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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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이는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 임금 인상,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참정권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시위에서 여성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외쳤는데 여기서 '빵'은 경제적 평등을 위한 생존권과 노동권을 의미하고 '장미'는 정치적 평등을 위한 인간답게 살 권리와 참정권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로 여성의 날에는 전통적으로 빵과 장미를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빵과 장미 대신에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을 건네받았습니다.





 '페미니즘'하면 어떤 생각과 기분과 느낌이 드시는지요. 미약한 고백이지만 솔직하게 개인적으로는 불온한 긴장감이 가장 먼저 느껴집니다. '페미니즘'을 발음하면 뒤따라오는 그릇된 이미지, 소모적인 논쟁, 서로에 대한 혐오 따위 등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죠. 마치 시한폭탄을 입안에서 굴리는 느낌이랄까요. '입 밖으로 내놓기만 해도 끝내 터지고야 만다'와 같은 불안과 끝내 따라오는 패배감. 물론 이런 감상이 그동안 안티 페미니즘, 남성 역차별 등과 같은 백래시 현상으로 오도된 것임 또한 알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여성을 찬양하거나 여성만을 위한다고 떠드는 일이 아니다. 젠더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소수자와 약자가 딛고 선 땅이 얼마나 척박한지 이해하는 행위에 조금 더 가깝다. 이는 내 사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고정된 틀에 균열을 내고 서서히 스스로를 해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p.125 

 저자는 이런 페미니즘 백래시 현상을 지적하면서 사회 구조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지적합니다. 피해자의 자리와 역할을 자처하며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과 페미니즘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격적으로 비난합니다. 이런 인식은 다시 여성 혐오 정서를 부추기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들은 '왜' 페미니즘을 그토록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비난과 비판을 떠나서 본질적으로 저도 참 궁금한 지점이었는데요, 저자는 이를 오래된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지적하며 풀이합니다.






 가부장적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학습하며 자란 남성들에게 다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질서는 일종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가부장제 기득권으로 기존에 누리던 우월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러나, 특히 젊은 남성들은 딱히 누려본 적 없다고 느끼는 우월적 지위와 잠재적 가해자 취급에 대한 억울한 정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저성장 사회에서 취업난을 결부시키며 점점 더 활발해지는 여성의 사회적 행보와 커지는 목소리를 위협이자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적대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더욱 문제인 것은 점차 소실되어가는 가부장제가 요구하던 남성적 역할을 대안할 마땅한 남성적 모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성의 대안적 삶을 제시하는 책이나 문화, 인물 등이 다양해지는 반면에 남성의 대안적 삶, 가부장제 이후의 새로운 질서나 정서를 제안하는 대안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죠. 문제의 원인은 가부장제의 구조적 모순이 초래한 편향된 남성적 역할에 있는데, 원인의 방향으로 해결의 길을 터야 하는데,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려스러운 시점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남성 역차별의 '착시'를 취재 자료, 논문, 최근 통계와 같은 사회 구조적 지표를 근거로 들며 착실하게 타파합니다. 성별 임금 격차, 유리 천장, 돌봄 노동 및 독박 육아로 인한 저출생 문제, 교제 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의 비대칭성 등은 현재 사회에 여전히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젊은 남성들의 불안과 공포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의 언어로 치환하며 왜곡된 피해자성을 부여하고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적 모략은 반대로 페미니즘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페미니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관점이자, 나의 '이상함'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해석의 틀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제도적 개선이,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자 하는 시도가 어째서 '남성의 몫을 빼앗는 일'이란 말인가. p.6, 프롤로그, <포기할 수 없어서, 같이 살고 싶어서> 

 이런 대립은 결코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성 불평등 구조 또한 여성에게만 유해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유해하다고 저자는 설파합니다. 특히 성찰적인 태도로 페미니즘에서 남성의 역할을 주장하는 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부디 페미니즘이 건강한 공론의 장에서 건설적으로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해야 얻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의 주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말이죠. 페미니즘도 한쪽으로 만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다시 '우리'가 되어야 하겠죠.




