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감정
성해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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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서울'에 대한 지리적 감각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썩 친숙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스무 살이 되어서 서울 외곽 지역으로 통학을 하면서 서울에 입성 아닌 입성을 하게 되었는데 이마저도 지독했던 통학의 여정 덕분에 그리 설레지 않았고 오히려 환멸만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 정주하며 서울과 본격적으로 부대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비교적 근교에 있는 나름 대도시에 살아서인지, 서울에 대한 단상은 그저 미친 집값을 자랑하며 기형적으로 부풀어버린 욕망처럼 납작하게 읽힐 뿐이었다. 나의 《서울 밖 감정》은 이럴진대, 다른 이들은 과연 어떨까.





 성해나, 이기호, 김현, 현호정, 임선우, 김화진. 《서울 밖 감정》은 여섯 작가가 '서울 밖'에서 들려주는 '서울'에 관한 여섯 가지 짧은 단상들을 모았다. 서울에 살며, 서울에 살지 않으며 느꼈던 복잡하고 다단하며, 때로는 양가적이기도 한 감정들을 각자의 개성적인 시선과 고유한 정서로 다채롭게 풀어낸다. 어떤 이는 서울의 인간적인 고독과 소외를 묘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문화적 정서에 대한 동경을 그리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현실과 이상을 타협하며 얻거나 잃은 정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온갖 욕망들이 빚어내는 서울이라는 공간, 그 공간을 품고 있는 여러 가지 단상들은 그렇기에 더욱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서울에는 살買 수 있는 집이 없는데, 이곳에는 살居 수 없는 집이 너무 많다. p.26,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 성해나 


 특히 성해나 작가의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를 읽으면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적극적으로 탑승 의지를 표출해야 하는, 암묵적으로 승인된 지역적 합의에 관한 에피소드는 낯설지 않은 일상이라 살풋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러한 연상에서 파생되는 저자의 지역적 인식도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특별히 인상적으로 읽힌다. 또 현호정 작가의 <새소리>를 읽으면서 사람으로 넘실대는 대도시 서울에서 '적막'이라는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적인 소외와 고독을 그리면서도 일면 자유라는 양면을 다루는 감각적인 묘사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납작하게만 보였던 서울이, 작가들의 시선을 빌리고서야 조금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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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우리는 여기서 진짜 살고 있는 게 아니어야 했다. 우리의 삶은 여기 진정으로 속한 게 아니었다. 그래야 했다. 당신이 정말로 여기에, 당신도 정말로 여기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게 당신에게 실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p.91, <새소리>, 현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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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서울'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 없는 개인으로써 다소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들의 다채로운 단상을 거치면서 '서울'을 하나의 경험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며 종장에 가서는 조금 다른 심상을 가지게 되었다. 서울이 지니는 특이성은 차치하고, 누구나 어떤 지역이나 혹은 공간에 관한 일종의 노스탤지어 혹은 고유한 경험이나 정서를 지니기 마련이니 그런 측면에서 나만의 '서울'을 잠시 떠올려보기도 한다.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정서, 그 공간 안에서만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감각 등이 내면에 켜켜이 쌓여가며 맺어지는 특유한 관계를 하나, 하나의 결을 세어가며 읽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서울을 톺아보며, 나의 서울을 다시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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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사회 - 이상적 이미지를 넘어 자기-세계를 만드는 15가지 방법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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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리즘으로 도배된, 그것이 결국 그것인 콘텐츠를 무지성으로 훑어내린다. 반복되는 피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그 유독한 중독성에 정신이 아득하게 마비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크롤을 쉬이 멈추지 못한다. 이런 SNS에서 파생되는 무한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책, 다큐멘터리, 영상 등과 같은 콘텐츠도 그에 따라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지만 어쩐지 이것마저도 SNS 알고리즘 파고에서 느끼는 피상적인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당장 내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피부를 스칠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하며 《환상사회》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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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과 실제의 거리가 너무 벌어져서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이상의 요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과 혐오, 냉소가 된다. p.31 





