관계의 차고 더운 온도, 부대끼고 가라앉는 감정, 그럼에도 불현듯이 반짝이는 영감과 고요하게 흐르는 사유들이 한 자의 한자를 통해 정의됩니다. 혹시 '한자'라서 괜스레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나 기우였고요. '기분'에 초점을 맞추고 각 한자에 대한 저자만의 고유한 해석을 타고 흐릅니다. 낯선 한자들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고 익숙한 한자들은 다시 새로워집니다. 무미건조하게만 느껴지던 한자들이 저자의 감정과 만나 비로소 유의미하게 생동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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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생활을 집어삼키려는 기분 앞에서, 기분의 해명이라도 세세히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매일 한자 한 글자씩을 골라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 고쳐서[改] 좋은[善] 쪽으로 가려고 애쓰며 살아낸 날들을 증명할 글을 써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덩그러니 기분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한자에 기대어 기분을 비추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p.247, 改[개]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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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읽은 뇌과학 책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명확한 이름을 지어주는 일의 중요성에 관해 읽은 적이 있는데요, 이는 여러 가지 효용성이 있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 우선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고, 모호했던 감정의 실체가 명확해지면서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과의 의사소통 과정 속 불필요한 오해로 인한 감정 소모도 줄일 수 있게 되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전반적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한자의 기분》도 이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물론 '한자'라는 매개를 통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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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도 땅도 훤해서, 낱낱의 사물들이 자신의 빛깔을 다 드러내버리는 낮이 자주 버겁다고 느낀다. 겨울과 여름 아닌 가을과 봄이 어렵고 버거운 것과 같은 이치다. 낮에 위안 삼는 건, 기다리면 곧 밤의 고요가 온다는 생각. 그리고 밤 너머엔 또 아침이 있다는 생각. 기다리는 것이 분명한 사람은 마냥 슬퍼만 하거나 울적한 기분에 빠져 있지 않을 수 있다. p.49, 晝[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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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晝(낮 주)를 떠올리며 '낮이 버겁다, 낮에 위안을 삼는 것은 밤의 고요가 온다는 생각'이라는 구절에서 오래 머물기도 했습니다. 너무나도 밝은 낮의 빛이 숨기고 싶은 마음 구석구석을 여지없이 파고드는 느낌 때문에 그늘이라면 조각이어도 좋으니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었던 기분을 느낀 적이 있던 터라 '晝'는 제게 잠시 따갑고 무거운 감각을 일깨웠기 때문이죠. 이렇듯 저자가 감각한 한자는 다시 독자에게로 흘러 새로운 감상을 떠올리게 만들며 공명하기도 합니다.







 한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산문들이라 산뜻한 리듬으로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素[소] 하양'은 마치 산문시처럼 잔잔한 운율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팔랑팔랑 넘기다가 마음에 들거나 궁금한 한자가 나오면 멈춰 골라 읽기도 좋습니다. 압축적인 한자를 풀이하며 감정과 상통하는 과정은 감성적이기도 해서 버스럭 거리는 마음에 적절한 수분감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소란스럽지 않은 사유들 덕분에 책을 넘기면서 가볍게 사색도 해봅니다. 한자를 한 획, 한 획 톺아보고 마음의 결을 한 결, 한 결 고르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흐르곤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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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글에선 겨울·밤·장마의 시간을 아울러 '삼여三餘'라고 썼다. 이 세 종류의 시간에는 여유롭게 방 안에서 독서에만 몰두하기 좋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밥 식食'자가 들어가 있는 '餘' 자는 애초에 밥이 남을 만큼 넉넉하다는 뜻이다. 눈 내리는 겨울, 세상이 잠시 멈춘 밤, 비가 쏟아지는 여름은 모두 소란한 세상의 반대편에 마련된 비밀기지와도 같다. p.216, 餘[여]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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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여, '세 가지의 여가'. 좀 더 찾아보니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한다고 합니다. 겨울은 농사일이 없고, 밤은 하루 일과를 다 마친 후이고, 장마는 궂은 날씨로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이 시간들을 활용하면 공부할 여유가 충분하니,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죠. 계절이 계절인지라 눈이 펑펑 내리는 깊은 밤의 심상이 떠오릅니다. 작은 스탠드 하나 키고, 폭닥한 이불을 덮으면 '소란한 세상의 반대편에 마련된 비밀기지' 품에서 《한자의 기분》을 읽는 기분은 또 어떨까요.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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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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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하면 근간에 화제가 되었던 <콘클라베>라는 영화와 책이 떠오르시겠죠. 하지만 저는 '콘클라베'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댄 브라운의 원작 소설, 로버트 랭던 시리즈 중에 바티칸 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가 먼저 떠오릅니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가운데 로버트 랭던이 로마 곳곳을 숨 가쁘게 돌아다니며 암호와 사건의 진실을 긴박하게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지요. 바로 이 영화 초반에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과정이 나오거든요. 굉장히 낯설고 비밀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잔뜩 풍겨서 호기심을 자극했던 터라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따로 찾아보기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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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는 추기경들의 모습 ⓒ 영화 <천사와 악마>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후,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인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가 선출되었죠.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서는 이러한 콘클라베의 과정을 따라갑니다. 국제 정세와 맞물린 전반적인 교황청의 흐름과 현재 상황, 그리고 레오 14세의 이력과 그의 비전 등을 톺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치고 제목이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요, 이 말은 레오 14세가 2025년 5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즉위 미사 강론 중에 한 말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 흩뿌려진 증오와 폭력, 편견에 대항하여 선포한 말이라고 합니다.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the hour for love!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입니다!





