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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삶이란 것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삶도 죽음도 종착에나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설프게라도 삶이란 것은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결코 모를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죽어버린 존재는 죽음에 대해 말해 줄 수 없으니까요. 죽음 뒤에 남겨져 죽음이라는 실재를 목도하는 사람들만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라가의 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형우, 진 사장님, 재이, 구표, 신이. 이들은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죠. 정확하게는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나를 살아 있게 한 질문이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살고 싶어서가 아닌,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p.28
형우는 10년 전에 어머니와 동생 은우의 동반 자살로 세상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가족의 자살 이후, 형우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트럭커의 삶을 살아갑니다. '살아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네요. 형우는 10년 동안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었거든요. 비극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으면서요. '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라고 말이죠.
인생은 물속처럼 상하좌우 구분이 안 돼 헤맬 때가 있지만, 도로는 정확해서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간 삶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p.63
전국을 떠돌던 형우는 영덕 바닷가에서 프리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 이후로 형우는 가슴이 답답할 때면 매번 그 바닷가에 들러 그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리 다이버들을 지켜보고 있던 형우에게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프리 다이빙 강사 진 사장님이 따뜻한 도시락과 묘한 문구가 적힌 명함을 건넵니다. 그 후로 형우는 가족이나 친구를 자살로 잃고 남겨진, 그런데 이제 모두가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차츰 온기를 회복하기 시작하죠. 짧지만 이렇게 결말이 끝난다고 해도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뒤에 아직 많은 페이지가 남아있거든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거짓말, 동생의 진실, 자신의 망각이 빚어낸 과거로 형우는 되돌아갑니다. 형우는 아홉 수의 걸친 자신의 과거 '형우'들을 만나며 그 시절의 하루를 관찰자로써 지켜보고 대체적으로 행복하고 따뜻했던 추억을 마주하죠. 참으로 찬란했던 시절, 그리웠던 얼굴, 후회했던 선택…. 9살의 형우, 19살의 형우, 29살의 형우, 그리고 마침내 39살의 형우까지. 형우의 과거에서 망각의 편린들이 반짝거립니다. 비로소 모든 비극의 전말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형우는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이 가슴 아픈 현실과 고통이 따르는 진실에서 형우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가장 따뜻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듯 닮은 나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팔을 벌려 이구를 안았다. 내 품 안에 이구도, 일구도, 구도 다 들어 있었다. 우리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이 꼭 나이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나들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p.251

'자살 사별자'를 중심으로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습니다. 또 과도하게 낙관적이지도 않고요. 그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죠. 진 사장님이 형우에게 이런 말을 하잖아요.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속에서 숨 참는 것이 더 쉬운 날이 있다'라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땐 함께 숨을 참는 것도 방법'이라고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힘껏 좌절하고 힘들어서 침잠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로프에 랜야드를 걸고 버디가 함께 하는 프리 다이빙처럼 서로가 곁에 있다고, 그러니 잠시 가라앉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요. 숨을 참고 내뱉는 방법마저도 고통을 상쇄하는 치유의 과정처럼 읽힌다면 너무 과한 감상일까요.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 속에서 숨 참는 게 더 쉬운 날도 있거든요. 좋아요, 깊이 들어가면." p.54
영덕 바다, 비강항, 빨간 프라이드 차, 플립플랍, 파핑캔디, 튀어 오르는 물방울 등 복선처럼 형우의 무의식 속에 잠겨있던 감각들이 기억의 빈 공간을 엮으며 진실이 복원되는 과정도 섬세하고 인상적입니다. 고통을 망각 뒤에 숨긴 형우가 비강항을 찾은 까닭이 그런 것이겠죠. 상흔은 결코 숨길 수 없다는 사실. 또, '바다'라는 공간을 다양한 층위에서 감각할 수 있었던 것도 새삼스러운 감상이었습니다. 바다의 심연이 뿜어내는 공포는 망각된 진실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프리 다이빙을 통한 잠수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은 고요한 유영을 감각할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거기에 더해 '프리 다이빙'이라는 인간적 행위는 마치 유예된 애도를 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버디'라는 존재와 '엔젤링'이라는 행위는 너무나 아름다운 연대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인생의 진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프랙털처럼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등산을 할 때, 걸음을 옮기는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인생에 따르는 곡절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말라가의 밤》에서도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이 죄책감, 원망, 그리움, 슬픔, 우울 등에 몸서리치며 바다라는 인생의 심연으로 뛰어들지만 프리 다이빙을 통해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니까요. 고요하고 너른 바닷속에서 거칠 것 없는 자유를 유영하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형우가 망각의 바다로 뛰어들어 진실의 심연을 발견하고 튀어 올라 숨을 터뜨리는 장면이 잊히지 않아요. "회복 호흡!"을 외치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나는 참았던 숨을 뱉고, 곧장 입을 크게 벌리며 산소를 들이마셨다. 잠시 숨을 머금고 있다가 뱉고, 다시 산소를 들이마셨다. 호흡이 진정된 다음 마스크를 벗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으며 사인을 보냈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