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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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올해 5월 1일은 여느 해 보다 의의를 지닌 '노동절'이 되었다. 바로 1963년 이래로 '근로자의 날'로 불려온 5월 1일이, 62년 만에 '노동절'이라는 명칭을 다시 회복했기 때문이다. '근로'라는 표현은 사용자, 즉 국가나 기업 입장에서 노동자를 '부지런히 일하는' 수동적이고 통제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나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하는' 주체적인 대상으로써 노동자를 권리를 가진 대등한 주체로 강조한다. 또한 '노동절'이라는 표현은 국제적인 보편성에 부합하면서도 '근로자'라는 단어가 주는 정규직·사무직 위주의 좁은 이미지에서 탈피해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고 있다.





​ 이런 '노동'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었던 이번 '노동절'에 시의적절하게 읽게 된 《생업》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생업'이라는 제법 묵직한 제목 아래 묶인 노동자 17인의 일과 삶, 삶과 일에 관한 인터뷰. 실로 다양한 직업군의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급식 노동자, 요양 보호사, 청소 노동자, 국어 교사, 노동 변호사, 배달 노동자, 청년 농부, 요리사, 독립 연구 활동가, 배우, 싱어송라이터, 타투이스트, 유튜버…. 직업을 비롯해 성별도 나이도 모두 제각각이다. 뚜렷한 개성으로 그들의 삶이라는 세계는 여러 갈래로 확장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생업'이라는 거룩함으로 수렴한다.


 (…) 어떤 삶을 가치 있게 볼 것인가가 공동체의 중요한 질문이 되었으면 해서 이번에도 역시 크게 그렸다. 제목은 '생업(生業)'이다.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며 사는 노동의 표정을 담았다. p.12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각자의 노동 일대기 속에서 발견하는 찬란함. 노동의 고단함은 결국 서로의 연대로 상쇄되고 타인에 대한 원초적인 인류애는 생업의 동력이 된다. 먹고살자고 시작한 일이 성실하게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면서 장력을 발휘한다. 사람과 사람을 끌어당기기도, 사람들 속으로 끌려가기도 한다. 반대로 인생에서 밀려가면서도 세상에게 떠밀려가면서도 '생업'이라는 노동은 단단한 삶의 구심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결코 낯설지 않은 생업의 다양한 이면들을 접하며 그들에게 성실하고 씩씩한 노동력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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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산업 재해 노동자 부인 김영희 님과 산업 재해 노동자 어머니 박미숙 님의 인터뷰는 먹먹하다. 소년공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철도 노동자 출신이 노동부 장관이 된 후에도 잇따라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관련자 처벌은 너무나 안이하고 태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노동자의 죽음이 토대가 되어 성장한 발전과 편의는 결코 쉬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두 편의 인터뷰는 '생업으로서의 노동'을 다루는 이 책에서 가장 묵직하게 느껴지고 반드시 그렇게 느껴져야 할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만 매미 울음처럼 요란한 세상에서 "애들을 잘 먹여야 한다"라는 말이 청량한 바람 한 줄기처럼 목에 감긴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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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읽다 보면 노동은 곧잘 삶, 그 자체로 읽힌다. '노동자'의 인터뷰집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은 한 인간과 삶에 관한 이야기. 그 어느 누구보다 온몸으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며 그 안에서 길러온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은 읽어나갈수록 웅숭깊게 느껴진다. 자본의 가치로 쉽사리 폄하되곤 하는 노동이라는 가치, 특히나 소위 '불장'으로 자본 소득이 대두되면서 시끄러운 요즘에 한 번쯤, 숨을 고르고 다시 '노동'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는 요즘에 다시 끔, 귀 기울일만한 귀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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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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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일개 개인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미국이 몰락하며 세계를 주도하는 패권이 재정립되고 있는 이 시기에 한국은 과연 어떤 스탠스를 가지고 어지러운 국제 질서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지 걱정스럽다. 특히 미국과의 지난했던 관세 협정 과정을 지나며 겨우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최근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 중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요청하면서 또다시 외교적 이슈가 불거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었고 일본은 위헌 소지와 평화헌법상의 제약을 근거로 파병을 거절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가 백악관에서 보인 태도를 굴욕적이라 평가한 다수의 국내 뉴스를 보았으나 반대로 60%를 훌쩍 넘는 일본의 국민들은 이 정상회담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 또한 70%를 돌파했다는 기사가 대비적으로 눈에 띄었다. 일련의 상황을 목도하고 나니 슬 궁금해지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은? 미국이, 정확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기조 아래 동맹국의 자국 방위 부담금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이 시점에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맥락에서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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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딱딱하고 건조한 주제를 다루는 터라 뇌 주름을 꽉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힌다. 먼저 이 책에서는 '극동 1905년 체제'라는 지역 질서를 분석의 틀로 사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적 시점'과 '제3자적 시점'이라는 다자적인 관점을 동시에 비교하며 '미일동맹'의 역사와 변모, 효능과 한계 등을 기지 사용, 부대 운용, 사태 대처, 출구 전략, 확장 억지라는 다섯 가지 측면으로 살펴본다. 