 본격적으로 레오 14세를 탐구하기 전에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살펴봅니다. 세속의 잣대로는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데요, 그가 행한 업적들이 그렇습니다. 가톨릭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배척하고, 바티칸 은행의 부패 척결을 위해 회계 장부를 공개하며, 관료주의적이었던 교황청의 조직을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또 난민, 이주민, 빈자들과 같이 낮은 자리, 소외된 이들을 위한 행보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외된 비유럽권 지역의 추기경들을 대거 임명하기도 하였죠. 그래서 이번 콘클라베는 '역사상 가장 다양한 국적의 젊은 추기경들'이라는 의의를 가지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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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 중 80퍼센트는 콘클라베 참석이 처음이었다. 135명의 추기경 가운데 133명이 로마에 도착해 참여하게 됐으며,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콘클라베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들의 추기경을 발탁함으로써 추기경단을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추기경이 서임되어온 밀라노, 파리,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들은 배제됐고, 남수단, 브루나이, 파푸아뉴기니, 통가처럼 이전에 추기경이 탄생하지 않았던 새 지역의 인물들이 발탁됐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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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이 지난 지금, 그가 이룬 가장 위대한 개혁은 교회에 대한 세상의 인식 변화, 그리고 권력 중심의 교회에서 사목적 돌봄 중심의 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일 것이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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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한 업적들을 보면 참 훌륭하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어디서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득권이 있는 법. 가톨릭 내 기득권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LGBTQ+를 향한 포용적인 태도, 교황청 내 여성의 지위 향상,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에 강한 비판 등은 내부에서도 굉장히 논쟁적인 사안으로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내부적으로 분열을 야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된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가톨릭은 다시 전통주의적인 가치관을 회복하려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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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클라베 과정을 뉴스로 접하면서 저도 궁금했습니다. 특히 레오 14세가 어떤 옷을 입고 등장할지가 궁금했거든요.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빨간 비단 망토인 모제타를 착용하지 않고 하얀 수행복과 낡은 검은 구두를 고수하며 자신의 신념인 겸손과 검소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었거든요.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도 부유했지만 모든 재산을 버리고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고요. 아니 그런데 이와 반대로 레오 14세는 붉은 모제타와 화려한 장신구를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제 가톨릭이 전통으로 회귀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다분히 반대 노선을 탈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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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서 그려지는 레오 14세의 모습이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더니, 레오 14세는 어릴 적부터 단연 돋보이는 신앙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신앙의 길로 들어섭니다. 미국 태생이긴 하나 그의 주요한 사역은 주로 남미 페루 치클라요 빈민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교황에 선출될 때 해당 지역에서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니 존경받는 사제였음은 분명하죠. 이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을 역임하며 바티칸의 핵심 요직인 주교부 장관까지 역임하게 됩니다. 비로소 바티칸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도로 굉장히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쓴소리를 건넨 적도 있다던 레오 14세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히려 곁에 두었을 만큼 신임했다는 거죠.