 SNS이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다양한 해악이야 더 보태지 않아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지만 《환상사회》의 저자는 이를 저자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SNS나 혹은 미디어가 제시하는 왜곡된 이상이라는 '이미지'가 현실과 조우하며 빚어내는 괴리 속에서 발생하는 우울과 불안, 강박과 무기력을 지적하며 현실과 이상이 전도되어 끝없는 허상(이미지)만을 쫓게 되는 현시대의 인류를 '호모 판타즈마'로 정의한다. 이런 현상에서 파생되는 부정적인 정서를 '항시적-초조함'으로 명명하고 이를 시대적 감각으로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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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호모 판타즈마의 정서는 표류하는 듯한 느낌, 나만 버려진 것 같은 소외감, 서둘러 그 무언가를 쫓아가야 할 것 같은 초조함,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이 그리 단단하지 않고 허깨비 속에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다. 이러한 정서를 한마디로 '항시적-초조함'이라 말할 수 있다. p.52 





 나-되기의 모순과 항시적-초조함 속에서 탈진해가는 현실, 나아가 '우울증적 쾌락'과 '반성적 무기력'의 냉소 가운데서 지도를 잃은 시대의 삶에 관해 나름대로 돌파구를 제시해 보게 될 것이다.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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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서는 이렇듯 현상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며 해석을 더하고 2부에서는 15가지의 방법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상이라는 '이미지'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자신의 결핍을 직시하고 그 결핍이 지닌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방법론은 '자기-세계'의 구축이라는 큰 맥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되기'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현재와 현실을 기민하게 감각하기를 제언한다.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이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삶의 다면성과 다양한 인생의 경로를 '인생은 복수선'이라는 경험에 빗대어 일러준다. 또 이미지 속의 타인(유령)이 아닌 현실의 실존하는 타인과의 심도 있는 관계를 강조하기도 한다.





 인문학적으로 현상을 해석하면서도 여러 가지 실천적인 방법을 다루는 것이 여타 비슷한 부류의 책과는 다른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법론을 제시하는 2부에서는 저자의 자녀에게도 들려줄 바람으로 그 내용을 고심했다고 한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거나 해결 방안을 모색할 때 거시적인 구조론적 접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별론에 두고 당장의 현실을 살아가는 한 개인에게 초점을 둔 실재적인 방법들이 당장의 나에게는 더 유용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지사.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이미지의 세계를 부유하던 유령에서 현실이라는 대지 위에 발을 딛는 감각을 어렴풋이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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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액션 1 - 될지 안 될지 모르고 덤볐던 영화감독 31인의 분투 논픽션 ㅣ 나의 첫 번째 액션 1
주성철 외 지음, 한국영화감독조합 외 기획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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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묵직한 두 권의 책을 받아들며 분량에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느긋하게 읽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감독 31인의 필모그래피를 슥슥 훑어보며 본 것과 자주 본 것, 언젠가 보려고 했던 것을 가늠해 보며 아는 감독과 모르는 감독의 이름도 속으로 헤아려본다. 씨네필은 아니지만 '비하인드'와 같은 작품 외적인 이야기는 또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콘텐츠는 기막히게 찾아보곤 하는데 《나의 첫 번째 액션》도 그런 맥락에서 '영화감독들의 고군분투 첫 데뷔'를 다루었으니 과연 흥미롭게 읽힌다. 새로이 궁금해지거나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자꾸 생겨서 연휴 내내 책 읽다가 영화 보다가를 반복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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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호하게 나의 어리광을 내가 받아주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 무슨 도움 되는 일을 했다고 나의 불평을 받아주나. p.128, 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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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만 가득했던 거장들의 취준생 시절', 감독들의 '처절하고 찬란한 청춘이라는 장르'라는 카피가 잘 설명해 주듯이 《나의 첫 번째 액션》은 각 감독들의 첫 데뷔까지의 청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비단 같은 분야의 꿈을 가진 청춘들뿐만 아니라 방황하고 고군분투하는 시대의 모든 청춘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읽힌다. 그들을 설명하기에 '열정'이라는 단어는 너무 뜨겁기만 하고 '성실'이라는 단어 또한 너무 느긋하기만 하다. 자꾸만 엎어지는 그들의 시나리오처럼 그들의 인생 또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지만 끊임없이 그들을 추동하는 것은 '영화'라는, 감히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여전히 생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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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거장으로 칭송받는 감독도 혹한의 시절, 잘나가는 다른 이를 시기하며 그런 에너지로 버텼다는 고백 앞에서는 사람은 결국 비슷한 구석을 품고 사는구나 싶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가늠하는 감독 앞에서는 스스로를 반추하며 겸허해지기도 했다. 확신이 없는 차가운 미래를 바라보며 냉정한 현실을 살아내고 버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던, 그 뜨거움에 스스로 종종 데이기도 하면서 단단해지는 시간들을 또 다른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영화감독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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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첫 번째 슬레이트를 치던 순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새끼손가락이 끼어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너는 무슨 슬레이트 치는 것도 NG를 내냐."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 p.163,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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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둔하고 무신경한 것이 치밀함을 능가할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뭔가 명쾌하지 않은 얘기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건 인생이건 적당히 모호한 어떤 것이 남아 있을 때 매력적인 것 아닌가. p.59,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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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여름에 유난히 취약하고 뜨거운 음식 앞에서 겸손해지며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는 옅은 알레르기까지 동반하는, 도통 '뜨거운 것'과는 상극인 성정을 지닌 나에게 그들의 '뜨거운' 열정 혹은 열망은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 마음, 그러니까 무언가를 지독히도 원하고 기필코 이뤄내고 싶다는 그 뜨거운 마음을 바탕으로 길게는 십수 년을 헌신하며 기어코 버텨내는 동력에 대한, 이런 나의 얄궂은 호기심에 《나의 첫 번째 액션》은 애정 어린 일갈을, 잔잔한 위로를, 혹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슥 보여주며 현답을 갈음한다. 나에게는 하나의 답이 되었던 31가지의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는 또 의미를 지니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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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전쟁 -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허상이 가린 두 개의 내전
박홍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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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공교롭게도 《은폐된 전쟁》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채로, 추석 연휴에 라이브로 중계되는 미·중 정상회담을 뉴스로 보게 되었다. 중국과의 기술·무역·관세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미국이 쥐고 있던 세계 패권이 스러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양국의 만남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관리된 휴전'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이번 회담을 두고 실리적 성과를 앞세운 미국과 G2라는 대등한 정치적 위상을 선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미·중 패권 경쟁의 허상'을 다루는 부제에 흘깃 눈길이 가며 슥 흥미가 이는 것은 과연 당연한 전개였던 것이다.