특히 여기서 극동은 현재 동아시아로 분류되는 지역으로 중국과 소련(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한국-대만-일본'에 이르는 지정학적 진영과 미국과의 동맹 역학 또한 톺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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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전에서 핵폭탄이 투하된 국가인 일본이 핵을 대하는 정서는 '핵을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반입하지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으로 요약된다. 또 일본은 방어를 위주로 하는 군사 정책인 '전수방위'라는 기조 아래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며 상대의 선공이 있을 시에만, 그것도 방어를 위주로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등 평화헌법을 근거로 군사적 문제를 소극적으로 해석하며 어떤 식으로든 자국의 군사력 개입을 적극적으로 제한하는 경향성을 지녀왔다. 저자는 이를 '일본적 시점'이라 이르며 급변하고 있는 현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보다 다자적인 관점인 '제3자적 시점'의 필요성을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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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이렇게 미국의 핵을 "반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한 비핵 3원칙을 내거는 동시에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지를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설명해 온 혹은 일본 여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확장억지는 양립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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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비핵 3원칙, 전수방위의 기조는 미일동맹 조약과 상충하며 모순과 여러 논란, 다분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핵으로 확장 억지 정책의 수혜를 받으려 하면서도 자국 내 핵무기 반입은 허용할 수 없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미일동맹 조약을 기반으로 한반도나 대만에서 비롯할 수 있는 '극동유사사태'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면 '일본적 시점'의 한계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드러난 여러 문제들을 통하여 미일동맹은 단지 미국과 일본이라는 단일 관계에서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극동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동맹망 속에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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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여기서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핵보유국과 해양을 기반으로 하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확장억지라는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항구라는 장소에 동맹국의 핵을 실은 함선이 일시 기항하는 것까지 '반입'의 기준 안에 포함시켜 이를 거절하려 해 온 일본인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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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의 대만 공격은 곧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라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 이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터라 중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하였으나 개헌 추진, 방위 예산 증대, 방위 산업 육성, 동맹의 수평적 변환 등 그 정체성이 점차 공격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전작권 환수와 같은 자주국방에 관한 논의와 함께 이에 파생된 여러 논란도 공존하고 있다. 느슨해진 동맹, 어질러진 세계 질서, 부유하고 있는 패권의 향방. 도처에 널린 과제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이 참고할 만한 하나의 예시로써 의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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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 정책은 국가 간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이상 일국평화주의나 필요최소한론에 기초한 '일본적 시점'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결국 '나만 옳다는 독선'으로 이어져 현실과 괴리가 생겨난다. 그로 인해 미일동맹이 기능할 수 없게 돼 거꾸로 일본의 안전에 위험을 불러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본말전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288 



 '역자 후기'에서는 한국인 독자로써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불편한 정서나 주장을 한국의 관점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되짚어 주고 또한 책의 바탕이 되었던 '극동 1906년 체제'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탈피한 '대안적 질서'를 제안한다. 이는 책과 책을 넘어 보다 확장된 시각을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 어제의 혈맹이 오늘의 적국이 되며 오늘의 적국이 내일의 혈맹이 되는 아이러니의 역학을 목도한다. 새로운 세계 질서, 재정립 되어가는 패권 질서 속에서는 역자의 제언처럼 기존의 낡은 질서를 탈피한 새로운 문법으로 써나가는 길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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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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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읽다 보면 심심찮게 맞춤법을 지적하는 댓글을 찾아볼 수 있다. 댓글로 서로 싸우는 상황에서는 상대의 지능을 운운하며 이 틀린 맞춤법을 가지고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비단 유튜브 댓글 창뿐만이 아니라 온갖 SNS에는 '맞춤법'이 빌런이라는 맥락과 만나면서 유머와 조롱 사이를 넘나들며 인간적인 호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외않되'나 '낉여오니라' 같은, 깍쟁이 같은 맞춤법 교정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맞춤법을 둘러싼 이 간극, 그 한가운데에 서있는 국립국어원 10년 차 상담 연구원의 노동기를 살펴본다.