 사실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적인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니까요. '시노드'는 교회 쇄신을 위해 민주적 소통을 중요시하던 제도로 성직자 중심에서 벗어나 평신도와 여성의 목소리까지 담고자 노력했던 제도의 일환이었거든요. 또 레오 14세는 남미 페루에서 20년간의 사목 경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던 "목자에게선 양 떼의 냄새가 나야 한다"라는 현장 사목의 중요성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하니까요. 붉은 모제타를 걸친 시노드 정신의 레오 14세는 어쩌면 가톨릭의 전통과 개혁이라는 경계에서 적절한 중재자 역할을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티칸 기자라지만, 기자의 시선이라서 그럴까요. 종교와 관련된 책이지만 종교적으로 홀리holy하지 않아서 거부감이 없이 잘 읽힙니다. 일단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가톨릭과 교황청, 바티칸을 중심으로 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따른 해석이 중심이 됩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미국인 교황'과 '미국'의 관계였는데요. 세계의 경제적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 대통령과 세계적으로 막대한 종교적 권위를 지닌 교황을 물질적 권력과 정신적 권력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신선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인 교황이 교황이 되어버리면 정신적, 물질적 권력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레오 14세 교황의 정체성이 미국보다는 그가 사역했던 남미 페루와 가깝기 때문에 그런 구도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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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보스트는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위기에 처했음을 알아차렸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앉아 있었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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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이라는 직위의 무게가 새삼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행정적 업무는 물론이고 종교적 활동을 비롯한 전 지구적인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고, 정치적인 알력 다툼도 상당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책에 기술된 콘클라베 과정 중 프레보스트 추기경(레오 14세)의 좌절하는 모습은 의미심장해 보여서 웃픕니다. 심지어 우연히 개표 담당이 되면서 투표용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연이어 불러야 했다는데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네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그분의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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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교황이 깊고 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눈치채 타글레 추기경은 주머니에 몰래 숨겨온 사탕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것이 새 교황님을 위한 저의 첫 번째 자선 행위입니다." 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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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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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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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것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삶도 죽음도 종착에나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설프게라도 삶이란 것은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결코 모를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죽어버린 존재는 죽음에 대해 말해 줄 수 없으니까요. 죽음 뒤에 남겨져 죽음이라는 실재를 목도하는 사람들만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라가의 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형우, 진 사장님, 재이, 구표, 신이. 이들은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죠. 정확하게는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나를 살아 있게 한 질문이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살고 싶어서가 아닌,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p.28 



 형우는 10년 전에 어머니와 동생 은우의 동반 자살로 세상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가족의 자살 이후, 형우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트럭커의 삶을 살아갑니다. '살아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네요. 형우는 10년 동안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었거든요. 비극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으면서요. '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라고 말이죠.



 인생은 물속처럼 상하좌우 구분이 안 돼 헤맬 때가 있지만, 도로는 정확해서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간 삶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p.63 




 전국을 떠돌던 형우는 영덕 바닷가에서 프리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 이후로 형우는 가슴이 답답할 때면 매번 그 바닷가에 들러 그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리 다이버들을 지켜보고 있던 형우에게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프리 다이빙 강사 진 사장님이 따뜻한 도시락과 묘한 문구가 적힌 명함을 건넵니다. 그 후로 형우는 가족이나 친구를 자살로 잃고 남겨진, 그런데 이제 모두가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차츰 온기를 회복하기 시작하죠. 짧지만 이렇게 결말이 끝난다고 해도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뒤에 아직 많은 페이지가 남아있거든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거짓말, 동생의 진실, 자신의 망각이 빚어낸 과거로 형우는 되돌아갑니다. 형우는 아홉 수의 걸친 자신의 과거 '형우'들을 만나며 그 시절의 하루를 관찰자로써 지켜보고 대체적으로 행복하고 따뜻했던 추억을 마주하죠. 참으로 찬란했던 시절, 그리웠던 얼굴, 후회했던 선택…. 9살의 형우, 19살의 형우, 29살의 형우, 그리고 마침내 39살의 형우까지. 형우의 과거에서 망각의 편린들이 반짝거립니다. 비로소 모든 비극의 전말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형우는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이 가슴 아픈 현실과 고통이 따르는 진실에서 형우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가장 따뜻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듯 닮은 나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팔을 벌려 이구를 안았다. 내 품 안에 이구도, 일구도, 구도 다 들어 있었다. 우리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이 꼭 나이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나들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p.251