 저자는 먼저 미중 관계 속에서 발견한 '이상한 장면들'을 예시로 들어주는데 그 장면들은 양국이 서로를 대하는 말과 행동이 서로 상충하고 모순된 행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단순히 '국가 대 국가'라는, 국가를 하나의 단일체로 뭉뚱그려 보는 국가 중심적 시각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권력'을 중심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언한다. 이러한 통치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을 통해 여러 장에 걸쳐 과거에 양국이 내린 정치외교적 결단과 변모해온 국제 관계 양상을 통치 권력을 중심으로 대내외적인 사건을 세세하게 톺아보며 해석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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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 충돌은 미중 양국에 자해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핵 억지력을 보유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만약 향후 미중 대립이 격화된다면, 그것은 승자 독식과 같은 군사 충돌 방식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의 대립이며, 패자도 일정한 이익을 가져가는 비영합적 특성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p.49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국가 대 국가의 명운을 두고 싸우는 거국적인 패권 전쟁으로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다. 그 실상은 '국가'라는 탈을 쓴 '권력'이라는 존재가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기와 갈등, 이를테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 혹은 정치적 입지, 사회적 분열, 경제적 위기 등을 외부로 환기시키기 위해 대외적으로 연출된 전략적인 대립에 가깝다는 것이다. 양국은 대외적으로 서로 관세와 영토 분쟁을 들먹이며 파국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두 나라 모두 견고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결코 파멸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오히려 이러한 갈등을 대내적 결집 수단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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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는 비밀스러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평화 아래서 수행되고 있는 전쟁을 해석해야 한다. 평화 그 자체는 암호화된 전쟁. 우리는 서로 전쟁 상태에 있다." (푸코) p.59 