 한때 화제가 되었고 이제는 밈이 되어버린 국립국어원의 '고맙슨비다'라는 오타는, 마치 AI처럼 정확한 사실을 간결한 단어로 빠르게 안내해 주는 존재가 봇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반가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듯 채팅창 너머, 게시판 너머, 수화기 너머에는 상담 연구원이 존재한다. 저자는 상담 연구원으로써 수많은 질문과 그 질문을 건네는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며 겪은 경험과 그 경험 속 섬세한 사유를 공유한다. 더불어 언어를 공부하며 연구하는 학자로써 언어에 대한 철학, 언어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통찰 또한 사유의 깊이를 더한다.







 저자에게 건네오는 질문들은 섬세하기도 하고 무례하기도 하며 오히려 저자에게 질문을 남기기도 한다. 곤란한 것이 질문 그 자체였던 적도 있었으나 사람이었던 적도 많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리고 벼리는 노동자로서의 모습은 질문을 사이에 둔 우리와도 결코 다르지 않다. 특히나 10년 차 직업인으로써 국어를 연구하는 저자와 저자의 동료들의 치열한 토의 과정은 짐짓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확성이 요구되는 직업적 특성상 규정과 규범을 토대로 '정답'을 제시해야 하는 제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적인 맥락, 질문자의 의도와 상황까지 고루 헤아리려는 노력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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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정을 근거로 답을 할 수는 있지만 각 상황에 맞는 정답을 일일이 분별해 알려 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규범을 지키되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게, 설명하되 강요하지 않게,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며 질문자의 자리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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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 인물과 의도에 따라 유연하게 변모한다. 규정과 규범을 기준으로 언어 사용을 돕는 저자도 이를 더 깊이 고민한다. 특히 현시대에 맞춤법에 대한 과도한 강박과 '존칭 인플레이션'에 관한 내용은 언어로부터 확장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톺아보게 만든다. 비대면의 일상화가 비롯한 불안, 옅어지는 관계의 밀도 따른 인정과 존중 욕구의 결핍이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언어는 투명하고도 착실하게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한 번쯤 되돌아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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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맞춤법에 이토록 예민할까. 나는 그 이유를 '불안'에서 찾는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대의 소통은 얼굴 없이 글로 먼저 이루어진다. 우리는 상대를 보지 못한 채 상대의 문장을 먼저 본다. 문장이 곧 그 사람이며, 맞춤법은 그 사람의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글자 하나가 삐끗하면 그 삐끗함 너머로 사람 자체가 흐릿해 보인다. p.13,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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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기법이란 사람들을 가르치고 통제하는 교단 위의 회초리가 아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맺은 약속이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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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맞춤법 사용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맞춤법이란 도달해야 하는 목적이 아닌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 또한 표현상의 작은 어긋남에 경도되어 본질을 왜곡하지 않기를, 함부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저자가 국립국어원 상담 연구원이라는 직업인으로써 10년 동안 켜켜이 쌓인 철학과 신념, 경험과 사유를 질감으로 표현하자면 단단하면서도 유연하다. 더불어 그 역동은 섬세하면서도 치열하다. 다 읽고 나니 그 수고와 노력에 작은 경탄을 보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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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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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육아'는 여전히 삶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입니다. 뉴스나 미디어에서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쟁이나 '맘충'이라는 일종의 혐오 현상, 그리고 세계 최하위 수준의 출생률이 동시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회 속에서 어딘가 어긋난 것만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현상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에 앞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더 간절한 시점이 아닐까 싶거든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자녀 양육을 공동체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선을 제공했던 《탐욕스러운 돌봄》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생생한 현실 육아의 현장으로 관심을 기울여봅니다.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에 아이와 함께 등장했던 MBC 아나운서를 기억합니다. 바로 임현주 아나운서인데요, 《한영 육아 번역기》는 그녀의 남편인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와 사랑스러운 두 딸인 아리아와 릴리를 출산하고 육아하며 기록해 낸 한 권의 '번역서'입니다. 영국인 남편과 문화적 차이를 비롯해 양육에 대한 가치관이 여느 부모들처럼 여지없이 충돌합니다. 같은 문화적 정서를 공유한 파트너와도 쉽지 않은 것이 육아인데 다른 세계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육아'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며 겪는 고충은 조금 더 복잡했으리라 짐작했는데 의외로 이 차이가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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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결혼 생활은 늘 중간지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함께 김치를 먹고 홍차를 마시는 것처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나란히 존재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p.6-7 





