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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책을 다 읽고 나니 짐짓 숙연해졌습니다. …라고 쓰고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레터를 통해 먼저 접한 책 소개에서 '박래군'이라는 이름이 낯설면서도 아주 낯설지는 않았어요. 뉴스나 기사에서 종종 마주하곤 했던 이름이었거든요.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는 인권 운동가 박래군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그런데 분명 에세이라고 했는데? 읽고 나니 대한민국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책을 한 권 읽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도한 시대가 초래한 슬픔과 분노의 역사 속에 항상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눈물을 흘리는 자 옆에 항상 박래군이 있었습니다. 그 눈물에 온기가 있다는 믿음으로요.

1961년 노동절에 태어난, '來올 래, 群무리 군'의 한자를 쓰는 박래군은 본래 소설가를 꿈꿨습니다만 무도한 폭력의 시대는 그를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문학회 소속 선배가 강제 징집을 당하면서 시대적 부채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사상과 이론을 배워가며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강제 징집을 당하게 되고 전역 이후에는 인천 부평 지역에서 노동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한미 은행 점거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되죠. 첫 수감 후, '왜 그렇게 사느냐'는 아버지의 일갈에 자신의 이름처럼 서로 모여 데모하기 딱 좋은 이름처럼 살고 있다고 받아치는 기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모진 폭력과 고문을 감내하면서도 박래군은 이 시절을 활동가로써 내실을 다지는 단단한 시절이었다고 정의합니다. 마치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경구처럼 말이죠. 사실, 비단 이 시절뿐이 아니라 박래군의 삶 전체가 저 한 문장을 고스란히 체화한 것만 같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이 도래하고 맙니다. 박래군의 동생이었던 박래전이 '광주 학살 원흉 처단'을 외치며 분신하여 88년 6월 6일, 스물여섯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동생 박래전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상실과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박래군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준비된 유가족은 없다. 유가협뿐만이 아니다. 나는 인권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유가족을 만났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유가족들, 제주 4·3의 유가족들은 자신의 부모와 형제가 죽어갈 때조차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고 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남은 이들은, 그러나 침묵만 하지 않았다.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았지만 끝내 그들은 말했고, 그들의 말은 가해자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었다. p.431
이 시절을 계기로 전태일 열사의 모친이었던 이소선 여사를 만나게 되어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인권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죠. 관련 활동을 이어가다가 UN 세계인권대회에 참가를 계기로 더 넓은 영역에서 바라보는 인권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인권 단체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발하게 인권 운동을 전개하는데요, 《인권하루소식》이라는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인권 관련 뉴스를 발굴하여 알리는 일간지를 발행하기도 하였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권 영화제'를 개최하여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한국 인권 활동의 저변을 넓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그의 활동가 인생에 변곡점이 도래합니다. 바로 2014년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 유가족 곁에도 박래군이 있었습니다. 진상 규명 활동과 더불어 유가족을 지원하고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또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죠. 그는 세월호 참사를 가까이 목도하면서 생명 안전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4·16 재단을 설립합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또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과 함께 연대합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이유도 없이 스러져가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죠. 진실을 외치는 투쟁마저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지곤 하지만 결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고난은 투쟁이라는 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그를 추동하죠.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사람들의 증언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에 더 공감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바로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되고, 유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p.433

너무 많은 죽음들, 눈물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알고 있었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었고요, 용산 참사도 세월호 참사도 그랬습니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분노하고 울고 있었어요. 선진 민주 사회라고 운운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죽음이, 의뭉스러운 죽음이, 인권이 유린당한 죽음이 흘린 피를 자양분으로 그저 비대해지기만 한 것 같달까요. 정말 곳곳마다 박래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며 같이 눈물을 훔칩니다. 그가 지나온 인권 투쟁의 길에는 느리지만 확실하고도 분명한 변화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편하게 누리고 있는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도 잘한 일이 있다면? 눈물 흘리는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려 했고, 그 눈물의 온기를 기억하려고 애썼던 일일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흘리는 눈물에는 온기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음을 잊지 말자." 그래야 사람으로 살 수 있으니까. p.439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