 사실 까슬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불편하기도 하고, 답 없이 꼬여만 가는 갈등과 혐오를 활자로 또다시 반복하는 기분이 들것 같았거든요. 읽으면서 그런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럴까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에 많은 답을 찾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낙담과 피로감을 핑계로 한 비겁한 자세를 고쳐 앉을 수 있었던 문장을 골라보았는데요?





 연대는 평소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다. 그건 어쩌면 낯선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환대이자 사랑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쉽게 낙담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다시 연대의 광장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연대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p.278, <연대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 글에서 골라왔습니다. 낯선 이에게 건네는 '가장 큰 환대이자 사랑'이 곧 '연대'라고 말하는 그 마음. 어쩌면 '대 혐오의 시대'라고 조소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거든요. 여성의 날에 건네는 빵과 장미도 결국은 '연대'하자는 근사한 청유인 것처럼 결국은 이 책을 통해 건네고 싶은 말은 연대의 광장으로의 청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성의 날'이 있는 이 달, '연대'에 관해 한 번씩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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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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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양육과 돌봄'이라는 세계는 개인적으로 도통 접점이 없는 세계입니다. 자녀도 없고, 엇비슷하게 조카도 없으니 직접적인 양육 경험도, 그것을 멀리서나마 관찰할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도 없지요. 집 근처에 학교가 있는 터라 등·하교하거나 역시 근처 공원에서 노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스쳐 지나가며 마주하는 것이 접점이라면 접점이랄까요. 그런고로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해의 영역에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가라앉을 걱정이요. 그러나 역시 쓸데없는 기우였고요,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카프카의 도끼'가 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각 가정마저 다음 세대의 인적 자본을 재생산하는 경제 현장이 되면서 결혼과 가족은 자연히 탐욕스러운 제도가 되었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불법과 위법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집착이 탐욕스러운 돌봄을 배태시켰다. p.36, 탐욕스러운 돌봄 

 《탐욕스러운 돌봄》은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양육 과정에서 저자가 경험하여 고민하고 갈등한 사유한 총체에 관한 기록에 더하고 나아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비평하고 대안을 제언합니다. 뉴스에서 종종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고 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 문제, 일부 몰지각한 양육자의 태도, 이에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노 키즈 존'과 같은 혐오의 정서 등과 같은 다양한 현상을 '양육자'라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를 더 확장시켜 구조적인 해부를 시도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붕 뜨는 느낌이 없는 까닭은 저자가 직접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사유이기에 개연성과 설득력이 충분히 확보되기 때문이죠.





 아이와 아이를 둘러싼 안팎의 세계는 '돌봄'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며 왜곡되고 굴절되기도 합니다. 새삼 세상에 이토록 많은 해악의 요소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이런 안팎의 세계와 교류하며 태동하는 불안이 결국 선행 학습, '키즈'가 붙은 각종 체험 활동, 초등 의대반 열풍 등의 '탐욕스러운 돌봄'으로 발현된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불안과 욕망, 공포가 부추기는 '돌봄'을 결코 해갈되지 않는 '갈증'으로 정의하고 돌봄의 영역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시킵니다. 개별 가정의 고립된 돌봄을 '우리'라는 사회 공동체의 영역으로 끌어오며 이로운 균열을 야기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이라 해도 모든 부모는 부모이기 전에 시민이고 개인이다. 자식 또한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고유한 타인이다. 우리는 아이와 좋은 이별을 맞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을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심을 수는 없다.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나'들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돌보는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이 사회를 함께 돌아보면 돌봄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돌봄의 어려움은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는다. p.7, 서문, 혼자 애쓴다고 쉬워지지 않는다 




 아이와 저자의 에피소드에서 파생되는 꼭지들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빗금과 아이의 자존감 문제, 초등 교과서 속 다문화 가정 캐릭터 '샤오메이', 저출생과 과밀학급을 바라보는 신도시 엄마, 여성과 돌봄 노동, 사회적 참사를 아이에게 설명하는 방식, AI를 능란하게 활용하는 미래 세대, 학교에서 폭력과 젠더 문제를 다루는 방식 등…. 홀홀한 한 개인으로써 보다 양육자로써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날카로운 동시에 세심해집니다. 다종다양한 주제로 무람없이 확장하는 사고와 비판적인 성찰과 건설적인 비평은 또 다른 의미에서 무지렁이 독자의 세계에 균열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한, 우리는 세계를 공유한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들과 공유하는 세계를 공동체라 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여기 함께 있음을 굳이 번거롭게 증명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p.80, 안녕, 샤오메이 