 '자살 사별자'를 중심으로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습니다. 또 과도하게 낙관적이지도 않고요. 그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죠. 진 사장님이 형우에게 이런 말을 하잖아요.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속에서 숨 참는 것이 더 쉬운 날이 있다'라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땐 함께 숨을 참는 것도 방법'이라고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힘껏 좌절하고 힘들어서 침잠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로프에 랜야드를 걸고 버디가 함께 하는 프리 다이빙처럼 서로가 곁에 있다고, 그러니 잠시 가라앉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요. 숨을 참고 내뱉는 방법마저도 고통을 상쇄하는 치유의 과정처럼 읽힌다면 너무 과한 감상일까요.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 속에서 숨 참는 게 더 쉬운 날도 있거든요. 좋아요, 깊이 들어가면." p.54 



 영덕 바다, 비강항, 빨간 프라이드 차, 플립플랍, 파핑캔디, 튀어 오르는 물방울 등 복선처럼 형우의 무의식 속에 잠겨있던 감각들이 기억의 빈 공간을 엮으며 진실이 복원되는 과정도 섬세하고 인상적입니다. 고통을 망각 뒤에 숨긴 형우가 비강항을 찾은 까닭이 그런 것이겠죠. 상흔은 결코 숨길 수 없다는 사실. 또, '바다'라는 공간을 다양한 층위에서 감각할 수 있었던 것도 새삼스러운 감상이었습니다. 바다의 심연이 뿜어내는 공포는 망각된 진실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프리 다이빙을 통한 잠수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은 고요한 유영을 감각할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거기에 더해 '프리 다이빙'이라는 인간적 행위는 마치 유예된 애도를 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버디'라는 존재와 '엔젤링'이라는 행위는 너무나 아름다운 연대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인생의 진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프랙털처럼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등산을 할 때, 걸음을 옮기는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인생에 따르는 곡절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말라가의 밤》에서도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이 죄책감, 원망, 그리움, 슬픔, 우울 등에 몸서리치며 바다라는 인생의 심연으로 뛰어들지만 프리 다이빙을 통해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니까요. 고요하고 너른 바닷속에서 거칠 것 없는 자유를 유영하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형우가 망각의 바다로 뛰어들어 진실의 심연을 발견하고 튀어 올라 숨을 터뜨리는 장면이 잊히지 않아요. "회복 호흡!"을 외치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회복 호흡!"

 나는 참았던 숨을 뱉고, 곧장 입을 크게 벌리며 산소를 들이마셨다. 잠시 숨을 머금고 있다가 뱉고, 다시 산소를 들이마셨다. 호흡이 진정된 다음 마스크를 벗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으며 사인을 보냈다.

 "아임 오케이!" p.331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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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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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제나 비밀 혹은 사건의 한 가운데를 거침없이 파고들어가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나의 주체를 두고 골몰히 탐구하며 온몸으로 탐색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박준용, 손고운, 조윤상이 있다. 두 명의 기자와 한 명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의류 수거함 속에 버려지는 '헌 옷'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입지 않게 된 옷을 의류 수거함에 밀어 넣으며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시 제 몫의 쓰임을 다할 것이라는, '재활용'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망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어쭙잖게 예상했던 것보다 현실은 더욱 참혹했다.