 핍진한 육아 현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만 같은 '국민 육아템'이나 고가의 유아차, 위생을 위한 아이 전용 조리 도구와 아이 전용 세탁세제 등 'K-육아'의 길은 이토록 빡빡합니다. '다른 아이는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시작하는 불안과 더불어 위생에 대한 유난한 강박은 안 그래도 험난한 육아의 난이도를 훨씬 높이기 마련이죠.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저자는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며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며 점차 자신만의 양육을 깨달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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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정말 유용한 물건인지,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는 물건인지. 그러고 보면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뿐이 아니라 부모의 불안을 다루는 과정 아닌가 싶다.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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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K-육아'를 경험하고 다니엘은 "안 되는 건 끝없이 많고, 해야 하는 것만 남아 있다."라고 요약합니다. 또한 익숙하지 문화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낯섦에 끊임없이 적응해가며 가끔은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 같다고 하죠.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식 양육에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를 보며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한 양육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부부는 서로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간극은 서로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육아에 몰입하려는 나의 뇌를 종종 흔들어 깨운다. 내가 꿈이나 여러 아이디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빛나는 눈으로 반가워하며 귀를 기울인다.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육아와 무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서로를 육아 동지로서만 매몰되지 않도록, 나아가 내가 아이 엄마의 정체성에만 너무 깊게 뿌리내리지 않도록 하는 데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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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보호자, 파트너 혹은 공동 양육자로써 저자와 다니엘이 서로를 대하는 그들만의 관계적 특성은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와도 같은 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 신경이 육아에 쏠린 저자를 다니엘은 의식적으로 육아 밖 세계로 불러들입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 시간, 태도, 말투 등 자칫 육아로 소홀해지기 쉬운 '서로'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죠. 이렇게 쌓인 탄탄한 정서적 지지는 서로의 부모로서의 정체성도, 오롯이 자신으로서의 정체성도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강박적인 육아 방식이나 태도를 좀 더 유연하고 여유롭게 만드는데 적정한 토양이 되어주기도 하죠.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우리 가족 안에서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가족은 아이들이 다름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첫 세계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정성껏 번역하며, 어른들도 아이들도 매일 함께 자라나고 있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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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와 결혼, 출산과 양육을 거치며 저자와 저자를 둘러싼 세계들은 분열하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수렴합니다. 서로의 거리와 자신의 괴리를 좁히고 줄여나가죠. 서로 다른 세계가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의 요소들이 적절히 섞이며 새로운 세계가 탄생합니다. 이런 조화를 가능하게 한, 서로의 세계를 번역하는 이 아름다운 수고로움이 '양육'이라는 차원의 세계를 통과하며 저자가 경험한 경이로운 총체로 기록됩니다. 《한영 육아 번역기》는 공동체를 공유하는 타인의 자리에서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에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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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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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5일, 얼마 전에 식목일이었죠. 이 계절이 선사하는 꽃이라는 풍성한 아름다움에 더하여 식목일까지. 4월은 꽃과 나무에게 마음을 더한 눈길을 한 번쯤 기울여주기 좋은 계절입니다. 얼마 전에도 포스팅을 했는데요, 날이 좋아 걷기 좋은 요즘이라 근처 작은 산들을 걸어 다니면서 잔뜩 피어난 진달래나 산수유, 개나리, 벚꽃 등 갖가지 꽃을 넘치도록 찍어댔습니다. '개화'라는 생동력이 뿜어내는 흥취에 도취된 채 이 꽃, 저 나무를 기웃거리며 제법 산만하게 등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등산을 마치고 문 앞에 도착해있던 《숲으로 출근합니다》가 더욱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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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말이지만 나 스스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 가장 나답게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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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10여 년의 기자 생활을 접고, 충남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에서 나무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숲으로 출근합니다》는 천리포수목원에서 나무 의사로서 두 번의 사계절을 지내며 집필한 책으로,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 있는 1만 7,000여 분류군에서 서른세 종을 계절별로 추려 이야기해 줍니다. 