 읽다 보면 돌봄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같은 사회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달까요. 모두의 돌봄이란 결국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를 바탕으로 정서적인 연대, 나아가 사회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포괄적인 영역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아이 혹은 어린이'에서 '미래의 민주시민 동료'로써, 한 명의 온전한 주체로 인식을 전환하니 낯선 세계와 접점이 없다고 느꼈던, 존재를 향한 응시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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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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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양조위의 영화를 직접적으로 보고 자란 세대는 아니지만 후일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마주한 얼굴만은 익숙한 사이랄까. 어느 정도의 인지 능력이 생긴 뒤에 배우 양조위를 다시 만나게 된 영화는 <색, 계>였다. 영화는 충격적인 정사신으로 세간에 회자되었고 나에게도 그렇게 기억되었지만 후에 접한 여러 평론과 해석, 후일담 등을 통해 비로소 그 영화가 함의하고 있는 진정을 알게 되었다. 최근 세대에게 다시 끔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 호명되어 리마스터링 된 작품들을 돌려보며 마주한 양조위의 몸짓, 눈빛, 고뇌 등이 빚어내는 특유의 무드.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는 그런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양조위는 그냥 존재만으로 서사와 정서를 만든다.

p.8, 프롤로그, 빛과 그림자 속의 양조위





 무려, 40년이라는 배우 양조위의 연기 인생을 집대성한 세계 최초의 평전이라고 하는데 저자의 이름을 보니 어딘가 친숙하다. 예전에 즐겨보던 영화를 다루던 예능인 <방구석 1열>에 패널이었던 주성철 영화 기자였던 것이다. 당시 변영주 감독과 나란히 앉아서 주고받던 티키타카가 참 재미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왕가위 감독, 배우 장국영 특집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충만한 덕후력이 인상 깊었던 터라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의 저자가 그라는 점은 '마침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종의 '성공한 덕후, 성덕'의 정점에 이르는 타당한 개연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양조위의 TVB 드라마 데뷔 시절부터 홍콩 영화 생태계의 흥망성쇠에 따른 배우 양조위의 인생 굴곡을 섬세하게 짚어간다. 주윤발, 유덕화, 주성치, 장만옥, 유가령 등과 같이 한 시대를 같이 호흡했던 당대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홍콩 영화 전성시대를 만들어나갔다. 양조위와 각 배우들과의 관계성과 이에서 비롯한 영향, 당대 주류였던 배우상과 다른 결을 지녔던 양조위의 연기 행보, 배우가 아닌 가수로서의 양조위, 허우샤오시엔·오우삼·왕가위 등 거장들과의 케미와 의의 등 그야말로 양조위의, 양조위를, 양조위로 집대성한 거대한 양조위 유니버스를 무람없이 유영할 수 있다.

 그런데 주윤발, 유덕화 등 당대 다른 남성 배우들과 달리 양조위는 '영웅'을 연기한 적이 없다. 영웅이 되고자 한 적도 없어, 어쩌면 반(反)영웅보다 탈(脫)영웅에 가깝다. (…) 양조위는 저 멀리 우러러보는 원시화된 스타가 아니라 언제나 곁에 머물러 있는 근시화된 스타다. p.113 







 특히 배우 장국영과 양조위, 왕가위 감독의 관계성을 톺아보며 깊게 탐구하는 파트는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가 장국영에서 양조위로 옮겨지며 작품에 담긴 의의를 표현하는 방식도 그에 따라 변화한다. 읽다 보면 양조위가 지닌 그 특유의 정서와 감성, 몸짓과 눈빛, 침잠과 침묵이 떠오른다. 영화에서 그를 보고 난 후에 짙게 남은 잔상의 실체를, 비단 잘생긴 외모만이 아닌 본질적인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저자가 섬세하게 톺아온 활자로 독자는 배우 양조위를 다시 직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은 말과 말 사이, 몸짓과 몸짓 사이에 숨 쉴 공간이 넓다. 좁은 골목을 통과하는 것처럼 서두르지 않고 언제나 햇살 가득한 정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여유롭다. 작품에서 발광하고 공명하는 순간에도, 그 우아한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것이 양조위가 감정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p.10, 프롤로그, 빛과 그림자 속의 양조위 