 《헌 옷 추적기》는 준비 과정부터 상세하게 그려진다. 수 천만 원에 이르는 취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만 한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한다. 재도전 끝에 비로소 취재가 시작되고 국내 헌 옷의 이동 경로를 최초로 추적하기 위해 해외 여러 보도 사례를 참고하여 갤럭시 스마트 태그 제품과 GPS 추적기를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직접 옷의 솔기를 뜯어내어 장치를 부착하는 과정에는 배우자와 취미로 하던 재봉틀까지 동원됐다.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쓰레기 아저씨' 배우 김석훈, 배우 박진희,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낸 방송인 줄리안, 밴드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까지, 유명인들의 헌 옷을 기부받는 다각도의 노력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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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기를 단 153점의 헌 옷들은 전국 각지의 의류 수거함에 분산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속속 그들의 행선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튀니지, 볼리비아, 페루, 세네갈, 우간다, 나이지리아, 가나, 파키스탄…. 주로 개발도상국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지로 수출되었다. 이렇게 수출된 수십만 톤의 옷들은 과연 재활용이 되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직접 현장에 뛰어든 취재진이 마주한 것은 버려진 옷으로 빚어진 쓰레기 산과 불법적으로 매립되고 소각되고 있는 옷 무더기들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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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매립의 경우 매립시설에서 처리할 때에 견줘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 3배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불법 소각 시에도 혼합 폐플라스틱 등이 타면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 때문에 폐기 과정이 보다 잘 관리되는 국내에서 처리하는 게 개발도상국에서 처리하는 경우보다 탄소 배출이 더 적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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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는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인도의 파니파트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끔찍했다. 중고 의류로 판매되지 못한 어마한 양의 헌 옷들이 불법적으로 소각되면서 내뿜는 유해한 연기와 더불어 헌 옷에서 섬유를 추출하기 위한 표백 공정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 물질에 노동자들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만다.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적절한 보호 조치 없는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약을 먹으며 버틴다. 또 표백 과정에서 발생한 폐수 또한 인근 강에 무단으로 방류되면서 근처 주민들 또한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구더기가 들끓는 매립지를 놀이터 삼아 돌아다니는 어느 노동자의 어린 딸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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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입고 버린 옷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먼 나라의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있었다. p.205, 옷을 사고 버리는 일과 누군가의 아픔, 박준용




 그래서 그는 '북극곰을 살리자'는 식의 기후 위기 캠페인을 비판적으로 반추한다. 동물권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미 무관심 속에 죽어가고 있으므로, 기후 위기를 '북극곰 문제'로 치환하면 선진국들이 마땅히 직시해야 할 불편함, 위기감, 죄책감이 희석된다는 지적이다. p.75, 환상과 죄책감 사이에서, 손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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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RA'나 'H&M'이 주도하는 '패스트패션'까지는 익숙한데 '쉬인'이나 '테무' 같은 중국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를 능가하는 '울트라 패스트패션'으로 흐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즉 저가·저질 의류들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며 버려지는 옷 또한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일까? 무지성으로 옷을 사들이고 무분별하게 옷을 버리는 개인의 죄책감에 호소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이미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선진 국가들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EPR 제도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EPR 이란 생산자와 판매자에게 폐기물의 회수 및 재활용 의무까지 부과하는 제도로, 즉 옷을 판 주체가 그 판매에 따른 사후 처리까지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시스템이 만들어지며 규제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규제를 만들어 기업들이 선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만들게 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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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하게 제도를 확장시키고 발전해 온 주요 선진국과는 다르게 국내에서는 아직 인식조차 미흡한 실정이고 관련 법안들은 상정되었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선 규제 후 시스템'을 취하는 다른 나라의 강력한 국가적 스탠스와는 다르게 한국은 '선 시스템 후 규제'라는 정반대의 안일한 기조를 취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문제는 도덕적 책무감에 머물지 않는다. 수출 경제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 사정을 미루어 볼 때 점점 친환경과 EPR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는 제도적인 압박과 규제라는 현실적이고도 경제적인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불법과 편법에 경계에서 타국에 버려지는 헌 옷들 또한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니 하루빨리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단순한 보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으로 이야기를 잇고, 그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는 것. 그것이 이 기획의 진짜 끝이자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p.261, 옷 너머의 얼굴, 조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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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류 수거함'은 일종의 사용자가 행한 기만이자 배신이었고 동시에 이용자가 취한 무지이자 외면이었다. 심지어 의류 수거함의 초록색마저 마치 '그린 워싱'을 표방하며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처럼 이용자를 조롱하는 것만 같다. 이왕이면 친환경을, 이왕이면 재활용을 선택하던 소소한 실천들은 자주 무기력에 빠져버리고 만다. 별생각 없이 소비했던 행위들이 초래한 '환경 문제'라는 실체를 마주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항상 느슨하게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선택을 고민하자는 마음을 다시 고쳐본다. 새 옷 앞에서 조금 더 길게 망설이기를, 헌 옷 앞에서 한 번 더 깊게 생각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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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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