읽는 내내 꽃과 나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같이 읽을 수 있는데요,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식물과 자연을 대하는 겸손하고 소박한, 식물과 인간을 동류애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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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생명의 범주를 확장해 본다면, 그래서 '나'와 '우리'의 개념이 넓어진다면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겸손해지지 않을까.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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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며 궁금해져서 천리포수목원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마침 목련 축제가 한창입니다. 개화 현황과 갖가지 종류의 목련 꽃들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경탄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목련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데요, 목련이 약 1억 6,000만 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속씨식물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식물이라는 사실을 아셨나요?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등장했다고 하는데 목련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공룡을 상상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슬쩍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식물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들이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요, 후박나무의 자생지인 울릉도에서 호박엿이 유명한 것은 본래 '후박나무'의 껍질을 달인 진액으로 엿을 만든 '후박엿'이 호박엿과 혼동되어 유명해진 것인데 이후 후박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후박나무껍질이 아닌 호박으로 엿을 만든다고 합니다. 또 '마로니에'로 더 유명한 '칠엽수'의 열매를 '콘커conker'라고 부르는데 이 열매를 깨뜨려 우승자를 가리는 '세계 콘커스 선수권 대회'가 영국에서 열리며 매년 세계 각지에서 무려 4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이는 대규모 대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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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울 추운 바람이 부는 때, 앙상한 가지 끝에서 오그라든 끈 모양으로 피어나는 풍년화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꽃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 독특한 모습 덕분에 풍년화는 아름다움의 협소함을 깨는 존재로 거듭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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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겨울의 꽃과 나무들이었습니다. 겨울의 산은 특히나 황량하고 쓸쓸하기 그지없었는데요, 겨울의 수목원은 능동적으로 생동합니다. 붉은 열매를 맺는 크리스마스 나무로도 불리는 '호랑가시나무', 노랗고 붉게 알록달록한 가지의 '말채나무', 석순처럼 공기뿌리를 밖으로 솟아내는 '낙우송', 눈을 삭이며 꽃을 피우는 노란 '복수초' 등과 같이 실로 다채롭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화려한 색의 꽃에만 집중하지만 나무의 수피 무늬라든가, 잎을 다 떨군 뒤에야 온전히 드러나는 수형의 조형적 미감 등을 저자의 시선을 빌리고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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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계절에 당연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겨울정원의 매력인데, 그 아름다움이 부각되도록 식물의 장점과 미덕을 찾아주는 것은 가드너의 역할이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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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당연하지 않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은 가드너의 역할입니다. 자생지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에 알맞은 식생 환경을 조성하고 점점 더 습해지고 무더워지는 날씨에 따라 어려워지는 외래해충 방제를 고민하며 맞닥뜨린 기후 위기를 직접 실감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문화 행사나 지역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하죠. 특히 천리포수목원의 '책바슴'이라는 국내 유일의 야외 북 페어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미처 몰랐던 가드너의 역할과 고민, 식물과 인간을 바라보며 확장하는 생명에 대한 범주, 여러 나무와 꽃을 톺아보며 그들과 공존하는 방식 등 단편적인 꽃과 나무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랗고 찬란한 세계에 잠시 담가졌다가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앞으로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무와 꽃, 풀을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책에 나온 꽃이나 식물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지고요. 이번 주말에는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챙겨 산등성이 쉼터에 앉아 잠시 읽고 오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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