 <중경상림>이 시한부 인생을 살던 당시 홍콩의 은유였듯, <화양연화> 역시 과거를 빌려 지금의 홍콩을 비춘다. 유년의 기억을 경유한 따뜻한 노스탤지어에 머물기에 1960년대의 홍콩은 너무나도 입체적이었다. 그것은 중국 본토, 나아가 아시아 전체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p.263 

 특히 <비정성시>, <아비정전>,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등의 익히 잘 알려진 작품을 통해 당대의 홍콩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정서의 맥을 짚어 보는 지점은 영화가 지닌 심미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97년도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한 홍콩인의 정서와 부유하는 정체성에 대한 디아스포라적인 시선을 제시하며 서사의 깊이를 확장시킨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체념, 불안, 고독, 단절의 정서는 배우 양조위를 투과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고 이는 곧 양조위라는 배우가 하나의 장르가 된다.


 중요한 것은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더 간절하게 들려주려 하는 <해피 투게더>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깊게 보여주려 하는 <화양연화>의 결정적 순간을 양조위라는 존재가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275 






 그동안 '보았다'라고 생각했던 영화들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진정 보았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어버렸다. 그러므로 결국 다시 보게 될 것이고,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보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배우 양조위의 평전이지만 그를 구심점으로 생각보다 더 너른 범위에서 홍콩과 영화와 감독과 배우를 다루고 있어서 시네필이 아니어도 전반적으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더불어 첨부하는 영상은 직접 홍콩에 가서 영화에 나온 장소를 돌아보는 여행으로 책에서 언급한 영화의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저자 주성철의 뻐렁치는 덕후력과 홍콩에서도 변함없는 변영주 감독과의 케미를 확인할 수 있으니 편안하게 보기를 추천! (재밌음!)




https://youtu.be/l1tNEl46Imw

ⓒ [돌아온 방구석 1열], 교양 Voyage,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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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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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서도 어제와 오늘, 뉴스는 미국 관세 문제로 시끄럽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 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했는데 이에 트럼프는 즉시 불복하여 관세를 또 올렸다고 한다. 어디 관세뿐이겠는가? 그린란드 강탈에 대한 야욕, 베네수엘라 침공 및 마두로 대통령 납치, 미국 이민 세관 단속국 ICE 총격 사건 등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행은 계속해서 그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분노에 더해 이제는 피로감이 함께 몰려온다. 그러나 피로와 체념은 잠시 제쳐두고 '왜?'라는 물음표를 《야만 시대의 귀환》에 걸어두고 천천히 읽어 본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즉, 지금 트럼프 지지자나 그 측근을 위시한 상당수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세계 패권이란 그 효능, 즉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에 비해 낭비성이 지나쳐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p.291, 제5장 |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

 저자는 미국의 이런 기행적인 퇴보는 역사적인 맥락에서는 놀랍게도,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세계 패권 역사의 흥망성쇠를 굵게 훑어보면 패권의 중심이었던, 여전히 몰락 중인 미국은 그 전철을 착실하게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를 거치며 제조업 강성, 세계 대전을 거치며 종전 세계 질서 확립 주도,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한 달러 기축통화 체제, 냉전 시대 반공 이데올로기로 사상 장악 등으로 미국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체제)'를 이룩하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아는 비교적 최근까지, 그러니까 트럼프 전의 미국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 자본주의에 치중하여 제조업은 쇠퇴하고 실물 경제의 통제력을 상실했다. 제조업이 공동화되며 그 자리에 저임금 서비스직이 대체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중산층은 붕괴되었다. 이는 또다시 소비력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중시키며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부의 양극화, 경제적 소외를 느낀 백인 노동자의 분노와 불안이 트럼프 정권을 태동시켰으며 알다시피 상호 관세와 같은 극단적 보호무역을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이 첨단 기술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오고 있으니 미국은 스러져가는 패권국의 체통을 버리고 힘으로 통제하려는, 마치 과거 제국주의와 같은, 야만의 시대로 뛰어든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제 그 어떤 이념도 아닌 그저 이윤 차원에서 운영되는, 근거리의 국가·지역을 우선적 대상으로 하는, 과거의 간접 지배나 동맹보다 직접적인 합병을 더 선호합니다. 과거에 세계 경찰을 자임해왔던 나라는 이제 체면을 차릴 것도 없이 그저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여러 조폭 조직의 하나로 그 위상을 재정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p.148, 제3장 | 트럼프는 왜 이럴까, 보편 시대의 종말