 향후 한국이 적절한 외교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이처럼 외교가 국내 정치의 '인질'이 되는 상황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외교를 정치 세력 간 진영 논리의 소산이 아니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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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 있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 중심의 국제 정세에 관한 책을 읽거나 관련한 시사 관련 뉴스나 콘텐츠를 종종 접하고는 하는데 《은폐된 전쟁》은 그보다 더 디테일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권력'의 구조, 습성, 생태 등과 같은 관점에서 왜곡된 패권의 측면을 입체적으로 파헤치는 점이 가장 큰 특장점. 일면 냉정하게 짜인 정치외교적 셈법 속에 '은폐된 전쟁'이라는 이면을 바라보며 여지없이 한국의 태세가 걱정되기도 한다. 넌더리가 나는 구태의연한 진영 논리에서 탈피하여 기민하게 국익과 실리를 챙기는 외교 전략이 더욱 갈급해지는 시대, 일독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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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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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아직도 한낮의 햇볕은 따갑기 그지없지만 서늘한 바람이 살랑거리기 시작하는 가을, 여름 내내 가열차게 읽어제꼈던 호러 소설에 대한 감흥이 서서히 식어가고 스산해진 품 속에 묵직한 책 한 권쯤 품고 싶은 계절이 드디어 도래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가을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지 않는 노래》가 일찍이 품 안에 들어왔다. 늦은 밤, 열어 놓은 창가를 통해 불어오는 소슬바람을 빌어 읽어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도 남은 여운이 바람의 꼬리를 잡고 길게 늘어지는 기분이다. 마치 꽃씨를 아주 멀리 불어 보내고 싶은 기분이랄까….







 《끝나지 않는 노래》는 약 100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사 속의 여성 3대의 삶을 그려낸다. 두자, 수선과 봉선, 그리고 은하까지. 1930년대 두자의 삶에서 시작된 질곡의 역사는 딸과 그 딸의 딸의 인생까지 모양과 성질을 재주껏 변주하며 따라흐른다. 두자의 생애에서 수선과 봉선의 생애로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과 그 사이에 짧게 삽입되어 있는 은하의 현재의 흐름이 교차한다. 이를 통해 여성 3대를 통과하며 묘하게 중첩되고 있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확실하게 공유하고 있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공통된 정서가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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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씨처럼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꿈을 꿨다.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딸도 아니고 수선이란 이름도 없이, 몸속에 심장이나 내장이나 똥 대신 고운 봄바람만 가득 차서, 가고자 하는 곳도 가야만 하는 곳도 없이, 되는대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꿈. p.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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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한국 근·현대사가 내포하는 시대적 고통을 대변하기 위한 인물이 아닌, 개인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해나가는 부분이 나에게는 몰입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한낱 시대적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존재감을 지니도록 사실감 있게 그려지는데, 한 개인이 오롯이 겪어내야 했던 운명의 파고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 정서를 세밀하면서도 자못 담담하게 그려낸다. 숙명적인 비애가 삶을 옥죄는 멍에처럼 세대를 거듭하며 계승되고, 딸은 어머니가,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지었던 멍에의 무게를 그렇게 조금씩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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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가 우리 나이가 되면. 

 봉선이 아기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좀 다를까. 

 뭐가. 

 그냥, 사는 게.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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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묵직한 여운을 곱씹을 수 있었던 책을 만났다. 말미에 박혜진 평론가의 글이나 15년의 간격을 둔 작가의 말과 부록인 '터닝북'에 담긴 최진영 작가와 작품에 세세한 내용들이 《끝나지 않는 노래》가 지닌 여러 가지 의의를 톺아보게 도와준다. 이면의 깊은 해석도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담담하면서도 인물이 내면의 정서를 읊조리는 장면들, 이를테면 사랑과 욕망, 비애 등을 묘사하는 장면들에서 묘사되는 문장들에 잠시 묶여 있기도 해서 행간의 표리, 모두가 감히 좋았다고밖에…. 쉽사리 가시지 않는 여운에 기대어 '끝나지 않는 노래'가 언젠가는 끝나길 바라며, 흩날리는 꽃씨에 힘껏 숨을 보태 불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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