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황'하면 근간에 화제가 되었던 <콘클라베>라는 영화와 책이 떠오르시겠죠. 하지만 저는 '콘클라베'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댄 브라운의 원작 소설, 로버트 랭던 시리즈 중에 바티칸 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가 먼저 떠오릅니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가운데 로버트 랭던이 로마 곳곳을 숨 가쁘게 돌아다니며 암호와 사건의 진실을 긴박하게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지요. 바로 이 영화 초반에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과정이 나오거든요. 굉장히 낯설고 비밀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잔뜩 풍겨서 호기심을 자극했던 터라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따로 찾아보기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는 추기경들의 모습 ⓒ 영화 <천사와 악마>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후,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인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가 선출되었죠.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서는 이러한 콘클라베의 과정을 따라갑니다. 국제 정세와 맞물린 전반적인 교황청의 흐름과 현재 상황, 그리고 레오 14세의 이력과 그의 비전 등을 톺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치고 제목이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요, 이 말은 레오 14세가 2025년 5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즉위 미사 강론 중에 한 말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 흩뿌려진 증오와 폭력, 편견에 대항하여 선포한 말이라고 합니다.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the hour for love!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입니다!





 본격적으로 레오 14세를 탐구하기 전에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살펴봅니다. 세속의 잣대로는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데요, 그가 행한 업적들이 그렇습니다. 가톨릭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배척하고, 바티칸 은행의 부패 척결을 위해 회계 장부를 공개하며, 관료주의적이었던 교황청의 조직을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또 난민, 이주민, 빈자들과 같이 낮은 자리, 소외된 이들을 위한 행보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외된 비유럽권 지역의 추기경들을 대거 임명하기도 하였죠. 그래서 이번 콘클라베는 '역사상 가장 다양한 국적의 젊은 추기경들'이라는 의의를 가지게 되었고요.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 중 80퍼센트는 콘클라베 참석이 처음이었다. 135명의 추기경 가운데 133명이 로마에 도착해 참여하게 됐으며,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콘클라베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들의 추기경을 발탁함으로써 추기경단을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추기경이 서임되어온 밀라노, 파리,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들은 배제됐고, 남수단, 브루나이, 파푸아뉴기니, 통가처럼 이전에 추기경이 탄생하지 않았던 새 지역의 인물들이 발탁됐다. p.94




 12년이 지난 지금, 그가 이룬 가장 위대한 개혁은 교회에 대한 세상의 인식 변화, 그리고 권력 중심의 교회에서 사목적 돌봄 중심의 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일 것이다. p.69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한 업적들을 보면 참 훌륭하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어디서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득권이 있는 법. 가톨릭 내 기득권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LGBTQ+를 향한 포용적인 태도, 교황청 내 여성의 지위 향상,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에 강한 비판 등은 내부에서도 굉장히 논쟁적인 사안으로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내부적으로 분열을 야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된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가톨릭은 다시 전통주의적인 가치관을 회복하려 할까요?





 콘클라베 과정을 뉴스로 접하면서 저도 궁금했습니다. 특히 레오 14세가 어떤 옷을 입고 등장할지가 궁금했거든요.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빨간 비단 망토인 모제타를 착용하지 않고 하얀 수행복과 낡은 검은 구두를 고수하며 자신의 신념인 겸손과 검소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었거든요.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도 부유했지만 모든 재산을 버리고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고요. 아니 그런데 이와 반대로 레오 14세는 붉은 모제타와 화려한 장신구를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제 가톨릭이 전통으로 회귀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다분히 반대 노선을 탈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서 그려지는 레오 14세의 모습이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더니, 레오 14세는 어릴 적부터 단연 돋보이는 신앙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신앙의 길로 들어섭니다. 미국 태생이긴 하나 그의 주요한 사역은 주로 남미 페루 치클라요 빈민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교황에 선출될 때 해당 지역에서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니 존경받는 사제였음은 분명하죠. 이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을 역임하며 바티칸의 핵심 요직인 주교부 장관까지 역임하게 됩니다. 비로소 바티칸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도로 굉장히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쓴소리를 건넨 적도 있다던 레오 14세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히려 곁에 두었을 만큼 신임했다는 거죠.





 사실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적인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니까요. '시노드'는 교회 쇄신을 위해 민주적 소통을 중요시하던 제도로 성직자 중심에서 벗어나 평신도와 여성의 목소리까지 담고자 노력했던 제도의 일환이었거든요. 또 레오 14세는 남미 페루에서 20년간의 사목 경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던 "목자에게선 양 떼의 냄새가 나야 한다"라는 현장 사목의 중요성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하니까요. 붉은 모제타를 걸친 시노드 정신의 레오 14세는 어쩌면 가톨릭의 전통과 개혁이라는 경계에서 적절한 중재자 역할을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티칸 기자라지만, 기자의 시선이라서 그럴까요. 종교와 관련된 책이지만 종교적으로 홀리holy하지 않아서 거부감이 없이 잘 읽힙니다. 일단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가톨릭과 교황청, 바티칸을 중심으로 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따른 해석이 중심이 됩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미국인 교황'과 '미국'의 관계였는데요. 세계의 경제적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 대통령과 세계적으로 막대한 종교적 권위를 지닌 교황을 물질적 권력과 정신적 권력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신선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인 교황이 교황이 되어버리면 정신적, 물질적 권력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레오 14세 교황의 정체성이 미국보다는 그가 사역했던 남미 페루와 가깝기 때문에 그런 구도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지요.





 프레보스트는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위기에 처했음을 알아차렸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앉아 있었다. p.164

 교황이라는 직위의 무게가 새삼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행정적 업무는 물론이고 종교적 활동을 비롯한 전 지구적인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고, 정치적인 알력 다툼도 상당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책에 기술된 콘클라베 과정 중 프레보스트 추기경(레오 14세)의 좌절하는 모습은 의미심장해 보여서 웃픕니다. 심지어 우연히 개표 담당이 되면서 투표용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연이어 불러야 했다는데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네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그분의 뜻이겠지요?

 새 교황이 깊고 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눈치채 타글레 추기경은 주머니에 몰래 숨겨온 사탕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것이 새 교황님을 위한 저의 첫 번째 자선 행위입니다." p.167-168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