 '국가의 자살'이라는 강렬한 표현이 등장하는 3장에서 '트럼프는 왜 이럴까'라는 제목 아래 '트럼프'라는 현상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트럼프라는 문제적 인물의 등장과 괴랄한 기행에 세계의 대중은 갑작스러운 당혹감을 느낄 테지만 사실 미국은 오바마와 바이든의 시기부터 꾸준히 비슷한 맥락의 정책적 스탠스를 유지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트럼프가 지닌 극단성과 서서히 몰락해 온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위기가 한데 뒤섞이며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옐친이나 고르바초프를 트럼프와 비교하여 이데올로기 상실,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의 훼손 등을 예시로 들며 '제국의 말로'를 짚어내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4장에서 이스라엘을 다루며 짚는 미국의 가치 위선, 군사적 야만성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지경.




 이익에 따라 열강마다 포지션을 계속 바꾸어 나갑니다. 그 어느 열강에 대해서도 착각하지 말고 일관되게 지구(기후)의 관점, 그리고 모든 나라들의 모든 약자들의 관점, 탈 자본주의적 관점을 간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109, 2장 | 미국은 왜 그럴까, 적대적 공생의 역사

 이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다극 체제로의 과도기를 지나는 이 시점, 한국은 어떤 기조와 대외 정책을 다져야 할까. 저자 박노자는 기존의 미국과의 관계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더 이상 동맹과 우호의 관계가 아닌 지극히 이윤의 득실을 따지는 비즈니스 관계가 된 이상, 까다로운 고객 혹은 파트너가 될 것을 주문한다. 결국 미국과 혈맹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중립 노선을 취해야 하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다자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여 외교 무대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 러·우 전쟁이나 이·팔 전쟁처럼 대리전에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반전反戰 평화주의를 견지할 것을 제언한다.




 (…) 관과 자본이 관방주의 시대로 퇴행하고 싶어도 거리의 민은 거기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에 나선 것이죠. 그런 가두 행동들이야말로 암흑의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p.348, 나가는 말, [관리자 국가 시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역사적인 흐름을 통해 거시적인 맥락에서 살펴본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포스트 아메리카'를 예견해 보는 시간. '위기는 기회'라지만 당장에 맞닥뜨린 지의 현실은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의 저항, 민의 행렬'을 말하는 희망은 근간에 한국 사회가 겪어내고 극복 중인 일련의 정치적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모두 세계 시민으로서의 시각을 견지하며 그런 맥락에서 미약하게나마 일련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 고견을 청취해 보려는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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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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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록달록하고 발랄한 일러스트, '청소년을 위해 쓴 첫 기후 픽션'을 표방하고 있지만 문외한 어른이 읽기에도 매우 적절한 기후 재난 'SF 논픽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의 전체적인 컨셉은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소속의 홈스와 왓슨이 제보를 받고 사실 관계를 파악하러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 행성인 지구를 돌아다닌다. 사건의 실체는 인간이 아닌 북극곰의 입으로, 동양하루살이의 입으로, 비둘기의 입으로, 닭의 입으로 증언된다.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기후 문제가 야기하고 있는, 야기할 미래를 진단해 보는 것이다.




 치킨 해방 전선, 북극곰 다이빙 워크숍, 기후와 프로야구 홈런 타율의 상관관계, 가라앉는 투발루 섬에 대한 진실, 그레타 툰베리의 배신, 인류 멸종 박람회 등 여러 챕터의 제목을 간추린 키워드만 보아도 '엥? 뭔데, 뭔데?'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도권 교육에서 기껏 배운 것이라고는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 빙하가 녹으며 이에 따라 해수면이 상승하여 가라앉는 섬나라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몹시 단편적이고 매우 추상적인 내용이어서 그 당시에 멈춰버린 낡은 위기 인식 수준을 현실의 단계로 끌어올린다.

 "왠지 기후와 환경에 좋으면 동물에게도 좋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기후 변화 대응과 동물 복지의 역설이군요." p.25 

 특히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흥미로웠는데 항상 '온난화'와 '북극'이 마치 세트처럼 거론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온난화로 녹아내린 북극의 빙하가 바닷물의 염분 농도를 낮추어 밀도 차에 의한 '펌프' 역할이 붕괴되며 이로 인해 지구 기온의 평형 유지가 깨지고, 이것이 다시 여러 기후 문제를 야기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분별없이 떠들어대는 기후 문제에 대해 '대체 왜?'라는 생각이 한 번쯤 들었다면 그 질문에 대한 진실한 해답을 비로소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부에서 다루는 '기후 위기의 정치학, 재난에 이득을 취하는 세력은 누구인가?'에서는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기후 위기를 다룬다.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공포를 볼모로 자사의 상품을 어떻게 세일링 하는지, 사실과 진실 사이에 교묘한 틈을 비집고 틀어앉아 '그린 워싱'을 표방하며 소비자를 어떻게 기만하는지…. 가장 상징적인 예시는 '팔레필리 협정'을 통해 2050년에 가라앉을 것이라는 투발루 섬의 기후 난민을 수용한다는 호주를 들 수 있겠다. 제1세계 국가들이 '기후 위기'를 이용해 어떻게 타국의 주권에 교묘하게 간섭해 패권 경쟁에서 이권을 찬탈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제1세계 국민들의 편견이야. 기후 변화는 스펙터클 영화가 아니야. 조금씩 스며들어 절망을 키우지. 기후 변화가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 사회경제적 삶을 느리게 투과하면서 고통을 배가하고 절망을 일상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재난에 잠기게 해." p.152 

 실제 투발루 섬의 기후 난민들의 타국에서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고 제1세계국의 이런 보기 그럴듯한 시혜적인 정책은 그들이 외면하고 있는 탄소 저감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행태는 기후 위기가 도래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또 다른 형태의 신제국주의적 면모를 드러낸다. 참, 인간이란 절망 속에서도 부지런히 악행을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기후 위기에 대한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사실만을 취사선택하여 오로지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토지 개발이나 정부 지원금을 노리기도 한다.

 "나는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거라고! 그리고 줍깅이나 텀블러 쓰기보다 더 중요한 건 자본주의 체제와 정부와 기업 정책을 바꾸는 거야.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건 자신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신자유주의의 술수라고." p.167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느꼈던 것은 '비인간의 권리·윤리'에 관한 인문학적인 접근이었다. 에필로그에서 다루는 두 가지 다른 미래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일어난 현상, 즉 기후 위기에 대한 수습과 대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인간과 비인간 동물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 수준의 변화라는 사실. 종을 떠난 기후 윤리, 기후 정의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제고가 반드시 함께 가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건 전면적인 화해나 복구가 아니다. 나는 부분적인 회복 그리고 함께 잘 지내기를 위한 평범한 가능성들에 온 마음을 쓴다." (도너 해러웨이) p.316 




 '어른들을 위한 머리말'을 읽어보면 저자가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사'를 부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토록 마음 쓰는 일에 또 빚을 지고 만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여 다소 건조하고 딱딱할 수 있는 '기후 위기'라는 주제가 말랑하고 재밌게, 무엇보다 또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조각난 사실에 가려진 실체와 진실을 정확히 톺아보고 정치적인 셈법이 더해지는 과정에 더하여 기후 윤리와 정의의 측면까지, 많은 내용을 아우르면서도 알차다. 왜곡된 빗장을 열어젖힌 느낌이랄까. 작은 인간, 큰 인간, 비인간이 연대하는 세계로.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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